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미쳤다.
누구도 그 의미를 알지 못 했다.
그녀가 내게 문득 말했다.
사는 게 뭔지…
순간 그녀의 허무한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내가 아는 그녀는 일류 백화점의 명품 코너의 상품처럼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명품의 가치…그녀의 포장은 그것을 지닌 어떤 것이었다.
그녀는 활기차고 명랑하면서 도전적이고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뭐든 자신의 원대로 뜻대로쉽게 움직이는 거침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써 그녀의 포장을 무시하려고 하면서도 문득 어느새 그 앞에서 소심해진 자신을 보면서 몹시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듯했다.
벚꽃, 개나리, 목련이 한 번에 피어버린 이상한 봄날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문득 그녀가 내뱉은 그 말이 내게는 몹시도 거슬렸지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게, 무관심하게 나는 씩 웃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별거 있어?"
그녀가 잠깐 나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마치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듯한 표정으로…나를 보는 듯이 느껴졌다.
언제인가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시게 된 후부터 문득, 문득, 몹시 부끄럽고 문득 도망치고 싶었다. 뭔지 모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질투를 넘어서 나의 존재를 열등하게 하는 뭔가를 느끼며 그녀는 순간 나의 경쟁자가 된 듯 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존재는 내 존재를 억압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녀가 없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이 그녀를 싫어하게 했다.
성공의 상징이라고 하는 그녀의 외제 고급 차에 앉을 때 그 편안함에 묻히면서 느끼는 어색함이 차 밖에서 나를 보며 부러워하는 낯선 이의 시선으로 상쇄되듯이,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나를 부각시키기에 필요했음도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상사다. 라고 스스로 되뇌이는 듯 했다.
그녀가 말하는 외국의 어떤 명소를 거닐어 본적도 없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도 문외한 인 나는 가난한 도시 빈민의 딸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다수이자 소수가 선망하는 서울소재 국립대를 나왔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충분한 독서와 철학적 사색을 통해 내 삶의 가치와 품격을 스스로 만들어 온 듯 했다.
하지만, 점점 허접해져가는 내 삶의 포장에 스스로 움추리고 마치 게가 눈을 좌우로 연신 돌려 주변을 점검하는 듯이 살고 있는 자신을 구제할 수단이 없음에 지쳐가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나를 정신의 깊은 곳에서 주눅들게 하는 그녀였다.
“이 놈의 카드값…갚아도 갚아도 점점 불어나네…”
씩 하고 그녀가 웃었다.
그녀의 몸에 걸쳐진 것의 금전적 가치가 내가 반년을 일해야 간신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액수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느끼던 괴리감이 나를 움추리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Money talk…
한국의 비버리힐즈로 불리는 강남구의 어떤 동네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던 주눅과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말, 옷, 구두, 가방 등에서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가 싫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를 돕는 스무살의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며 그녀의 뒤를 ?아 다니며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거슬린 듯 했다.
금전 만능의 시대…등록금이 없어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내 고등학교 친구의 생각이 났다. 그 애는 지금 경기도 어딘 가에서 치킨을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과 같이…
언젠가 등록금이 모자라서 휴학을 할 까 고민하던 나에게 과외비가 나왔다며 밥이나 먹자고 호텔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던 선배의 얼굴이 떠 올랐다. 과외를 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주변을 갖지 못한 나는 과외 자리를 동냥해서 등록금을 때우곤 했다…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이 나왔을 때…누런 봉투에 적힌 600,000만원이라는 숫자가 나를 감격하게 했고 드디어 내 부모에게 뭔가 보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부풀었던 일이 생각나는 듯 했다.
공채로 3차의 면접까지 보고 직장에 들어 온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외국의 유명대학의 Ph. D. 혹은 MBA라는 포장으로 날라오는 특채 직원은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 적어도 서너 군데의 외국 생활 경험…
책으로 읽고 사진으로 본 것은 그들이 가진 생생한 현장 경험에 비길 바가 못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는 외국어는 뭔가 부족하지 않을 까 두려웠던 생각이 났다.
