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말꼬리를 흐리는 녀석의 말끝으로 무언가 놀라운 이야기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정은이... 윤정은 알지?"
"정은이?"
말끝을 올려놓긴 했지만 이미 난 그 이름이 누구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적어도 그 이름 석자 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울 수도 지워지지도 않을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걔한테 멜이 왔더라.."
"멜이라니?"
한동안 나는 윤정은이라는 이름과 그동안 그녀와 나누었던 수없이 많았던 편지의 기억을 받침으로 온라인 공간을 헤맨적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녀의 학교 홈페이지에도 흔적을 남겨보기도 하였지만 10년의 팬팔이라는 추억만 고스란히 안은 채 그녀와 나는 어쩌다 기억으로나 해우하는 것쯤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랬는데...
"우리학교 사이트에서 내 이름 보고 그냥 무작정 멜 보냈대. 참 웃기지 않니? 그래도 나를 기억하나봐."
"너야 그래도 가서 만나기라도 했었잖아?"
"후훗 그렇지.참. 암튼 너 전화번호랑 멜 주소 가르쳐 줬으니깐 조만 간 연락 올거다. 되게 찾고 싶었나봐."
"알았어.."
침착해지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미세한 바람에 힘없이 일렁이는 나뭇잎의 떨림이 수화기를 타고 느껴졌다.
"아! 참 잊을 뻔 했는데 정은이랑 연락되면 나랑 팬팔했던 미령이 얘기도좀 물어봐라..."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움직임없이 벽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무언가를 했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나는 들떠 있었고 주위의 어둑신이 내 몸을 감싸 내리고 있는것도 모른채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