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76

[제22회]


BY 봄햇살 2003-04-11

나의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처음 그놈에게 그녀를 빼앗겼을때처럼 베란다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그놈의 집만을 쳐다보고있다.
역시나 그때처럼 내려진 버티컬은 빈틈이 없고 나는 그안에서 그녀가 겪을 고통을 생각하며 충혈된눈을 번들거리며 그집만을 지켜보고있다. 몇일을 그놈만을 관찰했다. 물론 제대로 먹을것을 먹지 않았다.그녀와 고통을 함께 나누기도 함이지만 배고픈 느낌도 전혀 받지 않았다.
몇일을 물과 살기위해 약간의 빵부스러기만 먹으며 그놈을 한동안 지켜본 결과 그놈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아침 일곱시 반이면 집을 나서고 집에오는 시간도 미교적 정확했다. 대략 아홉시가량.
그는 차를 다른동앞의 지하주차장에 세워두고 오는듯 했다.
그녀와 나의 동엔 지하주차장이 없으므로..
아홉시면 낮에도 그닥 붐비는 법없는 이 아파트 단지에 별로 사람도 없을 시간. 물론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으리라. 내 일을 방해할정도의 인파만 아니라면 한두명 정도야 있어도 내작업을 추진하는데 별탈이 없을터였다.
시간이 없다. 그녀는 지금도 저지옥에서 학대당하고 있을텐데 이제 그놈의 생활패턴을 알았으니 어서 일을 추진해야 할것이다.
디데이를 내일로 잡았다.
고기를 사서 입안에 구겨넣었다. 내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구토가 났지만 악으로 구겨넣고 입을 다물었다.
넘어오는 구토를 다시 넘기고 그러기를 몇번.
내몸은 그영양분을 받아들이기로 한것같다. 속이 잠잠해진다.
소화제를 한알 먹었다. 내 뱃속을 도와주는 것이다.
얼른 소화시켜다오. 그리고 구석구석 힘을 보내다오.
내일은 그녀를 구해야 하는 날이니까.
이번에 실패한다면 그녀도 나도 이제 죽는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푹잤다.
이상하게 날짜를 정하자 긴장이 풀어진 사람처럼 세상에서의 마지막 잠을 자는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잠을 잤다.
그리고 대낮에 눈을 뜬나. 언제부턴지 하늘은 찌푸렸고 비가 올것 같다. 이제 몇시간 안남았다.
챙이 큰 모자와 어두운 색깔의 옷과 도구.. 그놈을 죽일 도구를 점검한다. 손만대면 살짝 베일듯한 날카로운 칼..
얼마전 칼영업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던 뺀질이 후배의 강압에 억지로 사둔 한개에 십만원이 넘는 잘드는 칼.
내가 필요가 뭐있냐면서 도망다니다가 샀지만 이렇게 요긴할줄이야.
그후배가 옆에 있다면 입이라도 맞추고 싶다.
뼈까지 자른다는 그 날카로운 칼이라면 작업하기 어렵진 않을것이다.
깨끗이 목욕을 한다. 어쩌면 따뜻한 물 목욕이 마지막이 될줄 모르니 향좋은 거품비누를 듬뿍풀고 몸을 담근다.
나는 거품목욕을 좋아했다. 욕조에 가득있는 거품을 보며 갑자기 내가 뭐하려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내 고개를 젓고 마음을 잡는다. 목욕을 마치고 향좋은 스킨과 로션과 선물받은 향수를 뿌린다.
제일 좋은 속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는다.
식탁에 앉아 고기와 향좋은 와인을 마신다.
이제 마지막이 될 사치를 최대한 부려본후 주섬주섬 모자를 눌러쓰고 옷을 입고 도구를 신문지로 둘둘말아 품속에 넣고 손에 땀이나서 도구를 놓칠것에 대비해 고무가 발라진 목장갑을 낀다.
시계를 본다. 째깍째깍 넘어가는 초침. 꿀꺽. 군침이 넘어간다.
가슴이 방망이질친다. 쿵쾅쿵쾅.
자꾸 그녀가 아닌 어머니생각이 난다.
어머니의 화려해서 지독히도 어색한 홈웨어. 자글자글 박힌 주름. 굽은어깨.
눈물이 난다. 어머니를 한번만 봤으면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이일을 포기할것같다. 그러면 그녀를 포기해야하고 그녀는 그 지옥속에 갇혀 침대에 묶여 평생을 보내야 할거다. 그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가 올때가 다되간다.
창밖을 보니 비가 제법 온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 오늘이아니면 이제 이일을 할수없다. 용기가 없어서라도. 내친김에 해야한다.
나가면서 본능적으로 우산을 들고 나가려다가 피식웃으며 내려놓는다.우산이 무슨 필요라고.. 우산을 쓰면서 그를 찌를텐가.
그가오는 길목에 으슥한데 숨는다.
쿵쾅쿵쾅 가슴이 뛴다. 마른침이 넘어간다. 숨을 못쉴정도로.
심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내가 무얼하는건가. 지금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어찌보면 나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서 큰 죄를 지으려고 한다.
어머니의 얼굴과 그녀의 얼굴이 교차되서 겹친다.
이일이 성사된다면 그녀와 나는 어쩌면 영영 만날수 없을지조차 모른다. 그래도 이일을 할것인가.
심한 갈등이 일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는건 그녀의 말이었다.
-그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그래요 그를 죽여줄께요. 그와 함께 나도 같이 사라지겠지만 당신은 살수 있으니까 행복해야 해요...
어머니의 떠오르는 얼굴을 열심히 내친다.
그때 찰박 찰박.. 빗길을 부지런히 걸어오는 소리..
점점 가까워진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본능적인 직감.. 그다.
도구를 싼 신문지를 푼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노려본다.
다시한번 떠오르는 어머니생각..
바보처럼 어머니가 보고싶다. 미칠것같은 기분..
어머니 아..어머니..
찰박찰박.. 그가거의 내쪽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