그녀의 남편은 의사다…
잘 생겼고 몹시도 친절하다…
그녀의 소개로 남편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들렀을 때, 스스로 몹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가 얘기 했을 때…도망가고 싶었다. 그녀가 나에 대해 뭐라고 말 했을 까? 궁금했다. 이 잘 생긴 선생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을 까 궁금해졌다.
오랜 고시 공부에 남편은 몸도 마음도 메말랐다. 계절 마다 그를 괴롭히는 감기, 식사 후에 호소하는 소화불량, 두통 이 모든 것이 STRESS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그는 나와 같은 대학의 법학과 수석 입학생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그를 통해 상승하는 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그가 내게로 왔을 때,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내 마음 속의 잔잔한 동요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의 초라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당당하고 자신에 찬 어투로 물었다.
“내일 오후에 전화주세요.” 하고 그가 활짝 웃었다.
차라도 한 잔 같이 하자는 요청을 물리치고 오는 길에 남편의 손을 꼭 쥐었던 기억이 난다.
“오빠가 요새 많이 말랐어요?”
그녀가 물었다.
“응”
“별로 나쁜 데는 없는 것 같다던데…”
물끄러미 그녀를 보다, 내가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을 그녀가 먼저 알고 있는 것이 화가 났었다. 물론 그녀는 그녀의 남편을 통해서 들었겠지…
“그래…그럼 내가 오후에 따로 전화 안 해도 될까?”...”그냥 보약이나 한 재해야 겠다.”
“너무 신경쓰지 마요…오빠 보다 언니 스스로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좋을 꺼야”라며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는 듯 느껴졌다.
무엇이든지 그랬다. 나보다 넓은 세계를 알고,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고, 내가 동경하던 모든 것을 갖고,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조건을 갖춘 그녀…그녀의 그런 것이 나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하고 방황하게 했다.
남편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내가 한 선택이 잘못이었나?’, ‘나는 나의 세상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남편의 세상은 어디인가?’, 생각했었다. 마치 움직이는 콘크리트 벽에 갖혀 점점 좁아지는 공간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은 나를 발견했었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벽의 감옥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J, 출근 안 했어?”…
“모르겠는데요…연락없었는데…왜 안오지?”
언제부터 인가 그녀는 출근시간을 맞추지 못 했다. 5분만 늦어도 주눅이 들고 타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지각 혹은 무단 결근은 참을 수 없는 나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졌다.
“전화 좀 해보지…”
나를 힐끔 쳐다보고 매우 건조하게 전화의 다이얼을 누르는 신입사원의 모습에서 문득 지탄 받는 구시대적 상사의 모습으로 연상되었다. ‘아차…’ 중간 관리자란 입장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자들과 옛 것에 대한 집착과 예의라는 말로 가장된 권위 주의의 희생양인 듯 느껴졌다.
“전화 안 받는데요…”
등 뒤에서 내리 쬐는 햇살이 따가왔다. 창가의 자리를 얻기위해 10년을 미친듯이 달려왔었나…하고 문득 생각했다. 지금 나의 목표는 독립된 나만의 칸 막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들을 뒤로하며 창가의 내 자리까지 걸어 들어와서 앉을 때의 뿌듯함이 아마도 창가 자리를 떠나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갖게 되었을 때의 넘치는 만족감과는 비교도 안되리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었지 않나 생각됐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방을 갖기 위해 그리고 내 존재를 지키기 위해 나에게 직장은 목숨 줄이었다…그런 나에게 그녀의 근무 태도는 견딜 수 없는 짜증과 질투를 불러일으켰었다고 생각됐다. 갑작스런 부장의 호출로 그녀의 결근 이유를 듣기 전까지는…
“J씨는 당분간 출근 못 하게 될 것 같은데…임시로 아르바이트를 충원해 줄 테니까…그렇게 알고 있지”…
부장은 나에게 탐탁지 않은 듯한 태도로 얘기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