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언제 올거야? 내일 올 거야?"
연거푸 자꾸 재차 뭍는 내 말에 엄마는 서둘러 짐을 꾸리기에 성급한 나머지 귓전으로 흘려듣는다. 조그마한 요강만한 크기의 보따리 서너개를 꾸리는 동안 나는 더욱더 초조해진다.
저러다 영영 안 오면 어쩌지 하는 기막힌 서글픔에 나는 더욱더 찰짝 달라붙어 엄마의 땀으로 축축히 젖은 옷깃을 붙잡는다.
"엄마..아..."
"...."
나는 더욱더 불안하다.저러다 하얀 날개를 등에 날고 날아가 버릴 것같은 두려움. 무서움. 그리고 혼자라는 것...어쩌면 지금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지는 예민한 현실성이 그때 터득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콧등에는 벌써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그렇게 더운 날씨도 아닌 그냥 초봄인데...
그랬다. 엄마는 더워서 짐을 꾸리느라고 열이 나서 땀을 온몸에 축축이 흘러내린 땀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는 식은 땀이었다. 시집식구들이 금새라고 낌새를 눈치채고 달려고 올까봐, 지금쯤 저 아랫목에서 마을 구판장에서 막걸리에 걸축해져서 앞뒤 분간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 그리고 동네 개구쟁이들과 흙장난하느라고 동냥아치가 되어서 돌아오는 4살짜리 유일한 막내아들과 여자친구겸 누나노릇 톡톡히 해주는 이쁜이 셋째 누나 은경이를 두고.. 그리고 보리뚱땡이인 미경이를 두고...
엄마는 매정하게 자꾸 대답을 묵살해버린다. 참으로 엄마의 옆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선명하게 예뻤다. 뽀얀 얼굴. 그런 산골짜기 시골에서 품앗이며 논밭일이며 따가운 햇살에 그을릴 법도 한데.. 너무도 고운 피부에다 조금은 그을린 듯하지만, 다른 그 어느 누구보다 피부가 아름다웠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그래서 였을까. 코와 입이 지금도 엄마 닮아서 이쁘다는 소리를 듣는것은...하지만, 엄마의 시댁식구들은 그것이 혐오스러웠나보다. 엄마닮은 딸이 더 꼴보기 싫어서 그래서 구박했었나보다. 모질게도...
"엄마 열 밤만 자고 올거야 외갓집에 갔다가 열 밤만 응..? 알았지"
드디어 짐을 다 꾸렸나보다 응답이 고용한 침묵속에. 툭 깨져버리듯 내뱉어져 나왔다.
엄마는 몇 번 속아넘어서 못미더워하는 어린 눈초리에..확신을 심어주듯이 짙에 쌍거풀진 큰 눈망울을 더욱 커다랗게 떠 보이며고개를 끄덕인다.엄마의 깎아내리는 듯한 저 콧등에서 입술까지 그리고 목줄기까지 나는 한눈에 여러번 눈길로 쓰다듬듯 자꾸 뒤진다.
시큰둥한 구석이 있으면 다리라도 붙들고 ...
거짓말 식상한 거짓말...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속고.또 속고... 엄마의 그 어리숙한 거짓말에 어리숙한 내가 왜 그토록 자꾸 속았는지... 그때도 마지막으로 떠나가기 전에 엄마는 끝까지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진실하게 해댄다.
나는 그 순박한 엄마의 눈빛위로 수건으로, 보자기 꽁꽁 옭아매진 머리를 보았다.
검은 머릿결은 이미 두건으로 감싸여진채 보이질 않고 누가 보면 미용실에서 파마한 것처럼 보여진 저 머리... 그 한두달에 한번씩 파마하는 엄마는 이번에는 파마가 아니다. 나는 안다. 동네 사람들도 아마도 수근덕거리며 알고 있겠지....
엄마가 바람피어서 저놈의 여편네가 바람피워서 시댁식구들이 단합해서 합심해서 그토록 새카만 머리를 짤라버렸다는 사실을...그래서 보자기로 꽁꽁 바람도 들어가지 말라고 쑥덕공론하는 인간들의 남얘기하는인간들의 속세의 기미보이지 말라고... 감싸는 사실을... 시댁이라는 권위에 우악스런 시아제의 손길이 머리칼을 휘어잡고, 주위 동서간들의 매섭고 환멸하고 무시하는 눈초리와 욕설을 퍼붓으며 한웅큼씩 잘려나가는 머리를 보며 나는 대들었다.
학교에서 10리나 되는 길을 파하고 논두렁을 지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고 수근대는 우리집 문앞에서 나는 큰소리로 기겁을 하며 대들었다.
"우리 엄마 왜 때리는 거예요?"
순간 돌처럼 단단한 시커먼 따귀가 날아들었다.
"싸가지 없는 년..."
