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
그 어둡고 깜감한 밤이면 유난히도 아프면서 자란 둘째아이..
차도 잘 오지않는 밤에 열이나고 아팠을때 왜그러게 가슴이 아팠는지.. 어느날이던가 돌도 지나지 않았던 둘째아이가 예방접종을 하고 와서 아무렇지도 않던 아이가 갑자기 숨이 가쁘더니 호흡곤란이 일어나는 거였다. 매번 애들이 아파서 애아빠한테 연락을하면 손님들 만나고 있는데 전화했다고 술을 먹고는 폭력을 쓰고 욕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동생을 어쩜 애들아버지라고 해도 될만큼 나의 동생을 의지하고 살았다. 자다가도 애들이 아프면 밤새 같이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몸부림을 쳤으니까.. 그날도 난 내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숨을 잘쉬지 않는 내아이를 안고 난 그 깜깜한 밤에 친정부모님께도 연락을했다. 큰아이때문에 겨우 세살이였으니까..
숨을 쉬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가까운 병원으로갔다. 거기서는 오직 아무 손도 못되고 기다리라고만 있는거였다. 우린 기가막혔다.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 아이를 마냥 지켜만 보라는 것인지.... 우린 그래서 조금이라도 낳은 종합병원으로 차를 달렸다. 차속에서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내 아이 내 소중한 아이 ... 제발 살아달라고..
응급실로 달려간 우린 아이가 약부작용으로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여리고 여린 몸을 벗겨놓고 마구 열내리라고 닦아내고 닦아내고
마치 부러질것 같은 손목에는 주사바늘을 꼽고 내가 우는것을 본 내동생은 마음이 아팠는지 아이를 대신 닦아주고 안고 달래주었다. 한참 후에 술이 취한 애아빠는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있는데 전화했다고 병원에서 욕을하면서 따지는 거였다. 아이가 다 죽어가는 데 어쩌면 그럴수가 있는지.. 그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렇게 그렇게 매번 나는 친정식구들을 의지해가면서 살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고 이해가 안되는것은 그의 사고방식이였다. 아무리 자라온 가정환경이 다르다지만 자신이 가장노릇을 못하는것을 깨닫지 못하고 항상 친정식구들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친정식구들이 싫어하지도 않았고 친자식처럼 어찌보면 나보다도 친자식처럼 잘해대해주었고 행여 싫은 소리 한번 안해보셨는데도 말이다. 매번 맛있는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먹고 쉬는 날이면 가족들과 같이 나들이도 가고 난 그런 화목함이 너무 좋았는데... 그사람은 그게 어쩜 구속이였는줄도 모른다. 매번 싸울때면 이유없이 친정식구들을 욕하는 것이였다. 불질러 버린다고.. 도대체 왜그러는지 알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바람피우고 친정부모님들 무시하고 술먹고 주정하고 마누라 무시하는 그런 사람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줄 모른다던 그런 속담처럼 그 사람은 너무 너무 나쁜것은 빨리 배웠다.
심지어 어제는 경찰서를 갔는데 누가 남편한테 어떻게 해서 죽었더라 하면 며칠후면 술먹고 들어와서 똑같이 하는거였다. 그래서 난 경찰서 하면 죽도록 싫었다. 자칭 자기가 형사라고 사칭하고 같이 형사들과 누구 잡으러간다고 으쓱대고.. 그러다 보니 거기에서 자기가 유리한것만 생각하고 때려도 머리만 때리는 것이였다. 때려도 보이지 않으니까.. 어느땐 며칠이고 머리가 아파 눈을 못뜰정도로 두통에 시달릴때도 많았다. 어떤때는 신고할려면 신고해라 그런식이였다. 자기가 다 아니까 못잡아간다는식으로.. 참 그럴때면 작고 힘이없던 내가 참 비참하고 죽고싶을 정도로 싫었다. 모성애가 무엇인지 아이들을 놓고 협박을 하면 난 그자리에서 아무 생각을 할수없었다. 잘못했다는 말밖엔는.. 그것이 그사람한테는 가장 큰 협박이였을거다. 아무말도 못하고 당할수밖에 없었으니까.. 덩치큰 남자가 난 정말 그사람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전화도 못하게하고 차도 없는 그곳에는 도망이란 꿈도 못꿨다. 그렇게 하루 하루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곳에서 사는동안 그사람은 갈수록 악해지기만 했다. 어느땐 악마를 보는것같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더 세상사람들과 가까이 있었더라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더라면... 친정부모님이 엄하게 대했더라면 부모님 무서워서라도 못했을걸.. 친정부모님도 그사람의 실체를 많이 알지못했었다. 친정집이 가깝게 있다는것이 가장 곤혹스러웠을때는 애들보고 싶다 뭐 먹으로 와라 하면 화장으로 그걸 감춰야한다는거 맘 아파할까봐... 아니 그것보다 반대한 결혼이니까.. 나름대로 잘살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었으니까..
어렸을때부터 엄마는 그러셨다. 여자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다 잘해야된다고.. 그래서 난 젊은 나이였지만 살림.음식.아이들 키우는것. 그밖에도 못하는 것이 없을정도로 다 배우고 집안에서 나름대로 살림만 해갔었다. 그런데도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남들처럼 친구들만나 수다를 떤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그런것도 었었는데.. 자기가 밖에서 누구누구 마누라는 술먹고 그러드라 하면서 만나면 알아서 하라고 물든다고 싫어하기도 했다. 나도 그것은 싫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같이 어울려서 놀고 그랬다는 소문을 들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자기 마누라는 그러면 안되면서 다른집 마누라와 어울려 다니는 심보는 무엇인지... ㅎㅎ 그렇게 그사람은 하루 하루밖에서 맴돌고 난 아이들과 집안에서 살기를 6년... 어느새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내겐
오히려 그렇게 사는게 좋았다. 그런데 정말 싸울만한 이유가 없었는지 밖에서 안좋은 일이 생기면 이유없이 시비를 거는거였다. 나때문이라고.. 내가 무관심해서 그런다고... 그리고 매달 나오는 월급도 아니지만 왜그렇게 비겁할정도로 위세를 부리는지 자기는 몇십만원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백이 넘어가는 돈으로 술먹고 다니면서 몇천원가지고도 트집을 잡았다. 가계부 쓰냐고 내놓으라고 매번 그걸로 시비를 걸었다. 정말 제정신으로는 살수없는 상황이였다. 남들은 그럴것이다. 이혼하지 그랬냐고..
하지만 반대한 결혼 차마 자존심때문에 남의 입담에 오르기 싫어서.. 그리고 밖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 사람이라 모든것이 내잘못으로 알려지는게 싫었다. 정말로 그랬으니깐.. 지금이야 옆에서 겪어본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것을 알지만 그때는 아무도 집안에서 그러는 그를 몰랐기 때문에 다른아이들 장난감 심지어 아는 형수 제수들 생일이면 속옷선물 결혼기념일까지 쳉기는 사람이였으니깐. 남들이 봤을땐 그랬을것이다.
이중인격자.... 그렇게 해서 우린 6년이라는 시간동안 서로의 담을 쌓아가며 또 한번의 회사의 부도로 이사를 가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