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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BY 하루살이 2002-09-10

너 주변 남자들..다 끊어..아침을 먹다말고 은재가 말했다.
은재는 여태까지 나를 바라봤던 얼굴과는
정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에요? 나는 못알아들은 척 되물었다.
너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젠 관계 다 끊으라구. 은재가 여전히 명령조로 말했다.
미친놈..한번 잤다구 내가 니여잔줄 알어? 별수없이 너두 남자구나..나는 기가 찼다.
은재의 말을 못들은 척 무시하며 국을 한숟갈 떴다.
내가 그동안 너랑 안잔건..너를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구..
니가 딴놈들이랑 자도 모른체한건..너한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은재가 말했다.
오늘 아침 밥 설었어요? 난 괜찮은데...내가 무관심하게 말했다.
미나야...은재가 날 불렀다.
은재씨...왜 그래요?
소유권 운운하지 마세요.
난 은재씨 소유..아니에요.
날 책임지려구 할 필요두 없구..책임지라구 할 정도로 능력없구..
미성년 아니에요.
나랑 잤다고해서 날 완전히 소유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이제 와이프랑 이혼했으니까..날 책임질 수 있어요?
난..그냥 웃겨요. 은재씨...순진한 건지..아님 무대뽀인지..헷갈리네요...난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은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은재는 내 말에 기분이 상한 듯 보였지만, 난 상관하지 않았다.
은재씨랑 잔건..은재씨가 좋았기때문이구..
뭘 바랬던것두...은재씨 소유이길 바랐던 것두.아니에요.
착각하지마세요.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은재씨랑 나랑 어울려요?
재벌로 태어나서 재벌로 자란...은재씨랑...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겨우 공부하고..별루 잘나지못한 직장다니고 있고..거기에서 애딸린 이혼녀이구..
은재씨같은 재벌들은 이혼하구 재혼하는거 밥먹는 것처럼 일상적일지 몰라도..
난 안그래요.
그리고..환경이 너무 틀려서 난 적응 못해요.
적응 할 생각두 없어요.
당신이 좋긴 하지만...당신 환경에 들어가서 내인생 죽쑤면서 그렇게 살기 싫어요.
나랑 결혼할 생각은 아닐테구..
세컨드아님 애인 정도로 평생 그러구 살아요?
이 남자가 언제 나 버릴건가 불안해하며 살아요?
것두 아니면...
은재씨 가족들이 번갈아 찾아올텐데..그런거 일상사로 치부하면서 살라구요?
책임을 어떻게 질건데요?
나 솔직히 처녀 아니니까..책임질 일도 없어요.'
내가 당신 좋아서 잔거니까..당신한테 책임지랄 일도 없어요.
우리 서로 좋아서 잔거니까..그정도에서 멈춰요.
소유? 책임? 우리 이런거 하지 말아요.
내가 은재씨 좋아하는 맘까지 없어질라구 해요...
나는 은재에게 기관총을 쏘듯이 내생각을 말했다.
너...정말 대단하구나..은재가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얼렁 마저 드시구 출근하세요..내가 말한다.
설겆이를 하는데, 은재가 뒤에서 살며시 안는다.
미나야...나 질투 많아..니가 잘 알아서 할거라구 생각해...
안그러면 내가 나서면...니가 싫어할텐데...은재가 목에 입맞춤하며 말했다.
나는 그순간 갑자기 은재가 무서워졌다.
내가 아는 부드럽고, 따뜻한 은재..가 아닌거같았다.
일년만에 만나서 내 애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하던 그때의 차가운 은재의 표정이 생각났다.
나는 내가 은재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되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은재가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나는 정신이 퍼뜩 들어서 설겆이 마저 끝냈다.
은재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서..
은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남자...
왜? 내가 딴사람 같아? 은재가 미소를 짓는다.
네..내가 말한다.
너에게 보여지는 모든 모습이..다 나야...은재가 말했다.
헷갈려요. 내가 힘없이 말한다.
헷갈릴 거 없어..너한테 대한 내 맘은 언제나 똑같애..은재가 말했다.

