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가는 영주의 뒷모습을 보는 시어머니는 사실 며느리를 보면서 나름데로 많은 기대를 했었다.
폐백을 할때 그 많은 일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아유.이제 성님도 동지가 하나생겼네예'
'동지는 무슨? 조수가 하나 들어온기재'
하면서 모두들 왁자지껄하게 그녀에게 한마디씩 거들었고 그녀 또한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이 넓은 집에 시집와서 근40년동안 거짓말 보태지 않고 혼자서 뼈빠지게 일했다고 해도 그 누구하나 아니라고 토를 달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그년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 밑으로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건 다른 걸 전혀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무조건 좋았었다.
헌데 변수가 있을 줄이야...
신혼 첫째날....
'창준애미야! 아-들 올때 멀었나?'
'아침 9시에 출발했다카이 곧 오겠지예'
시어머니는 아침일찍부터 창준애미에게 애들올때가 언제인지 묻고 또 묻곤 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조그마한 체구에 한복차림으로 언제나 머리에 쪽을 하고 있었다.
항상 웃을때도 호호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정도였으니 조금 험하고 인상 찌푸릴 일을 할라치면 영락없이 그녀 차지였다.
막상 시집을 와서 처음으로 삼계탕을 끓일때였으리라....
시댁에서는 일체 가축들을 키우지 않았다. 그래서 복날 닭을 사온 것이다.
'아유 생닭을 사가지고 오믄 어얍니꺼?'
'아 그게 제일 팔팔한 놈이니깐 그렇재'
'아 나는 이 닭 못잡습니더. 난 몰라예'
하며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에게 토를 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닭을 시아버지께서 어떻게 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 새색시인 그녀가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지가 할께예(으윽...엄마야 이걸 우야노)'
그렇게 해서 그년 생전처음으로 닭목아지를 비틀었으며 바둥거리는 닭을 내동댕이 치듯 끓는 물에 집어 넣었다.
'헉! 헉!'
'엄마야 니 그걸 어예...'
'예? 그라믄..뭐...'
'아유 무서버라. 그걸 어떻게 생손으로 잡노'
'.......(뭐 하고 싶어서 했음니꺼? 누군 뭐 좋은줄 압니꺼?)'
그년 도저히 입밖으로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떤 일이든 해치우는 무서분 며느리로 낙인 찍혔었다.
그후로 부엌일은 물론이거니와 밭일 논일까지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다 했었다.
그런 그녀와 또 그녀의 시어머니는 서로가 다른 생각으로 며느리와 종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오는갑네예'
'이제 오나'
'예 차소리 나네예'
'얼른 나가봐라. 얼른'
내모는 시어머니 손길에 의해 대청마루로 나선 그녀 눈앞에 든든한 장손과 한복차림의 이쁜 며느리가 들어서는 모습을 봤을때 그년 감개무량해서 눈물까지 나올려고 했었다.
'그래 잘 다녀왔나?!'
'예. 먼저 절 받으세요'
'그래 그래'
방안에선 시할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시어머니 이렇게 세분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솔 달고 있었다.
대청마루에서 절을 끝낸 애들은 우선 작은방에 보내고 시어머닌 얼른 떡국을 차리고 있었다.
'아즉 멀었나?'
'다 했어예. 그런데 이걸 다 묵을수 있는지 모르겠네'
작은 상위에 반찬 몇가지와 커다란 머슴 밥그릇에 떡국 두그릇을 올려서 작은 방에 가지고 갔다.
'이거 다 묵그라'
'에..이 많은 걸 다요'
'원래 시집오믄 그렇게 다 묵었다'
나중에 나온 상위엔 정말 두 그릇이 뚝딱 비워져 있었다.
첫날은 그렇게 전혀 새사람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게 했다.
하지만 어떡해서든 뭔가 일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새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근데 그 다음날....
일어나서 밥을 다 해놓을 줄 알았다.
아니다. 그녀보다 늦게 일어났다.
그년 기다렸다. 며느리가 밥을 얹혀 놓기를....
그런 시어머니를 못마땅하게 바라다 보고 있은 이가 있으니 그 이름하여 다름아닌 그녀의 시어머니인 것이다.
'니 뭐하노?'
'에..새사람 나오나 기다립니더'
'뭐할라꼬? 밥 시킬라 그러나?'
'예..이제 갸가 해야지예'
'어제 여행돌아와 피곤한 아한테 꼭 그라야 되나?'
'에?'시어머니는 경악스러웠다.
'니가 해라. 그게 뭐 힘들다고...얼른 밥 얹히라'
어째 이럴 수가.....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밭에 나갔다.
밭에 나가 수박 순을 치면서 생각했다.
점심은 다 알아 하겠지....
그것도 말짱 도루묵이었다.
점심준비는 커녕 며느리 그림자도 안보였다.
'창준애미 들어왔나?'
'에..근데 새사람 어디 갔어예'
'없나? 내는 잘 모르겠다. 점심 준비해라'
'예..'
(뭐꼬? 어떻게 며느리가 시애밀 부려먹을 수 있노?)하며 그년 심기가 뒤틀릴대로 뒤틀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새사람은 기가 막힐 차림이었다.
그래서 더 뜨악하게 말을 했다.
다시 나온 새사람은 얌전하게 한복을 입고 나왔다.
시어머니의 심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영주는 생기발랄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낸다.
'어머니. 저 한복벗고 편하게 입어도 되요?'
'와?'
'이틀 입고 있었는데도 너무 불편해요'
'그래라.그 대신에 긴옷 입으래이'
'네...'
도저히 눈치를 보지 않는 영주를 보며 뭔가 뜨끔하게 한소릴 해야한다고 생각한 시어머니이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나 하고 기회만 보고 있다.
'근데,어머니..저기 저 학교 분교죠!'
'그래,와?'
'아뇨..그냥 잠시 구경한번 했어요'
'구경?(허걱..)그럼 니 아까 그래 입고 학교까증 갔나?'
'에...'
하며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영주의 시선에 다시 피곤한 기색이 뭍어나오고 있다.
'왜요?어머니...제가 뭐 큰 실수라도 했나요?'
'시집을 갓 온 새사람이 그리 입고 다니믄 어른들이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노?'
'....'
'시집오기 전엔 그리 다녔어도 이제부턴 가려 입으래이'
하고 딱 잘라 말한 시어머니를 보며 영주는 점점 아침에 다짐한 포부들이 스르르 풍선에 바람빠지듯 힘이 없어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