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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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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BY who 2003-03-05


지영은 베란다 창밖 가을 햇빛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손엔 동규의 명함을 만지작 거리며..

15년전 고시공부를 하겠다던 
동규가 가구디자이너 라는 명함을 들고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나타나다니..

뜻밖의 직함과 김동규..라는 이름밑에
가지런히 나열된 사무실 전화번호와 핸드폰번호...

예전엔 너희집에 전화가 없어서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었는데..

이제서야 내가 너한테.. 
전화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ㅎㅎ

문득 지영은 예전 생각에 잠시 쓴 웃음을 지어본다.

예전같지 않은 조심스러움들이 
선뜻 동규에게 전화하기가 망설여지는 지영은 
다시 용기를 내어 전화 수화기를 들어 본다..

"여보세요~"

저 멀리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동규의 목소리가
실낱같은 전화선을 통해 지영의 귓가에 들려왔다.

"나야..지영이.."
"어~지영아!..그렇잖아도 전화 기다렸다!!"

들뜬 목소리가 예전의 동규를 보는듯 하다.

지나온 세월들이 무색할 정도로 
지영은 마치 소녀로 되돌아 가버린듯한 
착각을 잠시 느껴본다.

"정말 오래간만이다.."
"그래.. 정말.. 오래간만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영의 전화를 받자
동규는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도 서울에서 사는구나"
"그래임마~나도 너 따라서 서울로 왔다..ㅎㅎ"

"에구..말하는거보니 아직도 엉뚱한게 여전하군.."
"ㅎㅎ애들은?"

"웅.. 딸하나 아들하나..넌?"
"난 사내녀석만 둘 뒀어.."

"다행이네..너 그렇잖아도 삼대독잔데..잘했네"
"너 딸 내게 줘라..내가 너 대하듯 잘 키울께.."

"하하하..됐네요.."

그렇게 둘은 잠시 예전처럼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간에 뛰어넘은 세월의 어색함들을 하나하나 씻어내면서 
서로의 이야기들을 천천히 나누고 있었다.

"지영아 ..우리..만나자"
"음..그..그..래.."

"언제 볼수 있을까?"
"글쎄~"
"내일볼까? 난 아무때라도 괜찮거든.."
"참내 급하긴..알았어..내가 시간정해서 다시 전화줄께"

"그래..빨리 전화줘라..넘 기다리게 하지말고..알았지?"
"응.."

지영은 동규와의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든다.

동규야..
우린 무슨 인연이 이리 깊길래..
이 나이 되도록 또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는걸까..

너하고 나...
참으로 참으로..

질긴 인연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