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에게 대가오는 검은기운.
그것은 분명 강한 음기를 띤 영력이었다. 이는 필시 여자의 영
이 화가 나서 뿜어내는 기운이다.
혁은 검은기운이 자신의 몸에 모두 덮힐때 까지 눈을 감고 기다
렸다. 여자의 영도 혁 자신을 어쩌지는 못하리라 생각이 들었
다. 적어도 혁의 눈에는 여자의 영 역시 피치못할 원한이 있을
것 같았다. 혁의 생각은 맞았다.
검은기운은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는 혁을 감쌓기만 할뿐 더이상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았다.
잠시후 검은기운은 땅으로 스며들었다.
이 광경을 음부터 지켜본 노인의 영은 혁에게로 다가갔다.
" 괜찮은가? 그래도 저 친구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게 알고보면
나처럼 불쌍한 여자야..."
노인의 영은 살아 생전에 그랬던것 처럼 뒷짐을 지고 먼산을
바라보았다. 혁은 아직도 눈을 감은채 가부좌를 뜰고 앉아있었
다. 이윽고 혁은 천천히 눈을 떳다.
혁의눈에 보이는 노인의영과 그옆에 다소곳이 서있는 여자의
영. 여자 영은 조용히 말했다.
" 난 이제 떠날려고 합니다. 난 당신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원한이 맺힌 저를 이해하려 하는 당신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전 행복
하게 이승에서 살고 있었을 겁니다. 방금 추경스님이 다녀가셨습
니다. 당신을 조용히 지켜보시더니 저에게 당신을 부탁한다는 말
씀과 함께 떠나셨습니다."
추경스님이란 말에 혁의 눈이 커졌다.
" 어디로 가셨습니까? 언제 떠나셨습니다까?"
숨도 안쉬고 급하게 물어보는 혁을 노인의영은 혁을 달랬다.
" 벌써 오래돼었다네 그러니 자네도 이만 갈길을 가보게
여긴 걱정하지 말고 "
혁은 머리 속에서 너무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원한을 풀 영들이 아닌데... 아무리 추경스님이라
도 이렇게 두 영의 원한을 다스린 다니...
혁은 노인의 말을 듣기로 했다. 가지고 간 적주머니를 주섬주섬
챙기고 그 집을 나왔다. 무언가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산등성이를 돌았을때 혁의눈엔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 펼처지고
있었다. 두 남녀가 벌거벗고 서로를 부등켜 안으려고 발버둥을
치고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의해 서로를 떼어 놓으려는
그런 형상이었다. 혁은 나체의 여자를 똑바로쳐다보지 못하고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순간 사내의 얼굴에 흉가에 있던 노인의
영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은 구태여 면경령을 쓰지 않고서도 느
낄수있는 기운이었다.
혁은 순간 분노를 느꼈다. "이것들이!"
"갈~~" 일말의 외침과 동시에 혈살화(피와살들을 타게 만드는부
적)를 던졌다. 적이 닿자마자 불꽃이 튀었다.
나체의 여자와 남자는 불꽃에 몸을 검게 그을렸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혁의 예상대로 노인의영
과 여자의 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난 또 벌써 산을 내려간줄 알았지" 노인의 영이 입을 열었다.
" 내가 뭐랬어? 아까 죽였어야 한다고 했었자나!" 날카로운
여인의 영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오랜만에 재미좀 볼려고 했더니 저놈이 다 망쳐놨네 허허.
이보게 난 몸이 없어. 그래서 저 사내의 놈을 빌어 이친구와
사랑을 나누려고 한것 뿐일쎄. 다른 뜻은 없어"
혁은 황당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더이상 내가 저들의 놀음에 놀아날순 없지.
" 이젠 당신들이 가야할 곳으로 가야할것 같소"
조용히 천지상체수(저승으로 보내는 부적)를 꺼냈다.
혁은 적을 양손에 들고 주문을 외웠다.
" 천로도냐조예부 이어추로반샤미 하미토저노야사! "
두 영의 몸으로 날아든 천지상체수는 그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영들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노란색과 붉은 색의 적은 화려하게
빛났다. 이윽고 커졌던 적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두 영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으-윽 , 헉- , 까--악 "
두 영은 부적과 함께 조용히 타들어갔다.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를 떠올리면 가슴속 저 깊은
곳에 아련히 저미어 오는 슬픔이 있었다.
미란.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혁은 그녀의 얼굴을 애써
지우며 부석사로 가고있었다. 지난번 부석사에서 뛰쳐 나온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악몽속에서
혁은 부석사를 지키고 있는 사대천왕이 혁의 팔,다리를 잡고
마치 능지처참형을 받는듯 고통을 주었다.
