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수박밭에서 수박순을 치고 있던 시어머니는 은근히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영덕이네에게 지나가는 투로 말을 했다.
'김선생이 아파서 아-들 공부도 잘 안된다 카고..쯧쯧쯧'
'좀 심하다 카데요'
'벌써 한 일주일 되가재'
'고 아 몇없는 거 맨날 운동장에서 체육만 한다 카데요'
'도시아들은 학원도 다닌다 카던데...'
'그카이 아들 엄마사 걱정이지예'
'빨리 일나야 될낀데'
'김선생말고도 누구 한사람 있으믄 얼마나 좋아예'
'(그래 그거야)대학교에서 그 선생자격증을 따기도 한다카데'
'...?'
'그게 우리 새사람이 그런 자격증이 뭐 있다안카더나'
'그래예?'
'그런거 갖고 있음 아들 가르칠 수는 있재?'
'지가 뭐 알아예(알고보이 며느리 자랑아이가?)'
영덕이네는 창준네 바로 옆집에 붙어 사는 집으로 아들 하나를 빼곤 전부다 고등학교만 보내고 전부다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었다.
그나마 하나있는 아들도 겨우겨우 전문대학을 보낸 형편이라(순전히
공부가 뒤떨어져서) 자식들 교육문제에서 만큼은 은근히 배알이 꼬이는 심정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도시서 새사람을 맞은 걸 안그런척 하면서 무슨 자랑거릴 하나 더 얻은 양 도도한 척 하는 성님이 눈에 안 찼었는데 이건 또 뭔가...
'그거야 뭐 딴다고 다 선생하믄 선생아닌 사람 있겠어예'
'아이라던데...그래도 없는 것 보단 안 낫겠나'
'뭐 김선생이 죽을병 든것도 아이고 성님 그런 걱정마이소'
'내 뭐라 카더나'
시어머니는 영덕네의 빈죽거림에 괜히 말을 꺼냈다 싶었다.
(와 하필 이 여편네한테 말을 해갖고..
괜히 안 한것 보다 못하다 아이가..)
몇마디 더 하릴 없는 말을 주고 받다가 나중에는 그저 묵묵히 일만하다가 두사람 다 일어섰다.
하지만 이 일은 시어머니의 걱정과 달리 영덕네의 비죽거림에서 그녀의 남편으로 그게 또 옆집건너 아저씨 그러다가 부뜰네...그러고 보니
학교가는 애를 둔 엄마들 귀에까지 다 들어가게 ?榮?
며칠 후 오후 다섯시쯤 되었다.
'보래..'
사랑에서 들려오는 시아버지의 큰소리에 영주도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에..아버님'
'여그 뭐 먹을 것좀 갖고 온나'
'에?'
'학교 선생님 왔으니깐은 알아서 내온나'
'에'
간단한 과일이랑 마실 걸 준비하면서 영주는 이리저리 머릴 굴려봤다.
선생님이 웬일로 온거래..다 낳은건가?...아버님은 무슨일로? 혹?
사랑에 가서 다과를 조심스럽게 내려다 놓으면서 영주는 김선생에게
가벼운 목인사를 하고 나왔다.
(맞아! 그거야!)
영주는 김선생이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에서 확신을 했다.
(치..!)
그날 늦은 밤 모든 식구들이 아무 말 없이 저녁뉴스를 보고 있을때
시아버지가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쩝쩝..새사람 듣거래이'
'에..'
'그 니가 갖고 있다는게 아들 가르칠 수 있는 그런거가?'
'교원자격증요?(창준이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그거 안 어렵겠나?'(시아버지는 목소리에 힘을 줘가며 영주에게 무슨 큰 하사라도 하는양 영주의 반응을 떠보고 있었다)
'네..그거요'
'그래 한 말해봐라'
'저 많이 생각해봤는데요. 아버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오잉?)뭐어?'
'시골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제가 뭘 알겠어요'
'어..영주씨...?'(창준도 눈이 동그래져 영주를 빤히 쳐다봤다)
'...?'
'괜히 나섰다가 어른들 망신만 시키게요.저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어요'
'....조용히 있겠다고?'
'에..그러는게 나을 것 같아요(흥 요건 몰랐죠?)'
'....으흠..'
'저 먼저 씻을께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영주에게 한방 얻어먹은 표정으로 시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저게 지금 내한테 시위하는기재)
말을 꺼내기 전만해도 시아버지는 이 일로 영주에게 큰 인심한번 써보자 싶었다.
그리고 영주로부터 어른에 대한 권위도 지키고 싶었었다.
헌데 영주가 어른들 말씀이 맞네 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나는데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사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는 입장이 난처해 졌다.
그날 낮에 찾아온 김선생은 큰 희망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간곡하게
부탁을 했었다.
시아버지는 그런 김선생 앞에서 은근히 뻐겼었다.
걱정하지 말라고..내 말 한마디면 내일이라도 뭐 좋은 일 안 있겠냐면서 김선생앞에서 호기까지 부렸었다.
밤새도록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느라 며칠전 영주처럼 그도 잠을 설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