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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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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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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BY 빨간머리앤 2003-04-30

시어머니는 영주의 예측불허 행동에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차츰 우스워졌다.
(자가 뭐 편할라고 그라는 모양인데....)
오늘 일만 해도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예전같으면 깐깐한 시어머니의 한소리를 듣고도 남음이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며늘애의 말에 화를 내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그녀에게 허락아닌 허락을 하는 것이 영 미덥지가 않았다.
(이럴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편하게 해버려?)
웃음은 났지만 도저히 그럴 순 없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생각과 달리 영주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사실 자장면을 시키면서도(농촌 드라마에서 얼핏 본걸 그대로 했었다)
혹여라도 어른들이 한 소리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약간의 염려는 깔고 시작했었다.
근데 이렇게 웃는 시어머니 얼굴을 보자 영주의 마음도 편해졌다.
(맞아..시어머니도 얼마나 힘들었겠어!)
기분이 좋아진 영주는 얼른 시어머니를 모시고 안방에 들어가서 시할머니랑 시어머니 두분과 오붓하게 점심을 했다.

'학교에 김선생이 감기가 심하다던데...'
'(김선생님! 그때 거기..?)'
'오뉴월엔 개도 안 걸린다카던데..호호호'
'어머님 선생님 감기 걱정까지 하세요?'
'그게 아니구 아-들 공부를 못 시킨다 안카나'
'와? 그리 많이 아프나?'
'예..밭에서 오다 학교 한 보이까는 조용합디더'
'다른 선생님은 없나봐요'
'학생도 얼마 없는데 뭐..'
'(정말 시골같다..선생이 한명! 그걸 걱정하는 마을 주민들)'

그날 오후에 들어온 시아버지는 사랑에 들어가자 마자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양반! 정말 싫다.싫어)
영주는 그런 시아버지가 얄밉게 보였다.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밤까지 농사일을 하시는데 아버님은 어쩌다
그것도 어머니가 몇번을 말하고 말해야 한두번 도와주시는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하시는 말씀들은 얼마나 시어머니를 위해주는 것 같은지
모른다.
'새사람 이제 니가 느그 엄마를 많이 도와주거라'
'보래... 그것 놔두고 새사람 하라고 그래..새사람!'
'느그 엄마 나이도 많은데 이제 고생그만 해야재..안 그렇나?'
다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일평생을 그런 어머닐 그대로 방치하시고서는 영주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물려받으라고 하는 듯 하니 영주로서는
그냥 반감만 콱콱 생기는 거다.
처음 시집와서 시아버지의 어머닐 위하시는 말투에서 영주는 참 다정한 부부로구만 하고 흐뭇해 하기 까지 했었다.
근데 그게 말로만 그런다는 걸 알고나자 말많은 시아버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니도 시아버지가 왜이리 잔소리가 심하나 싶재?'
'(헉)에?'
'그게 느그 시어매가 말을 안하이 내라도 해야 안되겠나?'
'아...에'
'낮에 할매랑 있을 때 니 뭐하노?'
'그냥...뭐'
'그래 있지 말고 뭐래도 발전을 위해선 공부를 해야된데이'
'에(웬 공부?)'
'뭐 보는 책은 있나?'
'저 책 잘 읽는데요'
'그래?(...)'
'아까 전에도 틈틈히 책 읽고 있었어요'
'그래 그렇게 책이라도 자주 읽고 시골이라고 만만이 보면 안되!'
그렇게 사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나와서는 영주에게 과일을 시킨 후 또 일장 연설을 했다.

'창준애비 들었나? 김선생 아프단다'
'들었어요'
'한번 가봐야 안되나?'
'한 보고 가보든가 하지예'
두 노인네의 말을 들으면서 영주는 그때 그 선생님을 떠올렸다.
(날 마치 못된 송아지 엉덩이 뿔난 모양 쳐다보시는 그 얼굴을 생각하면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어..)
'빨리 낳아야지 아-들 공부를 못 시켜서 자습만 한다케요'
'그라믄 우야노..쯧쯧쯧'

밤 늦게 들어온 창준은 들어오자 마자 영주의 손부터 보더니 픽 웃었다.
'그럼 그렇지..에유'
'왜에?'
'아버지 뭐라 안해?'
'응..'
'참 우리 아버지 많이 변했다'
'뭐어? 그럼 뭐 한바탕 큰소리라도 나야 되?'
'난 이때껏 아버지 말을 안 들으면 죽는 줄 알고 컸거든'
'(그러니깐 소심쟁이지)..그게 자랑이라고 나한테 말하는거야?'
'아니 그냥 큰소리 안나서 다행이다'
'참! 창준씨 학교에 김선생님 알아?'
'알지..내가 전학갈때까지 선생님 이었는데..왜?'
'감기가 심하다고 동네가 다 걱정인 것 같더라'
'그래?'
'그래서 내가 생각해 놓은게 있는데...'
'뭘? 김선생님 아픈거랑 무슨 상관?'
'나 교사자격증 있잖아..'
'...?'
'그래서 그 선생님 아픈 동안 애들 좀 봐줄까? 그냥'
'...?!'
'무슨 말 좀 해라. 내가 누구 자릴 차지하는 게 아니구..'
'아는데 어른들 한테 먼저 말을 해봐야지'
'그래야 겠지.우선은.. 근데 창준씨 생각은 어때?'
'좀 뜻밖이지만 영주씨 좀 기특하게 보인다.난'
'그렇지?! ㅎㅎ'
영주는 그날 밤 들뜬 기분에 잠도 오지 않았다.
아픈 김선생님 한텐 좀 죄송하지만 뭔가 소일거리가 생긴 것 같아서
룰루랄라 저절로 신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