나는 은재가 무서워졌다.
은재와 자기전까지는..은재와 자고싶을 정도로 은재가 좋았다.
그런데...막상 자고 나니까..은재가 무서워졌다.
희수랑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희수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희수의 사랑한다는 말은 섹스를 위한 양념으로 생각되었다.
가슴 깊이 희수가 날 사랑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희수와는 자고나서도 부담이 전혀 없었다.
격한 운동끝에 취하는 휴식과도 같이 희수와의 잠자리는 그렇게 편했다.
그런데...은재와 한번 잠자리에서...
나는 큰 벽에 부딪혔다.
이 일을 어쩐다...? 나는 무척이나 난감해졌다.
내가 평소와같이 희수나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때, 은재가 어떻게 반응할지...걱정이 되었다.
은재가 좋기는 했지만...역시 그와의 관계는 내게 부담이 될거같다는 느낌이 들었기때문이다.

미나씨..전화에요...은미가 날 툭치며 말했다.
난 멍한 얼굴로 은미를 쳐다본다.
전화받으세요...은미가 말했다.
아..응...내가 말한다.
여보세요? 내가 말한다..
여보세요? 여기 은성에 명예회장님 비서 정은진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말했다.
나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올것이 온건가?
서영택명예회장은 내게 집으로 찾아올것을 부탁했다.
차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나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큰 죄를 지은것마냥 몸이 떨렸다.
은재의 집은 마당이 무척 넓었다.
짙은 황토색 가죽 소파에 영택이 앉아있었다.
어서와요..영택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내가 조용히 말한다.
앉아요. 일하는 사람 불러서 미안하네..영택이 말했다.
나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영택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문을 연다.
서회장과는 언제부터 아는 사이이지? 영택이 물었다.
일관계로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한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걸까? 나는 영택의 의중을 파악하기위해 영택을 쳐다본다.
음..그렇군...영택이 말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릴께요..내가 이렇게 말하자 영택은 의외라는듯 나를 바라보았다.
왜 저를 부르셨는지..압니다.
그렇게 깊은 관계아니구요.
그냥 일관계로 좀 아는것뿐입니다.
만나지말라시면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외국으로 가거나 지금 다니는 회사 그만두거나..
그런건 할 수가 없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애 있는 이혼녀에요.
지금 아이랑 같이 살진 않지만...
아이를 볼 수 없는 곳으로 갈 수는 없거든요.
그렇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나는 은재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말한다.
영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박장대소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보군...하하하...영택이 말했다.
음...그렇게 너무 앞서가지말아요. 난 그저 얼굴만 한번 보고싶었을뿐이고...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니까...
음..그리고..눈에 띄지않을 수 없는 위치라서...
그저..행동 조심해주었음 해서...그런말 하려고 오라고 한거에요.
난 애들한테 간섭하는 애비가 아니라오...영택이 말했다.
나는 나의 오버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하하하..은재가 좋아할만 하네..영택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당황하며 말한다.
죄송하긴 뭘...오랜만에 웃었군 그래...영택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안만났음해서 오라고 한건 맞아요.
근데..얼굴 보자마자 마음이 바뀌었어..
착하게 생기지 않아서, 만만한 여자가 아닌거같아서 맘에 드는군. 영택이 말했다.
우리 서회장이 만만한 녀석이 아닌데...아가씨도 만만치는 않겠군..고소해..정말 고소해...하하하..영택은 계속 웃으며 말했다.
저..아가씨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내가 말한다.
하하하...알아..알아...하하하..그래두 나한텐 아가씨인걸 뭐..영택이 말했다.
음...부자가 좀 웃기는 면이 있네? 나는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여자인건 싫다면서 은재를 떼내버릴 생각을 잠시했었는데..약간은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은재의 집을 나서면서, 나는 앞으로 은재의 소유욕에 어찌 대처해야하는지..내심 암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