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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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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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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BY who 2003-03-03


내년 봄.. 
5월의 신부가 되기 위해 지영은 
눈 코 뜰새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하루는 서울로 하루는 대전으로 그렇게 
오가며 정신없는 결혼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행복의 새창살속에 있는 한쌍의 원앙새처럼..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보였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지영은 그렇게 예쁜 새색시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해.. 봄이 되고..
둘은 서울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하게 되었고

지영은 그렇게 나름데로의 소박한 
결혼생활에 만족해 하며 경호의 자상함과 
따스함 속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지영은...
지영을 닮은 예쁜 딸을 낳고..아들도 낳고..

그렇게 한 가정을 꾸미느라 
세월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고..있었다.

경호는 아내의 서른 일곱을 맞는 생일이 다가오면서
아내에게 줄 서른 일곱송이의 장미꽃을 지영의 품에 안겨준다.

경호는 늘 그렇게 자상하게 지영의 생일뿐아니라
집안의 기념일들을 한번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주는
늘 자상한 남편이었고 자상한 아이들의 아빠였다.

아이들도 제법 자라 그 정신없던 육아의 시간은 남의 이야기가
되었고 문득문득 거울을 보며 지영은 깊은 한숨을 쉬어본다.

어느덧..눈가에 주름이 하나 둘 옅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가끔은 흰머리가 삐져 나와서 지영의 가슴을 깜짝깜짝 놀라게도 했다.

이젠 서서히 세월의 흐름을 새삼 느껴보면서
왠지 그런 자신이 문득 서글퍼 질때도 있었다.

가끔 티브에서 흘러간 팝송이나 가요를 들으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향수들..흑백시절의 추억들..

그 곳엔 단발머리 소녀인 지영이가 있었고
긴 머리를 흩날리며 캠퍼스를 걷던 지영이가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그 시절들이 아주 가끔 그렇게 생각이 나면서
그 시절을 함께 떠들며 다녔던 동규의 모습도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어디서 잘 살고 있을거야..`
모든게 안정된 나이라서 그런가 자꾸만 
지나온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지는걸 보니 분명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지영은 새삼 느껴본다.

어느덧....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해와 달리 이번 추석연휴는 꽤 길다.

시댁인 대전을 일찌감치 내려온 지영과 경호는 
부지런히 명절맞이에 준비에 분주하다.

그러던 중..
경호와 지영은 시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작은집을 가게 되었다.

늘 삭막한 도시에서 살던 지영은 모처럼 외곽지역의
시골 풍경들을 바라 보면서 눈부신 가을햇빛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차창밖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이곳에 올갱이국이 맛있다는데 먹고 갈까?"
문득 경호가 비좁은 국도를 달리면서 지영에게 묻는다.

서울서도 지영은 그 올갱이국이 먹고 싶다며 
몇군데 이름있는 음식점을 찾아 다녔어도 왠지 
예전 맛 같지 않다면서 늘 시골 올갱이국을 먹고 싶다고 
한 것을 경호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ㅎㅎ그래요..여기까지 왔으니 함 가보지뭐..거기 음식이 정말 맛있긴해"

올갱이국밥 집을 찾아 가기위해 그렇게 경호와 지영이를
태운 승용차가 시골 읍내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지영은 그 거리를 보면서 새삼 예전에 
동규와 이거리를 다녔던 기억들이 아련하게 떠 올랐다.

거리는 그렇게 변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많은 상점들이 제법 도회지 분위기를 흉내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골스러움을 크게 바꿔놓진 못했다.

경호는 시골의 작은 도로옆에 있는 음식점앞에서 차를 주차한다.

"여기다 차를 세워 놓아도 될까?"
"글쎄~"

"주차장도 따로 없으니.."
"그래요..다른차들도 뭐.. 다 길가옆에다 세워 놓았는걸.."

그러며 둘은 시골 읍내의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단조로운 식당의 허름한 벽면엔 올갱이국이라는 메뉴하나만
달랑 올라와 있었고 둘은 서로 그렇게 마주앉아 벽에 있는 메뉴를
심심하게 쳐다 보면서 주문한 음식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영은 그런 식당주변을 그냥 습관처럼 둘러 보면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두 남자들을 언뜻 스쳐보게 되었다.

그리곤 무심히 음식을 기다리다가..
다시 한번 쳐다보고..그리곤 또 다시 한번....
그 남자는 아까부터 그렇게 마주 보이는 지영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데 자꾸 저렇게 쳐다보는거지..`

지영은 그 짧은 순간에 그 남자가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고
자기를 계속 쳐다 보는거에 대한 불쾌한 기분만 들었다.

하지만 식당안에 있었던 동규는... 지영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한눈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명절을 맞아 시골을 다녀오다 들리던 음식점에서
이렇게 지영이를 보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기에..

동규는 설마..하는 믿기지 않는 그런 눈빛으로
지영이를 그렇게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만 보았을뿐..

다시한번 불쾌한 눈길로 그 곳을 다시 한번 바라보던
지영은 그만 너무 놀라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바로 늘 추억속에서만 
잠재하고 있었던....동규..였었기에..

십여년이 훨씬 지난 후에 만나게 된 동규를 
지영은 한눈에 쉽게 알아보질 못했다.

세월은 지영이뿐만 아니라 동규에게도 
그렇게 세월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고..

그새 둘은 중년의 나이로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세상에....어떻게.. 이런곳에서..이렇게...만날수.. 있다니..

이런 우연이라는게 있을 수 있다는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던 지영은 소리없이 그렇게 당황하고 있었다.

동규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지영이 있는 곳으로 걸어올 것만 같았다.

뜨거운 뚝배기에 진한 된장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밥이
나오자 지영은 애써 어색함 감추며 시선을 국밥으로 피해본다.

'지영아..너 정말 오래간만이구나..참.. 보고 싶었는데..이런데서
너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지영아..너..무척..행복해 보이는구나...`
동규의 눈은 그렇게 지영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규는 남편과 단둘이 앉아있는 지영에게 선뜻
다가 갈수 없는게 그저...몹시 안타까울뿐이다.

"여기여~~바깥에 서울차 ~~차 좀 빼주세여~"

누군가가 식당문을 열고 들어와 경호의 차를 
빼달라고 하자 경호는 음식을 먹다 말고 급히 
식탁위에 있는 차키를 가지고 성급히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동규는 이 짧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일어나
지영에게 성큼 다가가 식탁위에 자기의 명함 한장을 올려놓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곤 바깥으로 서둘러 나갔다.

"지영아...전화해....기다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