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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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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봄햇살 2003-03-16

태어나면서는 예민한 성격으로 날 힘들게했던 아이는 커가면서 엄마의 아픔을 아는듯했다. 지금도 여섯살된 아이는 나의 지탱이 되어준다. 아이가 말을할줄알면서 나한테 제일먼저 한얘기는 울지마였다.
조그만 고사리손으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를 안고 난 힘을낼수 있었다.
아빠가 자신을 끔직히사랑하는줄 알면서도 아이는 아빠에게 데면데면 하다. 아빠의 벨소리가 들리면 얼굴부터 찡그리는 아이. 아이앞에서 그는 나를 때린적도 욕설을 퍼부은적도 험하게 군적도 없지만 나의 상황을 기가막히게 눈치챈 듯 하다.
남편이 나를 '다룰땐' 방에서 다뤘다. 아이에게 재미난 비디오를 틀어주고 방에선 나에게 끔찍한 욕설등 평소대로의 행동을 한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고 마치 밖에서 쌓인 분을 나에게 풀듯..
폭력도 면역이 되서인가. 나는 마치 길 잘든 강아지처럼 끽소리 안고 누더기 공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
나의 가장큰 목표도 남편의 가장 큰 목표도 하나다.
아이에게 눈치채지 않게 할것.
그러나 아이는 얼마지나지 않아 방안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아는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방에 문을 잠그고 들어가면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
남편의 폭력은 끝나고 나는 매무새를 만지고 둘은 아무일 없었다는듯 밖으로 나간다. 아이는 우리의 눈치를 본다.
남편은 아이에게 다정한 미소를 퍼부으며 번쩍안고 마루로 나가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방문을 닫고 주저앉는다.
아이는 나에게 구세주였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아빠의 품을 벗어나서 내개로 온다. 큰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내 손을 잡아준다.
이 아이는 전생에 나를 사랑해준 나의 연인이였을까.
딸에게 느낄수 없는 벅찬 사랑의 감정이 솟는다.
아이를 안고 눈물을 참는다.
이왕 아이가 나의 처지를 눈치챘더라도 난 엄마니까 아이에게 나의 이런 상황을 안보여야할 의무가 있다.
방문이 열린다. 다정한 남편의 얼굴. 남편은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사랑가득한 목소리로 얘기를 한다.
문득 눈이 마주치자 다시 매섭게 쳐다본다.
난 눈을 돌린다.
도대체 이사람이 나에게 왜이러는것일까.
전생이 있었다면 나는 이사람에게 무슨 모진 짓을 한것일까.
오만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베란다의 창문을 열고 쨍한 공기를 마시며 창밖으로 팔을 휘저어 본다. 저밑의 바닥이 푹신하게 느껴진다.
이왕 죽을것이라면 콘크리트 바닥보단 잔디 밭이 좋을것이다.
약간의 목숨이 붙어있다면 잠시동안 흙과 잔디의 향을 맡을수도 있을것이다. 내가 죽은들 남편은 눈물 한방울이나 흘릴까.
그래도 말 잘듣는 노예였으니 아쉽기는 할것이다.
어떻게 하나..
팔에 힘을 잔뜩주고 몸을 밖으로 뻗어본다. 몸의 절반이상이 밖으로 나왔다. 팔이 부르르 떨린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더준다면 나는 해방될수 있다.
더이상 이유없는 그의 폭력을 참을 이유가 없다.
나는 충분히 힘들었고 만약 나에게 내가모르는 새 지은 죄가 있었다면 그 죄값은 했으리라..
몸에 힘을 주는 순간..
이상했다. 그리고 한심했다.
이세상 남편보다 무서운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은 두려운 것이었다. 고통없이 죽는다면 그보다 나을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은 고통보다 무서운것이었다..
나는 두려움에 팔에 힘을 빼면서 내스스로의 한심함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얼굴 아이..
아빠가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했지만 아이는 아빠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죽는다면 아이는 더 그럴것이다. 세상에 유일하게 그아이가 의지해야 할 아빠는 내가보기 제정신이 아니였다.
난 아이를 지켜주고싶었다.
아이 생각이 나자 나는 나를 경멸하는 나에게서 자유로와질수 있었다.
아이는 지켜야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숙제일지도 몰랐다.
나는 힘을 낼것이다.
강한 엄마가 될것이다.
아이를 지키고 남편으로부터 날 지킬것이다.
죽기로 마음먹은순간 나는 살의욕과 용기가 생겼다.
조금은 사람처럼 살수있을것 같았다.
뒤를 돌아본다.
아내가 베란다에서 무슨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남편은 마루에서 티비만 보고있다.
아이와 눈이마주친다. 손에는 쵸콜렛을 쥔손으로 입가에는 쵸콜렛을 묻히고 날보고 웃는다.
사랑스런 얼굴이다.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며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된 아이에게 감사한다.
창문을 열고 들어간다. 천정불빛이 유난히 눈부시다.
집안의 공기가 새롭다. 따뜻하며 기분좋은 아이의 냄새가 섞인 집안의 공기.. 이 공기를 내가 남편때문에 포기해야할 이유가 없다.
살려는 의지에 주먹이 쥐어진다.
살자.. 살자 .. 강해지자..
난 강해질수 있다..
거울을 보고 웃어본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 아니면 예전과 같을지 모르지만.
아무 의욕없이 살았던 삶에서 용기를 가진점에서 난 만족한다.
아이는 엄마인생을 닮는다는데 이제부터 행복해져야 할것이다.
그래야 아이도 행복하게 살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