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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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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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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fragrance 2003-01-16

손이 많이 가서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한 번 해 놓으면 아침식사로 2-3일은 먹을 수 있어 빵에 넣을 사라다를 만들기로 했다.
냄비에 물을 끓인 후 감자 세개를 넣어 삼으면서 나는 지난 해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에게는 먹는 것이 참 중요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으면 60년대 먹을 것이 귀하던 때에도 유난히 음식을 하기 좋아하시고 손이 큰 엄마덕에 우리가족의 식탁은 참 풍성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6년여전부터 친정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별로 좋은 일이 없어서 전화가 오면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불안해져서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나 몸이 아파서 이모집에 와 있다. 열이 나고 온 몸이 떨려서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알았어. 정은이 학교갔다 오면 갈께."
그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나는 엄마의 증세가 긴 병마와의 싸움의 시작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엄마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손에 가진 것은 다 아들들에게 주면서도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면 그건 항상 내 몫이었다. 이번에도 아들들에게는 전화도 하지 않았을 게다.
감자가 익는 동안 한쪽 레인지에는 계란을 삶으려고 냄비를 올려 놓고 햄과 치즈를 잘게 다지고 소금에 절인 오이를 꼭 짜서 다지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참 나쁜 년이다.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할 때는 그렇게 번거로와 하더니 자기식구 먹이려고는 손을 바삐 움직이니...'
한 쪽 폐에 물과 고름이 찬 데다가 당뇨합병증으로 결핵이 겹친 엄마는 병원 침대에 누워 유난히 먹고 싶으신 것이 많으셨다. 사라다빵, 오이지, 물렁물렁한 가지나물, 고구마순나물, 맵지 않은 물김치 등.
젊은 사람이 하기에는 손이 많이 가고 사더라도 타박맞기 십상인 음식들. 그래서 꼭 만들어가야만 했다. 병원에 그나마 자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음식을 해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7달의 입원기간내내 나는 정말이지 너무 고통스러웠고 엄마가 밉살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엄마의 입맛타령이 계속될 때마다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엄마가 입맛을 모르기는 왜 몰라? 맛있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면서..."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저 건너 침대에 누워 대소변을 다 받아내야 하는 할머니의 딸을 칭찬했다. 그 딸은 40넘게 혼자 사는 노처녀였고 아들들이 병간호를 제대로 하지 않자 직장마저 그만 두고 병원에서 먹고자고 하는 모양이었다.
'내게 베푸는 데는 그렇게 인색하면서 왜 바라는 것은 그리도 많은 거야.'
뜨거운 햇볕이 온 몸으로 파고 드는 말하기조차 귀챦은 한여름동안 그래도 언젠가는 회복되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정말이지 기계적으로 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 지겨운 여름이 빨리 지나기만을 마음속으로기도했다.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했으니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오지도 않는 오빠와 동생을 내가 아는 나쁜 말을 다 동원해서 욕을 하며 중얼거리며 때로는 눈물까지 손등으로 훔쳐내면서 나는 전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그리고 걷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