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이모의 방문 000
"딩동!"
누굴까? 인터폰이 울린다.
왠지 불안해 진다.
"민아, 일어나 옷입어..!"
민아도 화들짝 놀라서 일어 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신이다. 황홀한 모습이다. 풍성하게 익은 여체는 바로 예술이고 인류의 꿈이고 이 땅을 뜨겁게 흥분시키는 소망이 아닌가. 성자들의 좋은 말씀보다 어떤 종교의 진리보다 더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여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미스코리아라든지 미스 월드라든지 그 꿈의 형상을 바라보며 아니 그들의 늘씬한 각선미를 보고 즐거움과 위로를 받지 않는가. 혹자는 이를 두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의 진위를 고사하고라도 여자의 나신처럼 확실한 예술이 있겠는가...
아, 민아, 삼키고 싶은 여자의 나신이 내 머리 속으로 입력 된다. 참으로 영원히 잊지 않아도 될 그리운 명작(?)이 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찰나에 난 ?기고 있었다.
민아는 옷을 챙겨 입고 머리를 가다듬으면서 많이 해본 노련한 여자처럼 주방으로 걸어가 등을 보이고 금새 서 있다. 나도 에덴의 나무잎인 옷들로 가리고 세상으로 돌아 왔다. 침구를 주섬주섬 개어 얹고.....
"누구세요?"
인터폰의 화면에는 이모가 올려다 보고 서 있지 않은가..
얼른 문을 연다. 그리고 나와 민아는 연기를 하기 시작 했다.
"아니, 이모님 어쩐일이세요? 전화도 없이.."
이모는 노랑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나이보다 열살은 젊어뵈는 신세대 머리를 하고....
"춥네..날씨가 엄청 추워..혼자 있어?"
"네..민아가 좀전에 와서 밥짓고 있어요.."
"민아가 누구더라...아, 청주 산다는 사촌동생..?"
"네, 기억하시네요"
"알지..조카하고 단짝이었지. 어지간히 오빠 따라 다니더니 아직도 못벗었나보네 ㅎㅎ"
민아가 잽싸게 나와 호들갑을 떨어준다.
"누구세요... 이모님이시네. 대전미인이라시던 이모님 아니세요. 아직도 여전하시네요. 부러버라..ㅎㅎ "
두 사람이 서로를 확인하고 있다. 흘러간 세월 속의 변화와 지금의 실태를 확인하는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통례잖는가.
외모를 보니 돈좀 있겠네. 뭐하며 살지 남편은 누구고 아이들은.....
"앉으세요, 이모님.."
내가 이모를 보고 이모님이라고 부른건 처음이다. 그냥 내 입에서 그렇게 호칭 된것은 무슨 연유일까..
"좀, 기다리세요.. 금방 밥 올릴께요.."
민아는 얼른 주방으로 돌아 간다.
"오늘 민아하고 고아원 비슷한데 갔다 왔어요. 연축동에 우성 보육원이라고 있는데 가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이들하고 놀기도 하고 왔거든요"
"그래, 참 좋은일 했네..나중에 나도 좀 데려가줘 시간나면 봉사좀 하게.."
"그러실래요. 그럴께요. 다음에 같이 가시면 좋겠네요."
이모는 여기저기를 둘러 본다. 그리고 내 눈치를 살핀다. 무슨 끼를 찾고 있나해서 가슴이 압축된다.
이모와 난 그동안 못한 얘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민아는 억지로 밥을 지어 내 온다. 김치찌개와 밑반찬 몇가지가 전부다.
우린 그동안 헤어진 이야기를 주전거리며 밥을 먹었다. 민아의 얼굴과 이모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두여자 사이에 앉아 있는 나는 저들과 무슨 관계인가. 아무런 관계도 아니면서도 아주 친한 사이에만 나누는 은밀한 시간이 있었던 것은 사람의 깊은 곳을 알고 보면 참으로 비밀스런 내용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린 겉만 보고 판단하며 사는데 익숙해져 있을뿐이지...
식사가 대충 마쳐지고 귤이 나오고 시간이 저녁으로 접어 든다.
"오빠, 나 이제 가야되.."
"응, 그래. 가야 된댔지..알았어."
난 혼쾌히 그녀를 보내야 했다. 더 이상 있을 수도 없지만 이모에게 민아와의 일이 의심받는 것이 두려워서 인지도 몰랐다.
민아는 겉옷을 입고 좀은 아쉬운 모습으로 떠나 갔다.
이모는 왜 가는냐고 했지만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민아의 차는 바퀴에 아쉬움 자국을 남기고 미끄러져 간다. 난 그녀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거기 서 있었다. 사람들이 추위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치고 있다. 나도 추웠다. 뒤돌아 이모가 있는 집으로 발길을 옮기며 난 생각했다..
또 이모와 둘의 시간 속에서 절대로 허튼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마 이런 맘은 몇시간전 민아와의 즐거움으로 내 몸의 욕정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탓인줄고 몰랐다.
문을 열었을 때 이모는 창 밖을 내다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어, 갔어?"
"네, 이모, 왜 거기 서 계세요..?"
"응 그냥.."
돌아보는 이모의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그건 내 눈 때문인지도 몰랐다.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파 보이고 내 배 부르면 남도 그리 보이는게 인지상정이잖는가..
"조카..나 오늘 여기서 쉬어가도 돼지?"
"네..!?"
나는 자고 간다는 이모의 말에 당황하고 있었나보다.
"왜, 자고가면 불편해서..?"
"아녀요..그냥요. 무슨일이 있으신 것 같아서.."
분명이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초조하고 뭔가 불안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짓 누르는 것을 느꼈다.
"술 한잔 드릴까요..?"
"술..있어..?"
"네, "
"그러지 기분도 그렇고 하니까.."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술을 꺼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혼자살면서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긴 것일까..
"왜 이래 왜 이래 왜 이래 그러지마..정신 좀차려"
이모가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궁금해서 물었다.
"조카, 그냥 가져와 안주 없어도 잘 먹잖아.."
"네, 안주 때문이 아니에요. 그냥 이모가 오랜만에 오니까 제가 흥분돼서.."
흥분되서라는 말 탓일까 이모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모가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이 스쳐 갔다. 밖으로 도망치고 싶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