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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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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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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덕만 (하)


BY 마음자리 2003-07-04

기차는 차창 너머 바라보이는 경치들을 휙휙 뒤로 날려보내며 대전을 지나 서울을 향해 열심히 줄달음을 쳤다.

"어머니의 기침은 한번 시작되면 좀처럼 멎질 않았네...지루하도록 계속되던 기침이 잦아들 즈음엔 어머니의 입을 가린 손수건에는 빨간 피가 겉으로 베어 나왔었지...나는 겁에 질린 채 벌벌 떨며 어머니의 기침만큼이나 오래도록 악악대며 울어대다가, 기진맥진한 어머니가 다시 쓰러져 잠이 들면 그때야 강가로 나가곤 했네....강가에 나가면 그곳은 하얀색과 파란색 둘 뿐이었지. 두려운 빨간색은 모래 밑으로 숨어들어 보이질 않았네...소리를 질러도, 악악대며 서럽게 울어도, 마구 달려도 강은 언제나 그런 나를 말없이 안아주곤 했다네..."

지나가는 홍익회 판매원을 불러 맥주 두 캔을 산 그는 나에게 하나를 권했다. 목이 마르던 참이었던지 한 모금을 마시니 시원한 느낌이 갈증을 아래로 몰고 내려갔다. 갈증이 사라진 대신 약간의 뇨의가 느껴졌다.

"겨울이 되자 어머니의 기침은 더 심해졌고 어머니의 입을 막던 손수건은 수건으로 바뀌어졌네...어머니의 얼굴은 겨울 변태라도 하듯 흰눈처럼 하얗게 변해갔고, 어머니의 몸에 붙은 살들은 허물 벗듯 얇아져만 갔지..."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네...드물게 강가가 얼어붙자 마을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강가로 몰려오곤 했네...열살 언저리의 나이였으니 얼마나 친구를 사귀고 싶었겠나...그런데 그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아이들은 노랭이 새끼, 갈보새끼라고 욕을 하며 나를 향해 돌을 던졌네...후후...그 욕이 무슨 뜻인지 아는 나도 적개심에 불타올라 그 아이들을 향해 돌을 던졌지...아이들이 우 몰려오면 과수원 안으로 도망치고...그러다가 다시 나가 돌을 던지고...처음엔 화가 나서 하던 일이 나중에는 그들과 나의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네...그 욕만 빼면, 아주 즐거운 놀이였지..."

그는 정말 그때의 기억이 재미가 있었던지 돌 던지고 도망가는 시늉까지 해보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른 측은하다는 생각을 접어 넣고 마주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루는 그들에게 그만 붙잡히고 말았네...그들은 내 노란색의 머리칼을 한 웅큼 뽑아서는 신기하다며 후 불어서 바람에 날리며 장난질을 쳐댔지...내 눈을 까뒤집어 눈동자가 파랗다고 깔깔대며 웃기도 하더군...미군에게 얻어 씹던 껌을 내 머리 여기저기에 붙이는 것으로 그들의 장난은 끝이 났었네...그날 나는 그들에게 당한 수모보다는 내 머리카락과 눈동자와 피부색이 그들과 같은 색이 아니란 것이 그렇게 분하고 서러울 수가 없었다네..."

그는 다시 감정이 격해진 듯 눈을 감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길게 내쉬었다. 이미 그의 감정에 이입되어 버린 나에게도 그 분함과 서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는지 가슴 한쪽에서 울컥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나는 숨을 고르는 대신 맥주를 벌컥 마시는 것으로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울며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신 어머니는 모든 것을 짐작하신 듯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벌떡 일어나 부지깽이를 들고 강가로 달려나가고,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 거울 앞에 앉아 저주받은 내 머리를 가위로 잘랐네...잘려나가는 노란 머리카락 부피만큼 내 마음도 가벼워져 붕붕 공중을 날 것처럼 느껴졌었네...내 머리가 쥐 파먹은 꼴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가 돌아오셨지...무슨 말이라도 하면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대들 작정이었지...왜 날 낳았냐고...근데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내 손에 있던 가위를 대신 잡고 내 머리를 짧게 고르기 시작하시더군...거울로 건너 본 어머니의 눈이 점차 핏빛이 되더니 그 눈에 눈물이 고이고 한 두 방울 떨어지다가 마침내 주르륵 흘러내렸지..."

그의 눈에도 다시 눈물이 고이고 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자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이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자 고였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돌아앉아 어머니에게 안기며 미안하다고...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말을 했는데 어머니는 도리질을 치시며 내 죄다~ 내 죄야~ 미안하다 토마스...미안하다 덕만아...이 말만 하셨지...그 날 그 어머니의 품은 참 따뜻했었다네..."

