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씨 그거 진짜 아니지!'
'당근이지!'
'그런데 아버지한테 왜 그래?'
'약올라서 그랬다 뭐'
'참 영주씨 성질도 어지간하다'
영주는 그날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진심으로 부탁하는 김선생의 목소리에서 영주는 시아버지가 허락을 했음은 물론이거니와 곧 영주에게 명령하듯 허락을 내릴 줄도 알았다.
그래서 였다.
어차피 내가 이래도 결국은 하게 될 것...
'창준씨 이번연휴에 친정에 좀 가자'
'친정에? 왜?'
'왜냐니?'
'무슨날이니?'
'아무날도 아니다.왜 그럼 가면 안되'
'그건 아니지만 어른들이...'
'나 시집와서 한번도 친정에 안 가봤다'
'그거야 거리도 멀고 그러니깐..'
'그러니깐 이번 연휴때 다녀오자구'
'아 알았어'
'약속한거다'
창준은 아버지한테 말하기가 영 쉽지가 않았다.
아버지 성격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 지금 말해봤자 안 먹힐텐데...
다음날 출근하기전 창준이 지나가는 투로 넌즈시 말을 던졌다.
'엄마 나 내일 처가에 좀 다녀올께요'
'응? 처가?'
'응 장인 장모님도 궁금해 하실것 같고..영주도 여기와서 한번도 안가봤잖아요'
'.....'
'내일 연휴고 하니깐 가보게요'
'....낸 모르겠다.느그 아버지한테 말해봐라'
퉁명스럽게 내뱉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 창준은 한풀 기가 더 꺽였다. 그걸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영주가 한마디 했다.
'어머님이 허락해 주심 되잖아요'
'내가?'
'에'
'그래도 젤 어른한테 물어봐야 안되나?'
'에..할머니 저희 내일 친정에 다녀와도 되죠!'
'호호호 와 가보고 싶나'
'에..시집와서 한번도 못가 봤잖아요'
'호호호 갔다온나'
'에..고맙습니다'
'그대신에 느그 아버지한테 말은 하고 가그라'
'에!'
방을 나가는 영주와 창준을 보면서 시어머니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뭐할라고 허락합니꺼'
'자가 엄마 아부지가 보고싶어 안카나'
'그래도 연휴때 창준이 좀 쉬게 놔두지'
'그만 캐라..'
'.....'
영주와 창준이 다음날 처가에 간단 얘기를 전해들은 시아버지는 버럭 화부터 냈다.
'어딜 가?'
'즈그 집에 한번 다녀온다케요'
'시집왔음 그만이지 뭘 다녀와'
'당신 어무이가 갔다오라 캤으이 당신이 알아서 하소'
시아버지는 당장에 영주를 못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일만 생각해도 괘심했는데 뭐 잘했다고 친정에 나들이를 가!
그렇게 사랑을 나가서 또 다방에 나갔다.
내가 갸 성질을 콱 고쳐놀기다.
다벙에 들어서자 모이는 멤버들이 벌써 커피한잔씩 앞에 놓고 이런저런 세상야그들을 나누고 있었다.
'어이 왜 이제와'
한때 교장을 지냈던 동네 유지중의 한분이 먼저 시아버지에게 말을 꺼냈다.
'많이 기다렸나 보네..'
'여그 커피 한잔 가져온나'
세영감이 모였다.
시아버지와 전직 교장선생님..그리고 모그룹의 삼촌되는 양반 셋은 늘 이렇게 모여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자식얘기, 그리고 철따라 관광도 하러다니면서 찰떡 궁합 친구들이었다.
'참 느그 며늘애가 김선생 대신 아들을 돌본다매'
'누가 그런말을 하드노'
'여 오다보이 길건너 마트에서 그카더만'
'뭐 몰래'
'와? 할수 있음 하는 것도 괜찮재'
'허허 가가 괜히 나섰다가 어른들 책만 잡히는 거 아닌가 하고 안할라 안카나'
'뭐어? 젊은 사람이 생각도 깊구마'
'그래서 그러라 칼기가'
'그건 아니구 한번 더 말해봐야재'
이렇게 말하는 시아버지는 친구들 앞에서 뜻하지 않게 며느리의 칭찬을 듣게 되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하게 할려면 그의 체면을 낮춰야 하는데...영 그게 못 마땅했다.
젊은 아한테 부탁 할 수도 없고...에잇!
시어머니는 영주가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당신은 정말 시집와서 시키면 시키는 데로 죽은 듯이 살아왔건만 영주는 지 할말 다하고 살고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것 같아 속이 부글부글 은근히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도 자신의 이런 심정에 내심 놀랬다.
당신은 며느리에게 편한 시어머니가 되고 싶었었다.
그런데 왜 내가 부아가 나는 것인지 시어머니도 당신의 속을 어떻게 마음데로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주한테 그 옛날 당신이 겪었던 그 매운 시집살이를 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미칠 노릇이었다.
영주가 하루 일과를(?) 전부 정리하고 방에 들어와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친정에 뭐할라고 그리 가!'
버럭 역정내는 큰목소리가 들렸다.
시아버지였다.
'느그 어매는 시집와서 처가에 한번도 안갔어!'
오 마이 갓! 그걸 자랑이라구.....
'아버지 제 친구들이 저 이상하게 봐요'
'뭘 이상하게 봐?'
'처가하고 사이 안 좋은 줄 알아요'
'그렇게 보든 말든 그게 그리 신경쓰이나?'
'저 이번연휴때 다녀와야 겠습니다'
'뭐야?'
'제가 오늘 처가에 전화까지 했거든요'
'뭐어?'
오우케이! 창준 화이팅!
'아버지가 기분좋게 허락해 주세요, 네?'
'....'
방으로 들어서는 창준은 이불에 엎드려 있는 영주를 봤다.
'자기야 참 힘들다.엄마 아빠 보는일이..'
'내일 일찍 출발하자'
'근데 자기가 전화했어?'
'내 성격모르니..어떻게 전화해'
'그럼 그렇지..그럼 아버님한테 일부러 그랬구나'
'그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더라'
'고마워 자기야'
친정에 온 영주는 웬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몰랐던 친정엄마의 사랑도 그리고 항상 영주편에서 말을 거들던 아빠도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런 감정은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더했다.
막상 친정에 간다고 생각하니 그리움이 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