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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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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부 상민.. 그는 누구인가? - 1


BY nan1967 2003-05-09

그는 아니 상민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마리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보고만 있었다.

상민은 그녀가 혹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히려 실망(?)을 안겨주었다.

마리는 커터칼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그녀가 이 곳에 온 이유.....

그리고 그녀가 술을 마시고 자살을 결심한 이유.....

그리고 그녀가 낫선 사내 4명으로 부터 겁탈을 당해야만 했던 이유.....

그 모든 생각을 하며 강 바람이 부는 한강을 멍하니 쳐다보다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뒤를 조심스럽게 아무 말 없이 쫒아오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최 상 민....

"아저씨! 왜 쫓아 오시는 거죠?"

상민은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아저씨도 절 탐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뭘 망설이시는 거죠?"

"난...난....단지 네가 걱정..."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리는 말을 가로채었다.

"걱정? 지금 걱정이란 말을 하시려는 거예요?"

마리는 화가 섞인 말투를 하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상민에게 다가가 상민의 눈을 쳐다 보았다.

마치 그 당시 마리를 겁탈한 인간을 보듯 쳐다보더니 마리는 상민의 빰을 사정없이 후리쳤다.

"진정....진정 제가 걱정되었다면 왜... 왜 그 당시 나타나지 못했죠?"

"........."

"아저씨가 그 때 나타나기만 했더라면.... 그랬더라면....흑...흑.."

마리는 그의 가슴을 때리며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상민은 마리의 말을 인정하였다.

그 때.....

그 당시 상민이 나타났더라면 어쩜 그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너의 마음이 풀릴수 있다면 얼마든지 때리렴.... 더 세게.. 더 세게.... 나를 때리렴.."

상민의 지금의 말은 사실이었다.

상민은 그 당시 그들의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러나 겁에 질려 나서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낫선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마치 그 날 밤.....

그 날의 밤 바람처럼.........

그들은 한 동안 말없이 고수부지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마리였다.

"아저씨. 저.... 오늘 하루만 재워주세요...."

상민은 말이 없었지만 그렇게 하겠노라 마음을 가졌고 마리 역시 그 대답을 느낄수 있었다.

공장 지대가 있는 골목의 골목을 지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허룸한 문 앞이었다.

"여...기...야...."

마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남자 혼자 사는 곳이라 좀 그렇지?"

들어서자 마자 매케한 냄새가 코를 진동하였고, 여기저기 보이는 빈 소주병들은 그의 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였다.

상민은 바닥의 지저분한 것을 한 쪽으로 대충 밀어 놓고선 자리를 마련하였다.

"앉....아... 뭐.... 라면이라도 하나 먹을래?"

마리는 그냥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상민은 말없이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는 순간,

"아저씨.. 저도 하나 주세요.."

마리의 그 말에 상민은 약간 당혹해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담배를 마리에게 건넸다.

마리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히더니 기침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처음으로 담배를 피는 것인 모양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상민은 그대로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마리는 머리까지 띵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행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고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하나의 오기인 듯도 싶었다.

"아저씨 혹시 소주 있어요?"

상민은 방 여기 저기를 쳐다보더니 구석에 있던 소주 한병을 마리 앞에 건네 주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말이 없죠? 아저씨 바보예요?"

"........."

마리는 소주를 벌꺽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제가 누군지 아세요? 제가 왜 그 곳에 갔는지아세요?"

상민은 마리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처음엔 죽으러 갔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전..... 전... 창녀의 딸이래요...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냥 어떤 사내와 우리 엄마랑 관계를 가졌겠죠. 그러다 절 임신했을거고 그러다가 낳았겠죠.

지금까지 살면서 몰랐어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죠. 전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어요.

아니, 제 자신 역시 너무도 부끄러웠어요. 세상에서 받을 멸시를 생각하면 도저히 살 자신이 없었죠.

그래서..... 그래서 죽으려 했던 거예요...."

마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리는 자신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상민은 그때까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마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비록 깊은 밤이 되었지만 마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상민에게 들려주었다.

"아저씨... 이 모든것이 마리라는 아이가 자라온 이야기예요. 18년을 살아온 인생이죠."

그제서야 상민은 조용히 담배를 하나꺼내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아저씨.. 저 열심히 살 거예요. 지독하게 오래 살거예요.. 그 이유를 아세요?"

"이유는........"

처음으로 상민이 말을 꺼냈다.

"그들에게 복수 할 거예요. 제가 당한 아픔... 제가 당한 고통... 그 모든 것을 복수 할 거예요.

제 인생을 짚밟은 그들에게 철저히 갚아 줄 거예요."

상민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술 기운인지 아니면 아픈 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마리는 등을 벽에 기댄채 잠이 들어 버렸다.

상민은 그런 마리를 조심스럽게 이불 위로 눕히고 자신은 밖으로 나왔다.

하늘하고 조금 가까이 할 수 있는 옥상으로 올라간 상민은 담배를 피며 먼 별자리를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녀를 돕자...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자... 내 인생을 전부 걸어서라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전부 해주자...."

목숨을 살려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감사의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한 상민....

오히려 자신에게 원망을 하는 마리를 돕겠다는 상민.....

왜.....

무엇 때문에 상민은 마리를 돕겠다는 것일까?

상민의 눈 가엔 이미 이슬이 맺혀졌다.

그리고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며 시간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