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창준은 신혼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했다.
아침 일찍 창준이 출근을 하고 영주는 방안에서 골똘히 머릴 굴리고 있었다.
어젯밤 창준은 그녀에게 귀가 따갑도록 몇가지를 주지시켰었다.
그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욱씬거리는 것이 도저히 해답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하고 아침부터 눈에 힘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창준이 어젯밤 영주에게 한 당부사항들은...
'영주씨.지금내가 하는 몇가지만 잘 지키믄 영주씬 사랑받는 며느리 될 수 있어(어느새 창준도 그녀에게 말을 놓았다)'
'사랑받는 며느리? 하하하! 뭔데 말해봐'
'첫째.. 어른들 앞에서는 경어를 사용할 것!'
'음. 그건 동감!'
'둘째.. 아버지 앞에선 더더욱 조신할 것!'
'조신! 뭐 어떡해?
'그러니깐 항상 무릎 꿇고 앉아있고 어디 나가실때나 들어오실때나 언제나 인사올리구..'
'뭐야? 자긴 지금이 조선시댄줄 아나봐..ㅋ ㅋ'
'그게 어른들은 아직 그래..그러니깐 영주씨가..'
'아 몰라. 그것말고 내일 아침 내가 밥할께. 어머니 몇시쯤 일어나셔?'
'응..그게 항상 새벽5시쯤에 일어나시거든..'
'뭐어? 그럼 내가 그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야 되! 나 못해..'
꿀먹은 벙어리마냥 창준도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영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에 이어 씩씩대기 까지 했다.
창준은 앞으로의 일들이 웬지 모르게 겁이 나기시작했지만 이왕 결혼한거 어쩔거야 하는 막가조 심정으로 그날밤을 보내야 했다.
(영주씨 다 니 알아서 해라. 내는 모른데이..)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나니 다음날 이리골몰 저리골몰 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거야.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으니깐 새로운 분위길 잡아 가는거야. 모른척 하고 내 식대로 이끌어 가야지'
영주는 투지에 타 올랐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어른들의 성향부터 파악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한 보자..
서할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시아버진 동네 다방에 나가셨고(매일 출근도장 찍는다고 들었음)..
시어머닌 밭에 나가셨고(두 노인들을 봉양하느라 시어머닌 새벽부터 밤까지 쉴틈이 없는 가여운 분이심)...
안되겠다. 우선 머리부터 식힐겸 동네부터 한바퀴 휙 돌고오자 싶어
그녀는 한복을 벗고 간편한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
으음...그래 이거야..이게 바로 전원생활이야..
아...이 꽃내음! 이 흙냄새! 이 산들바람!
영주는 모든게 좋았다. 시골이 주는 느긋함이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조금 걷다보니 영주의 눈앞에 작은 학교가 보였다.
몇개의 교실이 있는 걸 보니 분교같이 보였다.
(어! 분교네...구경해보자)
아이들 몇몇이 수업을 하는지 복도를 걷는 영주의 귀에 조잘조잘 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영주는 호기심에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안을 들여다 봤다.
헉...웬 눈들이 저리 많지? 왜 날 쳐다보는 거야?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며..
'저어..누구 찾아왔어예?'
'에..아뇨! 저 그냥 지나가는 길에 구경 좀...ㅎㅎ'
'구경예?(뭐꼬? 이 여자) 아-들 공부하는데 방해말고 가주이소'
'에? 아..예!'
뒷통수 따가운 걸 느끼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영주를 쳐다보는 이 학교의 김선생은 뭐꼬? 저여자 누꼬?하며 아이들보다 더 강한 호기심으로 그녈 한번 째려보곤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분교하면 떠오르는 순수 그자체인 아이들과 그애들의 순수를 지켜주는 선생이 있을것이란 생각이 큰 잘못임을 깨달은 영주는 괜히 화가 났다. 꼭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해서 선생님한테 야단맞은 꼴이 아닌가 싶어서 이건 말로만 듣던 시골인심(?)관 상당히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다.
(에이..과자나 몇봉지 사서 집에 가자)싶어 그녀는 동네에서 그중 큰곳으로 보이는 마트(세어봤자 두개의 구멍가게)에 들어서서 과자 몇봉지와 음료수 몇개를 가지고 계산대에 갔다.
'저..이거 얼마에요?'
'아이구..저..혹시 큰대문집에 새로온 새사람 아이라예'
'에에..(으응 큰대문집 그렇게 부르는 구나)'
'아이구..서울아가씨가 시집왔다 카더이..진짜 서울아가씨네'
결코 칭찬같지 않은 소리같아 얼른 돈을 치르고 집으로 달려왔다.
집안에 언제 들어왔는지 시어머니가 부엌에 있었다.
'어머니 들어오셨어요'
반가운 마음에 영주는 얼른 부엌에 들어갔다.
'그래..(서서히 고갤 들어 영주를 보는 시어머니는 헉하는 표정이 되어서)..아이구..니 그 옷차림 그게 뭐꼬?'
'에...제가 왜요?'하며 영주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 봤다.
평소에 입고다니던 청치마에 앙증맞은 반팔블라우스는 항상 그녈 더 앳되게 보여주었고 사람들마다 그녀의 코디에 칭찬을 해줬었기에 그년 더 의아해졌다.
'아이구..니 그렇게 팔다릴 다 드러내놓고 다니믄 우야노?'
'.....(뭐라 말이 안 나왔다)'
'니 그라고 동네 다녔나?'
'네에..'
차마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벌어진 입을 급히 다물며
'?榮? 니가 뭐 알겠노?' 들어가서 옷갈아 입고 나온나'
'옷 갈아입어야 되요?'
그녈 한번 더 쳐다보고선
'긴치마랑 팔 가리는 옷으로 입고 나온나'
'에...'
뭐라고 말을 해야 겠는데..아 분명 이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