"그날 밤, 어머니는 미국에 사는 할아버지가 곧 나를 데리러 오실 거라고...할아버지를 따라가면 그곳에서는 날 놀리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그 곳에 가면 학교도 다니고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거라고...그 곳에 가거든 이 곳에서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라고...그러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덕만이는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지..."

"그날 밤은 긴장된 하루를 보낸 탓인지 어머니의 기침이 유독 심했는데도 나는 일찍 잠이 들고 말았네...잠결에 어머니의 기침이 멎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고...어머니의 찬 손이 내 뺨을 쓰다듬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네...그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내 곁에 안 계셨네. 사흘 후에 어머니는 세 마을이나 지난 아랫마을 강가에서 발견되었지...강이 얼어붙던 겨울이라 살아 생전 모습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고 외할머니는 내게 말해 주셨지... 집안의 수치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어머니는 곧바로 과수원 옆의 공터에 작은 무덤 하나 남기고 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네..."
"그럼 할아버지 따라 미국으로 들어 가셨겠군요?"
"그랬지...할아버지는 날 볼 때마다 껴안고 우시곤 하셨지.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꼭 닮았다며 무던히도 나를 사랑하셨다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 곳에서의 일들은 이미 내 기억에서 죄다 지워지고 없었다네...아니...그냥 내 의식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고나 할까...그 교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네...아주 성격이 괴팍한 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는 강의 시간 중에 아무나 불러 세워서 즉흥시를 짓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교수였다네...많은 친구들이 그 교수의 제물이 되었지...시제를 즉석에서 정해주니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긴장된 마음으로 지어내는 시야 이미 시가 아니니 그 교수의 혹평을 피할 수가 없었다네. 어느날 드디어 내가 그 제단에 바쳐졌네..."
"그래서요?"
새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라 호기심이 가득한 음성으로 내가 물었다.

"그 교수 입에서 <강>이란 시제가 주어지자마자 까마득히 잊고있던 낙동강이 갑자기 생생하게 내 머리 속에 떠올랐어...미처 감상에 젖을 겨를 없이 내 입에서는 그 때의 기억들이 운율을 타고 흘러 나왔네. 따로 기교를 부릴 필요도 없었다네...그냥 그 강과 그 강이 품고 흐르던 하늘과 구름, 그 강을 가로지르던 바람, 강과 함께 흐르던 하얀 모래밭, 그 모래 밑에 스며든 젊은 넋들의 피...철길, 기적 소리...그리고 어머니... 모두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네...다 끝내고 나니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고...강의실은 한참 동안 조용했었네...이윽고 제물이 되고자 고개를 들어 교수님을 바라보니 바닥에 떨어뜨린 책을 주워들던 교수님이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곧이어 강의실은 온통 박수소리로 가득 메워졌다네..."
진한 감동으로 내 가슴이 뿌듯해졌다.

"지금 나는 미국에서 제법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네...그 날 이후 낙동강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내 시의 샘물이 되었고, 샘물을 퍼내면 낼수록 낙동강에 대한 내 그리움은 깊어만 갔네...내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내 아픈 기억의 현장이었던 그 낙동강에 대해 깊어져만 가는 그리움을 막을 수가 없었다네...그 그리움이 인연을 이끌었는지 마침 영시 강연에 초청되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 곳을 다녀오셨군요?"
"그랬지...그 곳에 가서야 나는 알게 되었네. 나는 한국 사람이었다는 것을...몸은 비록 미국인의 것이고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나는 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한국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네...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네...내 모든 정서와 감정이 이 곳에서 피어나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지...낙동강은 바로 내 고향이었던 거야..."

다시 바라본 그는 여전히 노란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중년의 외국인이었지만 더 이상 이방인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내 곁에 앉아서 어깨를 들먹이며 울 때부터 이미 한국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처럼 그 강가에 서서 두 손 가득 모래를 담아 날려보내며 아버지의 넋을 위로해 드렸네...곧 지워지겠지만...어머니 무덤 가장 가까운 곳에 커다랗게 내 이름 <토마스덕만>을 새겨 두었지..."

건배를 하고 남은 맥주를 비우니 기차가 서울역에 멎었다.
굳은 악수를 하고 어색하지 않은 포옹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맞아요. 아저씨는 고향이 낙동강인 한국인이 틀림없어요. 잘 가요. 토마스덕만 아저씨..."
"자네도 꼭 취직되길 빌겠네...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세 젊은이..."

나는 택시 승차장을 향해 걸어가는 노란 머리 파란 눈의 한국인, 토마스덕만 아저씨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전철을 타러 발걸음을 옮겼다.
왠지 내일 시험을 잘 치를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면서, 복잡한 이방의 도시, 서울의 전철에 몸을 실으니 영등포를 향해 달려가던 전철은 곧 도시의 불빛들을 가득 담고 자못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을 힘자게 가로지르며 건너고 있었다.

'저 한강에는 더 많은 사연들이 녹아 흐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