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53

[제4회]


BY 신사임당 2003-04-29

생각지도 않던 분가를 감행한 아버지는 수중에 조금 있던 돈과
할아버지가 주신 돼지 한마리를 판돈을 합쳐 방한칸은 마련
하였지만 딱히 작정하고 나온게 아니라서 처음엔 좀 막막해야
했다.
부모님에게 큰소리 치고 나온것도 그러하고, 자신만 믿고
따라온 아내나, 떨구고 온 어린딸을 생각을 생각해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요,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이리 저리 머릴 굴려고 쉽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남의 품팔이며, 주변에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먹고 살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야 했다.
밥한그릇에 반찬 하나로 버티기를 얼마후, 읍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크지 않은 곳이라서 가게가 몇 없는걸 생각하고, 나무문짝
두어개를 의자에 걸뜨려 놓고, 우선 장날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생활용품인 반짇고리에 쓰일 실이며, 바늘이며 자주 쓰이면서 금액은
크지 않아 쉬 팔리고 물건대기가 용이한 것들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금액이 크지 않다 보니 팔리긴 잘 팔렸지만 그나마도 몇개씩 밖에
갖추질 못해, 물건을 대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돈이 없어 중학교 조차 중퇴해야 했던 아버지는, 돈없는 설움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기에, 독하다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한푼 한푼
개미가 역사하는 심정으로 술과 담배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먹고 입는 것을 아껴 돈을 모았다.
그러나 이를 좋게 보는 사람은 사람이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남자로 태어나 술한잔도 못하고 돈쓸줄도
모르는 자린고비에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든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로 큰돈은 아니지만
조금씩 통장에 돈이 쌓이는 재미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어다녀야
했지만 힘든줄을 몰랐다.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 목수 일을 하시던 분이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고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이 들어와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원래 손재주가 있었던 관계로 다른사람이 5,6년 배워야 할일을
3년만에 모두 배울 수 있어 제법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된 어린 초애는, 한달에
두세번 밖에 만나볼 수 없는 엄마가 그리워 할머니의 눈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거나, 담모퉁이 안보이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설움을 쏟어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의 이런 모습에 가슴이 쓰리고 아팠지만,
그렇다고 하고 많은 주변 일을 버려두고, 이런 손녀에게만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할머니 또한 이런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잘 따르지
않고 할아버지 주변만 맴도는 어린 손녀에 대한 미움과 안쓰런 마음을
감추었다.
아버지가 목수 일을 하면서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긴 했지만, 초애가
엄마, 아빠와 살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방한칸에 살면서 그사이 남동생과 여동생이 태어나 다섯식구가
살기엔 너무 비좁은 까닭이었다.
초애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두칸 방을
구할 수 있었고, 비록 남의 집이었지만 그지 없이 넓어 보이는
집에 더 없이 기뻐하였다.
하지만 초애는 부모와 살게 된 기쁨도 잠깐, 어쩌다 한번씩
만나야 했던 애틋함은 뒤로 하고, 웬지 알 수 없는 서먹함에
식구들 몰래 눈물을 삼켰다.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는 일을 찾아 바쁘고, 어린
두동생 뒤치닥거리며 가게 일에 지친 어머니는 미처 이런
초애에게 까지 신경을 쓸만한 여력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부모와 살게만 되면 그동안 못 받았던 사랑속에 살게 되리라
꿈을 꿨던 초애로서는 이런 환경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서글프기만 했다.
어리기는 했지만 초애는 이런 상황들이 어쩔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랑하던 성격은 이제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이름표와 콧수건마저 혼자 챙겨 가슴에 꽂고, 학교문을
들어서는 초애는 손에 손을 마주잡고 걸어가는 친구들과
그 부모네들이 부러워 눈물을 삼켜야 했다.
운동장에 늘어선 아이들의 줄속에 섞여있던 초애는 바로 옆
친구가 따라 온 엄마에게 하는 철없는 어린양에 참아야 했던
설움이 복받쳐 땅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줄을 맞춰 세우던 선생님은 갑자기 울어제키는
초애의 행동이, 부모와 떨어져 학교에 다녀야 하는 두려움
때문으로 해석하고 다가와 따뜻이 감싸 안아주며 달래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초애는 엄마 가슴처럼, 할아버지의 가슴처럼
따뜻한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동생들에게 빼앗긴 부족한 사랑을 선생님에게 느끼며, 초애의
학교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