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제 술취했었나벼. 조카 잘 잤어?"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나는 이모의 뒷모습에 아직도 소녀같은 수줍음이 서려 있다.
밥을 짓는 사이 난 티비를 틀었다. 대선주자의 얼굴이 나오고 사람 속 뒤집는 아니꼬운 세상사람 이야기가 즐비하게 나오고 좋은 얘기는 별로 없나보다.
"나, 조카하고 같이 살면 어떨까?"
싱크대에 붙어 선 이모가 빈말 같기도 하고 진실 같기도 한 말씀을 한다.
"그러세요. 이모님 계시면 저야 좋죠"
"그래~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까..?"
"불편 하긴요. 정말이시면 그냥 오세요."
보글보글 담북장이 끓고 김치도 가지런히 놓이고 김도 있고 근래에 첨 대하는 풍성한 아침상이라.
"이모님하고 같이 살면 살찌겠네요..ㅎㅎ"
'그래, 어서 먹어.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잖아?"
"아니예요.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오라고 했거든요. 오늘은 윤식이좀 만나보려고 합니다"
'응, 거 청계동 살던 이북영감 아들.."
"네"
"그사람 지금 뭐하지?"
"잘 모르겠어요. 뭔가 대단한걸 하는것 같은데..."
창밖으로 햇살이 찬연하게 들어온다.
커피를 끓이시나 보다.
"커피 사다 놓은것 있나?"
"네, 봉지커피요.."
늘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윤식이 하고 사귀던 옥순인가 그 색시 내가 얼마전에 봤는데.."
"어디서요?"
귀가 번쩍 뛰었다.
"응, 얼마전에 보니까 오류동 어느 빵가게 앞에서 봤거든.. 어딜 가는것 같았어. 초록치마를 입었는데 눈에 딱 띄대"
"그래요~"
옥순이는 윤식이와 어릴적부터 사귄 사이인걸 이모도 잘 안다. 그것 말고도 옥순이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에 누구의 아내가 되나하는 눈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늘 있어 왔었기에 인지도 몰랐다.
"이모님, 그럼 짐을 좀 가지고 오셔야 할텐데.."
"정말이야! 내가 여기와서 살기를 정말 바라는거야?"
이모는 감격한 것인지 의외여서인지 내손을 덥석 잡는다.
"이모, 나 실제는 좀 힘들어요. 이모 오시니까 너무 좋네..."
응석을 부렸다. 그러고 싶었다.
"알았어. 짐은 무슨 짐이 있나. 내가 알아서 할께. 자 오늘은 출근 안한다니까 좀더 자라고"
설겆이를 하는 이모의 손소리가 들리고 난 침대에 소파에 비스듬이 기댄다.
"담배 피워도 되죠?"
"응, 괜찮아 "
담배를 피워 문다.
이모가 휴지에 물적신 재털이를 얼른 가져다 내 앞에 놓는다.
"많이 피면 않좋다대. 어제 같이 잘때 보니까 담배냄새 좀 나더라. 그리고 얼마나 가슴을 만지는지 민망해서 혼났네 ㅎㅎ"
"그랬어요.. 참 좋았어요 어제밤은.."
"그랬어. 하긴 국민학교 다닐때가지 엄마젖먹던 생각 나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쑥스러워서.
아침이 지나고 우린 이런애기 저런 얘기를 한다.
동네사람 얘기/ 아이들 얘기/ 미국간 이종사촌 얘기....
"이모, 피곤하시겠어요. 좀 누우세요."
"그래,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어제먹다 남은 소주나 한잔 마실까?"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이모도 가실때 없잖아요?"
조그만 손 상을 놓고 우린 또 술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술꾼도 아니고 중독도 아닌데..
외로운 사람들은 늘 서로의 가슴을 열기가 힘들어 술을 붓는다든가....
"자 마셔.."
속이 짜르르 한다.
이 기분에 술꾼들은 술을 마시나보다
"이모도.."
이모도 혼자산 탓인지 술을 좀은 마신다. 어릴적 앳띤 이모의 모습이 언뜻 언뜻 지나간다.
참 고왔는데...
"이모, 오늘 오후엔 드리이브나 할까요?"
이모가 힐끗 돌아본다.
발그래진 얼굴이 유리창 햇살을 받은 탓일까..
"이모, 참 예쁘시네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건 내 가슴에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