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여의 추억여행은 날 핼복하게 했다.
때론 웃름 지었고,때론 눈물을 참을수 없어,
벌개진 눈으로 캐샤를 해 손님을 당황하게 했다.
나의 섬 마을 기억 에 관한 추억여행이
끝나갈수록, 나는점점 초조 해지고,불안해졌다.
아.....내가 왜 이걸 시작했나....
아.....쓰는 그 순간 에도 매 초,매 시간 후회할것을,
나의 고통 과 번뇌 는 사춘기 부터 시작?榮?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열살 터울이 나는 언니덕에
어려서 부터 전래동화 와 내 나이 이상이 대상인,
세계 문학전집을 나는 많이 접했었다.
시골집 창고에 보관해놓은 언니,오빠 들의
중,고등학교 국어책을 다 읽은것도 초등학교 때였다,
그것이 시 든,수필 이든,소설이든,아님 평론이든간에....
재미가 있고,없고를 떠나서 그저 뭔가 읽는게 좋아
닥치는 대로 읽는 거의 잡식성 독서 였다.
처음엔 심심 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흥미로 시작했고,
나중엔 무언가를 향한 내 지적 호기심 의 충족으로 이어졌다.
시골 중학교 에 입학 한후론
루이제 린저 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든가,
도스도예프스키 의 [죄 와 벌]을 읽고,
톨스토이 문학과,장 폴 싸르트르 의 [구토] 에 심취했다.
역시 문학에 관심 있던 언니의 책이었다.
내용을 이해했냐고?
아니다.그저 무언가 읽는게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의 유희로 시작했고,즐겼던 문학의 영향은,
섬을 떠나 목포 에서 여고시절을 시작하며 시작된
나의 사춘기의 감성 속으로 조용하고도,
교묘히 스며 들어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낯선 얼굴과 환경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난
옛날의 그 활발함은 모두 잃어버리고,
쉽게 속내를 보이지도,쉽게 친해지지도 않는 ,
알수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친구가 없다고 외로워 하면서도,
친구를 만들려는 그 어떤 노력이나,시도를 안하는........
혼자 있는 자취방의 음울함이
몸서리 쳐지도록 싫었으면서도,
마음한구석에서는 오히려
그런 자신의 감성과 외로움을 즐겼던....
반 싸이코 적인 소녀.
내가 그 시절의 나를 표현하고,
지칭 할수 있는 유일한 단어 이다.
미처 영글지 못한 머리와 영혼에 스며든 문학을,
나는 제대로 흡수를 못하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환시켜 버린 것이다.
나 역시 그 또래의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국어를 담당하셨는데, 유부남 임에도 불구하고 ,
많은 아이들이 그 선생님을 좋아하고,흠모 했다.
아이들은 드러내놓고,선생님께 표현하는 당찬 아이들과,
선생님 이름을 듣거나, 얼굴만 보아도 얼굴이 빨개지는,
얌전 하고 소극적인 아이...이 두 부류로 나눠져 있었다.
난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방법으로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난 너네 같은 유치한 짓은 안한다]
라는 걸 일부러 드러내기 위해
애들 앞에서 그 선생님을 싫어하는것 처럼 티냈고,
그 분 앞에선 더 무뚝뚝 하게 굴었다.
실제론, 저만치 국어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면,
얼국이 화끈 거리고,심장도 쿵쾅거려 ,
고개도 못들어,인사도 안하고 지나가던 ,
겉과 속이 다른 속물 이었는데도말이다.
[나는 너네와 다르다] 라는 알수없는 자만심.
도시 아이들에게 꿀리기 싫다는 아량한 자존심 .
아니 열등감 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옳을,
나의 못난 사춘기는 여고 3 년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결국 내 스스로 나를 왕따로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친해진 친구 들.
나에겐 그애들이 제일 친한 친구들 에 속했지만,
그 애 들에겐 난 친한 친구들 중의 한명 일뿐이었다.
지독한 거짓[?]외로움과 고독.
그것을 해소할 탈출구 를 ?지 못한 난,
이 승철 , 이 선희 의 노래와 과다한 폭식으로,
여고 3 년을 보냈다.
어릴때 부터 뚱뚱해서 몸매 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던 나는
남들 앞에서는 자신감 마저 잃었고,그때 바뀐 내 성격은
졸업후의 진로 와 직장에서마저 힘들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바보,천치 멍텅구리 였다.
결혼 하기전,
내가 처음 만난 이성 이자,
유일하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유일하게 내가 원해
함깨 밤을 보낸 유일한 나의 남자.
그는 물론 지금의 남편이 아니다.
그를 만난건.
서울 에서 인천으로 직장을 옮긴지 2 개월이 다 되가던,
스물 셋 .어느 봄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