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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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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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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eugene69 2002-06-29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아주 짧은 통화를 하고 가는 사람을 여러번 목격하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그 시각이면 그 식품점앞에서 그를 보게 되었고 우연치 않게 그 사람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너희집앞이야--- 그래 괜찮아, 아프지말고 또 올께.”

그렇게 수화기를 놓고 돌아서는 그 사람의 어깨가 왠지 안쓰러워 보인건 기분탓이었을까?

‘그렇구나. 애인한테 연락을 하는 모양이네, 많이 아픈 모양이지.
집앞까지 온 사람을 보러 나오지 않고---- 어쨌든 그 사람은 좋겠다.’

그 후 이상하게도 애인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 시간이면 변함없이 전화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 보는 내가 있었다.
같은 시각에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른체 여전히 전화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
통화 내용은 항상 같았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그의 말도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그런 정성에도 한번 나와보지 않는 그의 애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내 일인양---- 아니,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그의 무관심이 더 화가 나기 시작했던것 같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 한 달정도 지났을까?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나는 오늘은 꼭 용기를 내서 말을 해야지 하고 결심을 했다.
그에게 아무것도 받은것은 없지만 어느새 난 그에게 사랑을 느끼는 자신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싹트는 사랑을 난 그에게 영영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날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날이 나와의 만남 또한 마지막으로 끝나버렸으니깐,

“그래, 이제 못와, 내가 없어도 괜찮지. 옆에 있어 주고 싶었데,
미안해--- 응, 여기선 안될 것 같아서 이민 가기로 했어.
그래 다 잘 있어--- 이젠 전화도 못할꺼야.”

평소와 다른 대화를 하고 떠나가는 사람, 수화기를 놓고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난 차마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떠나는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저렇게 헤어져야 하는 걸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용기를 내어 한달 동안이나 어깨넘어로 보아온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그런데-----

“이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수화기를 떨어트리고 그가 돌아서 가던 곳으로 뛰어 가 보았다. 하지만 어느곳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몇일을 그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는 누구에게 전화를 한 것인지?
그는 정상이었는지?
도대체 누구와 그리 애타게 통화를 한것인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몇일 후,
그 식품점에서 우연히 듣게 된 그의 소식.

“그래 그 이층집 아들, 저 위 동네 아가씨하고 그리 죽고 못산다던---- 그래 죽었데---.”

“죽어? 몇일전까지만 해도 여기 매일 와서 전화 하고 가던데---.”

“글쎄, 그 아가씨가 두달전이가 병으로 죽고 나서부터 정신이 반이
나간것 같이 매일 그 아가씨랑 전화 한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더
뒀다가는 아들 정신병자 만들겠다고 걱정된 부모가 이민간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말 들은 아들이 유서 써 놓고 자살을 했다네
글쎄---“

“저런 세상에--- 뭐라고 유서를?“

“처음엔 같이 갈것처럼 잘 따라와 줘서 부모도 한시름 놓는 듯
싶었는데, 유서에다가 그녀를 혼자 두고 도저히 갈 수 없다고
녀와 함께 있겠다고---- 했다나.”

“아이고 저런, 불쌍들해서 어떻게---. 부모는 또 어쩌구.”

“그래서 가까운 절에 가서 오늘 영혼 결혼식 올려준다고 하더라구---,
그렇게 함께 있고 싶어하는데 죽어서라도 함께 있게 해 주자고
두 집안에서 합의를 본 모양이야.”

그랬구나.
그런거였구나---
매일 공중 전화박스 속에서 그는 그의 죽은 애인이 외로울까봐 전화를 해준거였구나.
그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도저히 떠날 수 없어서 그녀의 곁으로 간거구나----.
난 눈물이 났다. 뭐가 그리 슬픈지 목이 터져라고 울었다.
지나가던 주위 사람들이 미친 사람보듯 하는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이제 사랑하는 그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못했던 내 짝사랑.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찾아간 그 용기.
나도 그런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도 그 공중전화박스를 지날때면 그 사람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전화를 해 본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매일 전화하는 것 지켜봤던 사람인데---.
행복하시다고요? 축하해요----
헌데 한가지만 얘기할께요. 제가 좋아했던것 아세요?
아셨다고요---- 그랬군요.. 고마워요.
항상 행복하세요.”

원문 1998년 6월15일 작
수정 2002년 4월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