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 가까운 곳에 있는 오피스텔을 얻었다.
아이도 없이 혼자 있으면 더 외로울거라고..
엄마가 반대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싶었다.
희수에게도..은재에게도...아무에게도
내가 혼자 있게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않았다.
처음 이사한 저녁에..
나는 비로소 내가 혼자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
삶이 갑자기 지루해지기시작했다.
서른 여섯이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혼자라니..
정말 모든것이 정지되어있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심심해서...
뭔가 해야할거같아서...
인터넷을 뒤진다.
검색창에 사랑..이라고 치다가..
나는 문득 남자들이 혼자일때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가끔 정우가 나몰래 들어갔던...
포르노싸이트를 뒤져본다.
갖가지 포즈의 여자들이 뇌쇄적인 몸짓으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재미없다...........
왜 남자들은 이런것에 열광하는 걸까...
유혹하는 여자들의 몸짓을 보다가...
나는 나를 본다.
나이에 비해 비교적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고...정우가 늘 말했었다.
하지만...
그런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와 자는게 좋다고...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않는다고 그렇게 말했던 정우는
다른 여자를 만나..그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나는 아직도 정우를 버리지못하고 있다.
한동안은 정우가 내게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정우가 내게 다시 돌아오지않을 것이라는 걸 안 것은
그가 내게서 지수를 데려갔을 때였다.
남에게 고개숙이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던 정우는
영우와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내게 무릎까지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마음속에서 내가 지워져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를 버려야 한다.
잘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는 정우를 절대 못버릴것이다.
그가 나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거짓으로 일관했다해도..
나는 그를 사랑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저...잘 모르시겠지만...
저...서은재씨 아내에요...은재의 아내 명애가 전화했다.
아..예...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만날 수 있을까요? 명애가 말했다.
네...어디서요? 내가 말한다.
나는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명애를 기다린다.
갑자기 초조와 불안이 엄습해온다.
멀리 명애가 보인다.
세련된 발걸음으로 그녀가 다가온다.
죄송해요..여기까지 오시라고 해서...제가 미나씨 있는 곳 지리를 잘 몰라서요...명애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내가 말한다.
명애는 키위쥬스를 주문한다.
나는 엷은 헤이즐넛향의 커피를 주문한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옆눈으로 슬며시 명애를 관찰한다.
단아한 몸매에 얼굴에는 주름하나 없이, 고고함을 간직한 백조같다.
예쁘시네요..명애가 말했다.
나는 그만 입안의 커피를 내뱉을뻔 했다.
시비를 거는 건가? 나는 명애의 의도를 파악하기위해 머리를 굴린다.
은재씨가 좋아할 만 해요.명애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은재씨..아니 서회장님과는 별관계 아니에요..
그냥..은성과 프로젝트를 하기땜에...내가 말한다.
아니에요..무슨 관계인지 물어보려구 만나자고 한거 아니에요..명애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도둑이 제발 저린 심정을 들켰나보다 생각한다.
무슨? 내가 말한다.
저기..부탁이 있어서요..초면에 실례지만..명애는 천천히 쥬스를 들이마신다.
말씀하세요...내가 말한다.
소문 들어서 아시겠지만...애들아빠랑 헤어지려구해요..명애가 말했다.
저기요..전 이혼..반대에요..제가 해보니까..그건 아니에요.
무슨 사정이신지 모르지만...말리고싶어요..내가 말한다.
아니요..원래 은재씨랑은 첨부터 별루였어요...
저..이혼하려구 하는데..안해준다네요...
그래서...미나씨 찾아왔어요...
미안해요...
이혼하라구 해주실래요?
은재씨가 미나씨..특별하게 생각하는 거 알아요...그래서.명애가 말했다.
나는 명애의 말을 잘랐다.
명애씨..이렇게 불러도 되나요?
전 그럴 자격 없어요.
하다못해..한번두 서회장님과 잔적두 없구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만난 적두 없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미나씨...알아요...그런 관계 아니라는거...
그래서 부탁하는 거에요..명애가 말했다.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명애가 어떻게 나를 알았을까?
이 여자는 왜 내게 도와달라는 걸까?
남편과 헤어져달라는 것두 아니구
자기가 헤어지게 도와달라니.....나는 가만히 명애를 쳐다보았다.
저..애들하구 미국에 있어요...
애들아빠와 정리하려구 잠시 들어왔어요..
사실은..남편서재 정리하다가..미나씨 명함을 봤었어요.
그 명함뒤에...내사랑 미나..이렇게 써있더라구요.
난 반가웠어요.
왜냐면....
저..따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거든요...
그 남자와 지금 미국에서 같이 있어요..
애들두 무척 따르구요...
전 빨리 정리하고 싶어요..명애가 차분하게 말했다.
저기요..차라리 서회장님이랑 만나지말라면..
차라리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그럴수 있겠지만...
전 지금 제 상황이...남의 일..교통정리해줄 상황이 아니에요.
죄송해요..
도움이 못되는거 같아요..내가 마음을 졸이며 조심스레 말한다.
명애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무리 정이 없는 남편이라고 해도..
아무리 지금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다고 해도..
어떻게 자기 남편이 좋아한다는 여자앞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명애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한다.
제가 미나씨 만난 거 비밀로 해줄래요? 명애가 말했다.
네..그럴께요.....내가 말한다.
미나씨...애들 아빠...랑 사랑없이 결혼해서..십몇년을 살았어요.
이제 사랑이 뭔지 조금 알거같아요.
그리고...미나씨 만나고 나니까..마음이 편해요..명애가 말했다.
나는 명애가 이상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사랑에 목숨걸어 결혼했고..그 사랑에 배반당했는데...
웬지 씁쓸하고 우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은재씨..자주 만나주실래요? 정리하는데 도움되게요..명애가 말했다.
사랑이 불붙은 여자 명애....
불붙었던 사랑에 데여 상처가 남은 여자...나..
너무나 확연하게 대비되는 두여자가 마주 앉아있다.
나는 어느것이 옳은 것인지 알수가 없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은재...
그 남자는 어떤 마음일까?
은재가 불쌍했다.
나는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말하는 명애가
마치 다른 세계 사람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