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메신저를 켰다.
띵똥..
미나야..니 기획서 희수형한테 보였는데 놀라더라..
아주 좋대..동하의 메세지다.
공주님..잘 지내지?...제이의 메세지다..
닉네임 제이...
나를 처음으로 공주라고 부른 남자 서은재.
남편 정우의 부탁으로 은재네 회사에서 바이어통역을 했었다.
정우는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고객이라고 했다.
은재는 적당한 키에 온화해보이는 얼굴을 가졌다.
은재는 재벌아버지를 둔덕에 모자람없이 자란, 귀티를 팍팍내는 남자였다.
은재는 중요한 회의에서는 자신이 직접 바이어와 대화를 했고,
내게는 단지 서울구경만을 부탁했다.
나는 정우의 앞선 친절에 은재가 손을 든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별루 할일도 없는데요..하루만 서울투어하면 되겠어요..내가 말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공주님..은재가 말했다.
공주님소리에 멍해져서 나는 은재를 다시 쳐다보았다.
정우씨가 하도 자랑해서 한번 보고싶었어요. 은재가 말했다.
아..네...팔불출이죠? 내가 웃었다.
진짜 미인인데요? 은재가 말했다.
나..미인좋아하는데..친구할래요? 은재가 말했다.
나는 정우의 중요한 고객이라는 생각에 얼른..그러세요.했다.
며칠뒤에 정우는 아주 만족한 얼굴로...
그 서사장이 무지 고맙대. 다음에도 부탁한대. 그 바이어가 아주 만족했대나봐...이렇게 말했다.
뭘 만족한다는 건지..내참..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저 하루 바이어랑 밥먹고, 고궁구경시켜준게 전부인데..
정우의 그런말이 마치 접대부취급당하는것같아서 오히려 기분이 우울해졌다.
당신은 단지 중요한 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사람이 나랑 친구하자고 하면 당신 유리한데로 갈것같아서 좋아? 나는 이렇게 물었다.
어떠냐? 그냥 친구하자는거구..나한테두 도움되는건 당연하지. 정우가 말했다.
이런걸 남편이라구 믿고사는 내가 바보지..
질투할줄 알았는데...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 이후로 은재는 가끔씩 메신저에 들어와 아는척했다.
우리 공주님 머해? 은재가 물었다.
백화점갔다 지금 막 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이구..우리 공주님..많이 샀어? 은재가 물었다.
그냥 구경만 했어요..내가 말했다.
왜? 은재가 물었다.
남편이 재벌이 아니라서요..내가 말했다.
음....은재가 말했다.
이제 저 밥해야해요.내가 말했다.
뭐 잘해? 오늘 반찬 뭐야? 은재가 물었다.
양장피에요..내가 말했다.
양장피? 나 그거 좋아하는데...은재가 말했다.
와이프한테 해달라고 하세요. 내가 말했다.
어느날. 은재는 직원들의 자세가 흩트러져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회사경영이라는 것이 쉬운것만은 아니구나..나는 생각했다.
그냥 머리나 식히라는 의미에서
조직쇄신을 내용을 하는 책 몇권을 택배로 보냈다.
은재는 책을 받는 순간, 내게 전화를 해서는..
가슴이 무지 뛰더라..이렇게 말했다.
은재는 자신이 요즘 고민하는것에 대한 해답이 내가 보낸 책들에
다 있었다면서 고맙다는 얘기를 연달아 몇번이고 했다.
전공이 뭐야? 은재가 물었다.
행정학이요. 내가 말했다.
아..그래서 이런 방면을 잘 아는구나..은재가 말했다.
그냥 조금만 관심있으면 되는거에요. 서점에 파트별로 잘 구분되어있으니까...내가 말했다.
우리공주님...나랑 같이 읽을래? 의견도 얘기해주고..
자문료는 톡톡히 줄께...은재가 말했다.
자문료? 필요없어요. 의견은 메일로 보낼게요. 내가 말했다.
은재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은재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통역을 한 그날 이후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서로 만나자는 말도 하지않았다.
그냥 언제나 메신저로 책의 내용에 대해 의견교환하고..
출장갈때면 내 핸드폰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출장.이라고 남겼다.
은재는 내가 이혼한 그 순간..
내가 힘들어서 휘청거리는 그 때...
나를 더이상 아는척하지않았다. 그 역시 정우처럼 나를 배신했다.
나는 가슴이 따끔거려오는것을 느꼈다.
눈물이 났다.
직원들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았다.
왜 그래요? 옆에 앉은 은미가 내 어깨를 다독인다.
아냐..화장실갔다올께요..내가 말한다.
나는 어쩌면 정우보다도 은재를 정신적 지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은재는 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말했었다.
은재말처럼 나는 이혼을 작은생채기쯤으로 치부해버리려고했었다.
인제 싱글이네..또 재혼하면 되지 뭐..은재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말했던 은재는 갑자기 내게 자기를 아는척하지말라고 했다.
그는 내게 굉장히 냉정했다.
그렇게 일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왜 이제와서 연락을 한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