사대천왕은 혁의 팔다리를 잡고 그대로 찢는다. 투투툭 살이
터져나가고 피가 솟구친다. 엄청난 고통속에서도 혁은 부석사를
나가야만 한다고 외친다. 나가야한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유는 혁 자신도 모른다. 답답하다. 이유도 모른채 이 엄
청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니.
악몽에서 깨어나면 혁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안에 주저 앉은채 있기를 여러날
이다. 오늘은 부석사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악몽의 이유도 알고 싶었지만 며칠전 그 노인의 영이 추경스님이
다녀갔다는 말을 했기에 추경스님을 뵙고 싶었다.
부석사와 미란은 인연이 깊다.
혁이 부석사에서 적을 수련할때 미란은 어머니와 함께 부석사로
들어왔다. 처음 본 미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모습이었다. 미란의 어머니 역시 초최한 모습 그 자체였기에
혁은 두 모녀를 눈여겨 보았었다. 현대의 사람 같지 않게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큰 스님의 안내로 방을 안내받은
두 모녀는 며칠동안 방안에서 나오질 않고 있었기에 혁은 불안한
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두 모녀의 거처 앞을 서성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큰 스님의 호된 꾸지람에 발길을 돌리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마디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고요한 부
석사의 경내로 퍼져나갔다. 급한 마음에 신발도 신지 않고 그 곳
으로 뛰어간 혁은 미란의 어머니가 처마기둥에 목이 매어있는걸
보았다. 한마리 하얀 나비 처럼 하늘 거리는 미란의 어머니 모습
에서 죽음을 느꼈다. 마침 불어온 바람에 미란의 어머니 치마가
춤을춘다. 바람에 흩날리는 미란의 어머니 시신.
미란은 자신의 어미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이미 예견이라도 한듯 그녀의 표정은 차가워져있었다.
35제가 지난후 미란의 모습은 뒷뜰 조그만 바위에서 볼수 있었
다. 혁의 인기척에 뒤를 돌아다본 미란은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
보았다. 마치 공허하다 못해 커다란 구멍이 난것 처럼 커다란
눈동자에 혁의 모습이 비춰졌다.
" 넌 누구니? " 미란이 힘없이 물었다.
" 난 그냥 여기서 사는 사람이야. 너의 어머니 일은 안됐다 "
" 어머니 이야긴 하지말자. 답답해.. 우리 산에 가자.. 꽃이
보고 싶어 "
" 그래.." 혁은 슬퍼보이는 미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산에는 꽃이 없었다. 이미 가을을 훌쩍 지나버린터라 꽃은 찾아
볼수가 없었다. 미란은 부석사가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여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참 좋을것 같다...그치?
그냥 새 처럼.. 모든걸 다 버리고 싶어"
" ..... "
바보처럼 혁은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 하지만 난 여기가 좋아. 여긴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또 어머니도 있고 후후후"
꽃? 여긴 바위뿐인데...? 게다가 지금은 초겨울이고...
혁은 미란을 처다보았다. 미란도 혁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며
" 몰랐니? 나 무당이자나.. 어머니도 무당 할머니도 무당
그 할머니도 무당. 다 무당이야 호호호호~ 난 다 보여
안볼려고 해도 다보여. 그러니까 미치겠단 말야. 난 보기 싫은
데 왜 내눈에만 보이지? 뭐가 보이냐구? 영이 보여 너희들이말하
는 귀신이 내눈엔 보인다구. 흑흑... 난 싫어. 난 무섭단 말야.
난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냥 다른애들 처럼 학교도 다니고 싶고
친구도 사귀고 싶어. 그게 잘못된거니? 내가 너무 많은걸 바라는
거야? 말해바! 말해보란 말야!"
"......."
혁은 순간 미란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과 그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해서 변하는걸 느꼈다. 분명 미란은 혼자의 몸이 아닌듯 싶
었다. 산에서 내려온 혁은 큰 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 미란의 얼굴에서 여러명의 영들을 보았습니다. 어찌된겁니까?"
" 쓸데없는 관심은 접어두거라.."
"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녀를 저대로 놔두면 위험한건 큰 스님
이 더 잘아시잖습니까?
" 업보니라...업보...관세음보살"
업보라...... 그녀가 업보가 있다면 무슨 업보가 있는것일까?
추경스임도 나를 보면 언제나 업보가 있다고 하였거늘...
그날밤. 혁은 미란의 방에 들어갔다. 미란은 다소곳이 보료위에
앉아있었다. " 잘왔어 나랑 이야기나 하자 "
" 너에 대해 궁굼한것이 있어서 왔어"
" 그래? 뭐가 궁굼할까? 호호호호"
" 그냥 넌 어찌 살아왔는지..그런거지뭐.."
*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데... 자꾸만 게을러 지네요...
이글을 처음 썼을때.. 새벽이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담배를
한개피 물고.. 있을때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내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
는 생각에 기운이 나더군요.. 앞으로..계속 쓸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
습니다.. 읽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