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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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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길 오아시스


BY 아지매 2003-06-05


남편과의 열렬한 밤을 보내서일까.아침 햇살이 창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눈두덩이를 간지를 무렵 눈을 떴다.
"어머 어째?"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일어나 옆자릴 보니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일어나 일상으로 들어간 남편의 헛기침 소리가 화장실 쪽에서 들려 왔다. 그녀는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을 준비했다. 늦은 시간이라 새로 반찬을 만들지 않고 있는 것들을 차려 놓았다. 어떤 음식이든 한 번 이상은 잘 먹지 않는 남편을 떠올려 보지만 오늘 아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해 해 주겠지.'
그녀는 지난 밤의 너그러운 남편을 떠올리곤 씨익 입꼬리를 올려 본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환상을 깨기라도 하듯 남편과 아이들은 몇 숟가락을 뜰 뿐 부시시 일어나 일상의 날개 달기에 바빴다.
서운했다. 일부러 반찬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늦잠 때문인데....
그녀는 밥상을 물리며 어젯밤일을 떠올리곤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일축한 뒤 설겆이를 하였다.
쏴아-
싱크대 위로 쏟아지는 수돗물 소리에 다시 그녀는 외톨이가 되어 말간 물 속에 투영된 자신의 나태함에 몸서릴 친다.
"아빠, 엄마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으-응 그래. 잘다녀오너라."
세상 날개를 단 두 자녀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그녀는 또 그렇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자신을 내 맡긴 채 팔랑이는 노오란 나비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남편에게도 잘 다녀오라는 일상적인 인사를 한뒤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졸래졸래 그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그녀의 꿈동이들도 손이 떨어져라 흔들어 대지만 남편은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응" 하며 기어를 힘껏 밟아 저만치 달아난다.
 부르릉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바람이 인다.그녀의 가슴에도 차가운 바람이 인다.또 다시 쓸쓸하다. 남편과의 동반한 길이기에 그다지 힘들것 같지 않았는데 여전히 가파른 마흔 언덕은 숨이 차다.어디 이 뿐일까. 한 발 한발 내 딛을 때마다 뻐근해 오는 무릎의 통증은 그녀를 확실한 마흔의 언덕에 서 있음을 절감케 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힘들고 쓸쓸하다고 주저 앉을 수도 없는 노릇 휘적휘적 오를 수 밖에.
 그녀가 막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주 5회 발행되는 지방지가 눈에 띄어 한 부 집어들고 휘적휘적 계단을 올랐다.
 그래도 지방지 치고는 꽤 알찬 이 일간지 속엔 주부들의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생활 정보 안내자인 셈이다.
 그녀는 뭐 새로운 정보가 실려 있지 않나하고 이리저리 들춰보다 '주부 리포터 약간 명 구합니다'라는 구인란에 시선이 꽂혔다.
그녀는 그 문구를 대한 순간 막혔던 숨통이 열리고 뻑뻑하던무릎 관절이 윤활류를 바른 듯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황망한 마흔 길에 오아시스로 다가와 그녀의 갈증난 심신을 얼마나 축여줄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새롭게 일을 갖는다는 것, 그 일에 집착한다는 것만 상상해도 그녀의 마음은 새처럼 가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