큰아버지는 내 목덜미를 쉽게 끌어 올려서 세차게 후려친다. 머리끝에서 쭈뼛쭈뼛서는 소름과 불길이 번쩍나는 정전같은 게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나는 우리 형제지간 중에 제일로 미움을 사며 살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한가지 이유에서... 그 년을 그 미친년을 닮아서...
마당 한구석에 거친 우악스런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나가 떨어져 꼬꾸라졌다.손바닥에 금새 뭍어나는 흙내음이 몰아쉰느 숨결에 코끝에소 맴돈다.
"헉.."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이마 꼭대로 위로 백혈구가 치고 올라와 멍든 것처럼 얼굴이 금새 보랏빛으로 창백하니 물들었다. 그리고 그 흐릿한 시야 사이로 나는 헐거워진 방문을 거쳐서 저 구석에서 눈물로 범벅이 된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강요에 못이겨 바람핀 것을 시인하고 있었다. 읍내에서 남자 만난 것을 시인하고 있었고. 그리고 다시는 안 만날 것을 강조, 또 강조하면서 그리고 머리를 툭툭 잘라낸다.
눈물로, 하소연하면서... 아버지는 내가 큰아버지 손길에서 나가 떨어져서 헉헉 대고 있을 때 저 먼 발치에서 한술 더 떠서 커다란 작대기를 들고 성난 소처럼 달려온다.
잽싸게 나는 달려서 뒷산으로 뛰쳐올라간다. 어떻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린 그 두려운 마음에 수난을 당하는 여자는 등뒤로 뭍어두고...
잔디가 솔솔 나있는 둥그런 언덕에 나는 내 몸을 한껏 웅크리고 실컷 울었다. 어린 승냥이가 제 에미를 잃은 듯한 그런 듣기싫은 신음소리로...엄마가 왜 그랬을가?
그 때 갑자기 누군가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고 챙이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쓴 중년여인이 힘가쁘게 올라온다.
낯이 익은 얼굴. 가끔씩 농사일때문에 도시에서 살다가 오미자 농사때문에 며칠에 한번씩 올라오는 중년부인.그 중년부인은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수건을 허리춤에서 꺼내어 닦아주며 살포시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다.
잠시동안, 나는 그 여인에게서 향기로운 오미자 내음이 물씬 풍긴다는 사실을 불안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자 알아챘다. 빠알간 물이 신비스럽게 품어내는 오미자의 향기...
내 눈에 눈물범벅이 되고 흐느끼며 요동치는 어깨를 살포시 감싸며 향기로운 내음을 풍기며 격려한다. "지금은 슬프고 엄마가 걱정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거야, 조금 있다가 사람들 가고 나면 엄마 위로해줘."
왜 동네사람들의 일부는 말많은 여편네들은 단합이 되어 매도하며 입에 담지 못할 흉으로 매도하는데 그 중년부인은 이해한다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오미자가 즐비하게 주렁주렁 널려있는 곳으로 다시금 힘가쁘게 풀숲을 헤치며 오솔길을 올라간다.
동네사람들에게 무시와 멸시와 환멸감을 모멸감을 수치심을 느끼면서 엄마는 그렇게 살점이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떠났다. 열밤만 외갓집에서 자고 온다는 말을 남긴 채...그 당시 시골에서 택시를 대절한다는 것은 지금처럼 비싼 모범택시 수준이랄까.
택시가 저 신작도로 내지 않는 비포장 도로를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매연방귀를 푹푹 뀌면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나는 주기도문을 외우듯이 웅얼웅얼 거렸다.
지금 이 시간부터 열 밤은 손가락으로 꼬박꼬박 세우며...
아버지가 들판에 논에 나간 사이에 동생들이 하나같이 흩어져서 어디에선가 개울가에서 산에서 놀고 있을 때를 틈타,나는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 뒷편을 보면서 보냈다.
열밤을 자고 온다면서... 지금도 나는 내 아이에게 열밤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게 자꾸 회상이 되어서일까.
나는 안다. 엄마가 결코 바람피지 않고 남자를 만나 외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
그 때 나이가 한 서른 초반이었으니까. 젊은 여자 매장시키는 일은 그 순박한 시골에서 누워서 떡먹기로 일도 아니었음을...
주룩주룩 비가 올때 지금도 나는 매번 생각이 난다.
쇠로 된 세수대야에 수돗물을 퍼올려서 파마기 가득한 머리를 감으면서 나갈 차비를 분주히 하는 엄마가 지금도 눈앞에서 생생하게 기억된다.비가 오고 날이 궂어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머리를 감는 엄마가..
나는 비오는 날 머리감는 엄마의 이유를 몇 년 후에서야 알았다.
비가 오면 밭을 못매고 논일을 못하니까, 그런 날은 특히 장마가 있는 날은 두 시간 거리인 외갓집에 마음 놓고 출타할 수 있었으며,그리고 시댁의 감시를 벗어나는 유일한 희망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