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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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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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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희망 2003-04-20

눈꺼풀은 자꾸 무거워지고... 환청이 들렸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건 나의 아이들 얼굴...
유난히도 하얗고 예쁜 아이들의 이슬맺힌 눈망울이 떠올랐다.
이건 아니야. 나만 편하자고 그래 아이들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는 주인집 언니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취도 안된 상태에서 고통스러운 위세척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른뒤라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다.
차가운 침대와 난방도 되지않은 곳에서 나는 온몸이 다 젖은채 이미
몸속에 녹아버린 약물을 빼내려고 하는 의사의 응급처치에 몸을 맡길수 밖에 없었다. 얼마쯤 됐을까..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오셨다. 엄마는 처참하리만큼 떨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만 하라고 그러셨다. 그리고 산소호흡기를 꼽고 온몸에 이런 저런 기계들을 꼽고 따뜻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중에 그사람의 전화가 왔다.
내가 쇼를 하는거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이상 전화하지마라고 그랬다. 심지어 의사선생님께서도 화를 냈다.
그 현실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그사람에게...
그리고 부모님들도 눈에 보이면 정말 죽여버릴거라고..
다시는 나타나지 마라고... 나중에 내가 이래야만 했던 사실을 알게 되신 부모님은 아무말도 못하셨다.
나는 미안함과 서러움에 울다가 잠이 들었다.
3일.... 아무생각도 할수 없이 잠을 자는 이시간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병원에서 며칠을 입원한후 나는 집에 돌아왔다.
주위에서는 아직 모르는듯 감기로 입원을 한걸로 알고있다.
몇몇 사람들만 빼고...
나는 새로운 맘을 가지고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삶이라고... 정말 열심히 해서 성공하리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사람이 벌려놓고 간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일단 나는 조금이라도 빚을 갚기위해 집을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사를 하는대도 부채가 걸려 4백만원이 가까운 돈을 들고
서야 겨우 이사를 할수있었다.
하지만 전세값은 순식간에 한푼도 남지않았다. 주위에서 전세금에다 압류를 시켜나서.. 나는 정리도 되지 않은채 아이들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되었다. 월세방으로...
공장이라도 잘돌리면 그래도 금방 풀리겠지?
그래도 잘하면 빚을 갚을수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나는 새롭게 마음을 다 잡았다. 하지만..... 생각외로 부채는 자꾸 자꾸 늘어났다.
왜 이렇게도 세상은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는지... 정말 알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