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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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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yslee601 2003-06-04

혜숙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니를 콩볶듯 닦아세웠다.
'돈 구해와라. 친정 식구들 내 덕에 밥 먹고 살았으니 이젠 그 값을 받아와라. 내 이렇게 된 것은 너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하기 전 아버지는 큰 회사에 다니셨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의 형제들은 교대로 혜숙의 집을 거쳐갔었다.
지금도 어릴적 추억은 외삼촌,외숙모,사촌동생들. 이모, 이모부 등 등
여러 식구가 어울려 살던 모습들이 차곡차곡 기억속에 쌓여있으니까..
매일 계속되는 부모님들의 싸움과 고통속에서 혜숙은 고등학생이 되어갔고 성적이 좋았지만 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선택의 길도 없이 졸업과 동시에 사회의 일원이 되어갔다.
철이 들은 후 혜숙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온다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어느곳인가로 떠나버렸고 그 날부터 엄마의 삶은 가장을 대신한 책임감으로 하루도 쉴틈없이 기계처럼 움직이며 살았으니까...
그런 엄마의 삶은 혜숙의 눈에 결혼이 무덤처럼 느껴졌었다.
뒷날 고통의 삶들이 혜숙에게도 반복적으로 ?아 올 것을 예감하지 못한 채 그렇게 말이다.
혜숙이 스물하고도 여섯이 되었을 때 엄마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구질구질한 삶의 종착역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혜숙의 마음은 슬픔이 앞서기 보다는 오히려 박수를 치고 싶었다.
이젠 고생 안하셔도 되니까. 삶의 무게로 힘들지 않아도 되니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행각해도 이상하리만큼.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던거 같은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혜숙이
인정머리없는 딸로 보였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너무나 태연했었으니까...
교회 묘지에 엄마를 눕히고 오던 날, 쌓였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장마철 둑 터지듯이 그렇게 사정없이 혜숙의 오장육부를 헤집으며 몸부림치는 통곡으로 그렇게 사흘을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