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겨울
그녀가 내게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게로 돌아온것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몇번 없는 우연이라는 변수가 작용해 나의 일상에 그녀가 나타난것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날이었다.
햇살이 맑아서 눈이 올것같은 기미는 전혀 없었는데도 갑자기 한두송이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가 금방 함박눈으로 변해 거리를 하얗게 덮어버렸다. 날씨는 겨울날 답지 않게 푸근했고 소리없이 조용히 내리는 하얀 눈에 덮어가는 창밖의 모습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창밖의 모습에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멍하니 앉아있는데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7-8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흠칫 놀라 걸음을 되돌려 나갈까 잠시 고민하는듯 하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찾아낸곳 i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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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한때는 젊은 야심에 자본주의 경제대국인 미국에서 공부를 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겠다는 패기도 있었다. 별로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대학원까지 마치고 국내 대기업에 취직해 한국으로 돌아왔을때까지만해도... 미국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고,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었고 처음 몇달간은 적금이다 뭐다 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기도 하면서 나의 일상에 안주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이 꼭 성에차는건 아니었지만 유학생 출신이라는 이유로 외국에서 오는 팩스나 이메일 번역등 사무적인 일들이 주로 내게 돌아온다든가, 직장상사부탁으로 그집 아이들 영어숙제를 짬짬히 한다든가 조기유학을 준비중인 아이들을 둔 부장이 내미는 입학서류같은걸 작성하는것이 더욱 견딜수 없어진것은 아내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낸 즈음이었다. 아내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교포로 부모님의 엄한 교육방침아래 우리나라말을 배워서 말하고 읽고 쓰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과 함께 한국에 정착해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에도 별 거부감없이 나를 따라온 아내. 한국생활에 금방 정을 붙이더니 별로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해서 우리의 통장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고있었었다. 하지만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해서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아온 그녀의 사고방식이나 정서도 한국식이라고 볼수는 없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가부장적인 해프닝에 불만을 터뜨리곤 하더니 어느날 사표를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 혼자 할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어. 프리랜서를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얼마 안되지만 퇴직금으로 뭐 딴궁리를 해볼꺼야."
실제로 그녀는 회사다닐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쥐꼬리만큼도 안돼는 퇴직금을 가지고 이런저런 계획을 짜보고, 발로 뛰면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으러 다니는 아내는 실제로 행복해보였고 늘 활력이 넘쳤다. 그런 아내가 너무도 자유스럽게 보였고 신혼초에 유별스럽게 절약해서 모아둔 돈이 있다는 사실이 나또한 사직서를 쓰게 만들고 말았다.
맞벌이 하다가 하나가 그만 두었으면 너라도 정신차리고 착실히 직장생활을 해야지 도데체 무슨생각인지 알수가 없다며 푸념하시던 어머니와 "유학한답시구 돈 퍼다쓴 얄미운 시동생"에게 늘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형수의 노골적인 눈총만 뺀다면 내 마음은 너무나 홀가분했다. 아내와 나는 그동안 모아둔 돈과 약간의 대출을 받아 작은 까페를 열었다.
가게 이름와 인테리어 꾸미는 일에 우리는 많은 정성을 쏟았다. 길거리에 늘어선것이 까페면 커피샵이니 만큼 좀 특별하게 단골을 만들수 있는곳을 꾸며보자는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회사를 그만둔지 3개월 후에 i95가 문을 열게되었다. i95는 내가 유학했던 미국 동부지역의 남북을 연결하는 가장 중심적인 고속도로로 보스톤, 뉴욕, 워싱턴과 플로리다까지 이어져 있다. 여행을 좋아해 아내와 나는 자동차로 이 길을 수없이 다녔고 많은 추억도 있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실내장식과 소품에도 많은 정성을 쏟았다. 유학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향수를 달래며 찾았던 술집이나 까페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가게가 오픈할 즈음에 우리에게는 추억으로 가는 타임머신 같은곳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다 들어오는 손님이 전부였다. 특이한 인테리어나 가게이름이 인상적이라면서 자주 들리는 손님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나처럼 몇년간 정붙이고 살았던 미국이란곳이 비록 타국이기는 해도 막연히 그리울때가 있는 그런이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자 같은 학교에서 유학한 사람들끼리 동창회같은 소모임을 예약하기도 하고 그중 몇몇은 우리 부부와 절친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마음이 답답할때면 우리 가게를 찾아와 맥주를 병째 마시며 외롭고 힘들었던 유학시절의 추억에 젖었다가 돌아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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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잔에서 하얀 김이 스르르 올라와 침묵하고 있는 우리사이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눈이 오니까 갑자기 그날이 생각났어요, 그런데 i95라는 간판이 보이잖아요..., 주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무작정 들어와 내 얘기좀 들어달라고 그럴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우리는 오래전에 만났다.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모습이 좋아서 나는 그녀를 따라다녔고 사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항상 여자들이 많았고 나는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도 곧 지루해졌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그녀와 헤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