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희수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잠이 들어있는 희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3살적의 내아들이 옆에 있는 것같다.
나는 희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희수가 내쪽으로 돌아누우며, 내 허리를 안는다.
희수씨..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희수는 아무반응도 없다.
나는 희수의 팔을 옆으로 치워놓으며, 욕실로 향했다.
약간은 미지근한 샤워물줄기에 몸을 맡긴다.
칫솔질을 하고 얼굴을 닦는다.
거울속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누굴까?..나는 생각한다.
거울속의 저 여자 누구지? 내남편 정우는 그렇게 말했었다.
누구지? 아마 당신을 무지 좋아하는 여자인가봐..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정우는 뒤에서 나는 안으며,
미나야..난 평생 너만을 사랑할거야..그렇게 말했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옮길때..
정우는 내게..
미나야..널 사랑해..나..아무일없을거야..그렇게 말했었다.
정말이지..수술이 끝난 후에 나는 아무일없이 우리의 결혼생활이 지속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정우씨..난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난 ..당신 영원히 섬기며 살거야..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적어도 정우의 숨겨둔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정우의 병실에서 지루한 석달을 보내며,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간병했다.
아무것도 돌아보지않고, 단지 난 정우의 완쾌만을 생각했다.
퇴원을 하고나서..
정우씨..집에 오니까 좋지? 난 그렇게 말했다.
정우는 아무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병실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했어..정우가 말했다.
무슨생각? 나만 사랑한다는 생각? 나는 말했다.
미나야....정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정우가 정신이 잘못된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은...나...만나는 여자가 있어...정우가 말했다.
병실에 있으면서...나..너한테 솔직해져야한다고 생각했어..정우가 말했다.
나는 세상이 정지한것같았다.
아무말도 하지않고...아니..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7년을 한결같이 나만을 사랑한다는 남자가 지금..그것도 내 간호를 석달동안이나 받은 그가 다른여자를 생각한다...
우리 헤어지자...정우가 말했다.
당신이 원하면....내가 말했다.
그래..내가 원해..정우가 말했다.
정우는 퇴원한 바로 그날 집을 나갔다.
나는 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았다.
시댁에도 충성을 다하고, 남편에게도 실망할 행동은 전혀 하지않았다고 난 자부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떠났다.
정우의 여자가 다음날 나를 찾아왔다.
저기요..미안하다는 말..하고싶어서요..영우가 말했다.
뭐가 미안해요? 내가 말했다.
그냥요...영우가 말했다.
나는 댁이랑 말하기 싫은데요? 내가 말했다.
속에서 불같은 것이 끓어올랐다.
니가 뭔데 감히 내 앞에서..내 앞에 나타나서 무슨말을 지껄이는거야..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참았다.
나한테 미안하면 그에게 잘해주세요. 새로이 선택한 삶이니 잘 살아야죠..내가 말했다.
아직 몸도 완쾌된 상태 아닌데..잘해주세요..내가 말했다.
영우는 가만히 내말을 들었다.
그럼..그래야지..니가 나한테 할말이 있겠냐..나는 생각했다.
나쁜놈..찢어죽여도 시원하지않을 놈...나는 생각했다.
이혼수속 바로 해드릴테니..걱정하지마세요..내가 말했다.
네...영우가 말했다.
미친년..우아한척 하네..나는 생각했다.
이걸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줘?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나는 갖은 우아를 다 떨며, 최대한 차분하게...
정우씨 옷..제대로 챙겨가지못했는데...주소알려주시면 택배로 보내드릴께요...내가 말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대견했다.
영우는 당황하고 있었다.
아마도 뭔가 내게 준비해두었던 말들을 가슴 한가득 담고 왔을것인데..
아무말도 못하고 그래도 돌아섰다.
영우가 일어선 그자리에, 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었다.
나는 아무 정리도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않는데..
정우는 깨끗하게 나를 떠났다.
며칠동안 나는 속으로 정우를 욕했다.
그리고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분이 가시지않았다.
차라리 아무거라도 던지며, 화를 낼껄 그랬나..그랬어야했다.
철저하게 나를 배신한 정우에게 복수라도 꿈꾸어야했다.
하지만..나는 그렇게 못했다.
내 아들이 받을 상처는 나보다 더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못했다.
최대한 나는 아들이 아빠를 이해할수있게 해야만 했다.
내게는 모든것들이 너무나 가혹했다.
어느날 아주버님이 나를 찾아왔다.
정우가 잘했다고는 생각하지않습니다. 어느정도는 제수씨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버님이 말했다.
미친놈..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나는 생각했다.
지수를 담보로 저의 부모님께 금전적인 문제나..그런것들을 바래지마십시오. 아주버님이 말했다.
걱정마세요. 그정도로 능력없지않아요. 내가 말했다.
나는 그동안
너는 내 딸이다..라며 온갖 사랑을 다 주는듯..말로만 번지르르한 시아버지를 그대로 믿지않았었다.
지금 시아버지의 모든말들이 거짓이었다는걸 증명하고있었다.
합의이혼이니..받을만큼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주버님이 말했다.
니네 가족들을 모두 몰살시켜버리고 싶다..나는 생각했다.
이후로는 서로 연락하지않았으면 합니다. 그정도는 아시죠? 아주버님이 말했다.
동감이다..이 개새끼야..나는 생각했다.
누가보든지 나는 착한 며느리였고, 시부모님께 최선을 다하는 며느리로..아주버님은 늘 내게 고맙다고 그렇게 말해왔었다.
그런데..이혼한 순간에 이런 반응들이라니..그렇게 인간관계가 쉽게 끊어지는것인가? 나는 혼란이 왔다.
더이상 할말 없으시면 저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면서..나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주버님에게 보이지않기위해 도도한척 연기하며, 유유히 빠져나오긴했다.
하늘이 너무나 눈부셨다.
나를 비웃는것같았다.
술이나 잘먹으면, 이대로 취해버릴텐데...나는 이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