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이 부족한 탓인지 정신이 또렷한게 쉽게 잠이 올것 같지 않아 창문을 열어 밤하늘을 내려다 본다. 하늘을 올려보지 않고 내려다 볼수있게 트여있는 바다가 있는 사무실이 좋아진다.
별이 총총, 섬에 있는 작은산위로 띄엄띄엄 불빛이 몇개, 바다에 비추이는 밤배의 불빛몇개, 바닷가 갯내음이 비릿하게 불어왔지만 새로운 냄새에 내후각은 자극을 받았고 싫지 않게 느껴졌던지 여러번 벌름거리고 있었다.
잠을 청해야만 하기에 벗어놓았던 셔츠를 들고 불을 켜둔채 사무실을 나왔다.
현장사무실에서 제방처럼 이어지고 있는 아파트 후문까지는 아마도 걸어서 10분쯤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나갔다가 오리라고 맘을 먹고 셔츠를 챙겨입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아파트 주민들이 몇해동안 밭을 일궈왔었단 얘기를 들었지만, 소일삼아 몇군데 밭이 있는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관심갖고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걸어나오면서 갈아엎어져 있는 밭은 규모도 컸을뿐아니라, 밭주인도 여러명인듯했다. 쓰러질듯 막대기로 경계가 나뉘어져 있었고, 막대기 사이에는 버려진 그물로 울타리도 만들어져 있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상추가 많았고, 깻잎이며 마늘, 고추등...종류도 다양했다.
제방처럼 이어진 길의 오른편엔 공사가 시작되면서 버려진 돌무더기와 잡다한 쓰레기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으나 워낙에 제방이 높은터라 바닥에 깔려있게 보였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 바닷가쪽은 제방보다 5미터는 더 낮으니 쓰레기가 섞인 돌무더기가 사람키는 넘게 쌓여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밑으로는 적어도 삼백미터는 될만큼 평지가 바다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끝은 바다가 아니라 또하나의 제방비슷한게 있다. 그래서 밀물이나 썰물을 가늠해볼수는 없다. 아마도 그
제방에서 보면 보일것이다. 바다의 경계로 물이 들고나는 것, 또 뻘도.
해가 져버린 널디너른 평지는 깨끗해보이지만, 뻘투성으로 푹푹파인흔적이 많았다. 아마도 지금 공사중인 아파트 뒷편현장에 많은 건물들이 들어온후 저곳도 언젠가는 매립하여 건물들이 들어설 것이다.
일설에는 해양관광단지가 들어선다는데 몇년후가 될지, 그땐 꼭 한번 놀러오리라 생각하는 사이에 그새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었다.
심심하기도 하고 약간의 취기도 있던터라 현란한 네온사인이 유혹하는듯 반짝거리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파트 상가를 지나쳐서 큰길가까지 나오게 되었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딱히 상가는 없었고, 술집들 투성이었다.
부두근처인탓에 술집에 손님들은 많이 있을테지만 혼자서 술을 마실만큼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즐기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술을 혼자 마시고 싶은 생각은 절대 들지가 않았다.
무작정 횡단보도를 건너서 좀 지나자 눈에 띄는 간판이 있었다.
'아~ 편의점이 여기 있구나' 며 길을 익혔다.
편의점앞에는 더위를 식히러 나온 주민들처럼 보이는 손님, 지나는 행인들, 그리고 남자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아줌마가 있었다.
웨이브진 단발머리에 누런빛을 띠는 피부, 거기에 회색츄리닝을 입고 앉아있는 여자는 다소 드센 남자아이들때문에 진땀을 빼는 눈치다.
더워도 집에 그냥 데리고 있지 여기까지 나와서 고생하는군 하면서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맥주캔두개와 땅콩스낵을 하나 사들고 담배도 하나샀다. 신문도 하나샀고, 혹시 몰라 컵라면도 하나샀다.
계산을 치르고 나오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이하나가 앞으로 뛰어 나가고 있었고, 이름을 부르면서 뒤를 쫓고있는 긴치마를 입은 여자는 제대로 뛰지도 못한채 불안한 고갯짓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한손으로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들고는 재빠르게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길을 건너고 보니 편의점앞의 회색츄리닝을 입은 여자였다.
'츄리닝이었는데 치마네 치마츄리닝이네' 하면서 여자를 내려다 보는데 얼마나 놀랫던지 눈이 충혈된듯했고 땀으로 이마에 머리칼도 붙어있었다. 웃으면서 그녀의 아들인듯한 남자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엄마를 닮았나 잘모르겠지만 피부가 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게 얼핏 여자애처럼 보일수도 있겠구나싶게 잘생겼다.
지나치면서 생각해보니 엄마를 닮은것 같았다. 다시 돌아보니 그자리에는 다른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까 보았던 회색츄리닝과 그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또 어디로 달려가 버린건가?'
운전하지 않고 걷다보니 저런모습도 유심히 보아지고 아줌마얼굴도 볼기회가 있고.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들이었는지 또, 회색츄리닝이 아줌마인지 알수없는게 아닌가 하면서도 또렷하게 얼굴이 기억이 났다. 다시보면 금새 알수 있을것 같았다.
회색츄리닝은 나를 몰라보겠지만. 치마츄리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