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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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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BY ggummani 2002-05-07

내가 아무래도 이름을 기억 할 수 없는 계란 할머니의 막내아들 얘기를 조금 하려고 한다. 계속 막내아들이라고 부르면 이야기의 진행이 안 되겠기에 철수라고 하자. 나보다 일고여덟 살 많았던 철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이었지만 할머니의 아들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오남매는 큰 아들과 작은 아들, 그리고 큰 아들보다 누나가 되는 큰 딸과 작은 아들 다음의 두 딸이 있었다. 가장 작은 딸도 스물 대여섯이 되어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러니 우리가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철수와는 나이차가 많이 났다. 흔히 남의 얘기라는 것이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철수에 대하여 각각 다른 퍼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퍼즐들을 모아보면 철수에 대하여 조금은 알 수가 있었지만 그것이 철수의 모든 것일 수는 없는 것이어서 퍼즐은 여전히 조각이 모자랐다. 철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까지는 다른 어느 곳에서 살았고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철수는 처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아마도 내 또래쯤 이었나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같이 살고 있었던 할머니의 막내딸과 많이 싸웠다고 했다. 천성이 개구쟁이 여서 말썽도 많이 부렸고 할머니에게 혼쭐이 나서 집을 나가기도 여러번 한 철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말썽도 부리지 않고 학교도 열심히 다녔다.

우리가 본 철수는 두가지 모습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여전히 개구쟁이인 철수였다. 여자들이 하는 고무줄이나 시마차기도 잘 했다. 오징어땅도 잘 했고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에도 지는 법이 없었다. 저희들끼리 집을 보는 동생들에게 실없는 소리를 하여 엄마와 바느질 할머니의 싸움을 붙인 것도 철수였다. 그것이 고의는 아니었던 것처럼 철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참 잘했다. 철수가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하여 자주 사용한 것 가운데 하나가 카메라였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여 특히 집안에 있는 아이들을 모델로 하여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우리 형제도 심심찮게 모델 노릇을 했다. 그 때만 해도 필름값이 비쌌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사진 값은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우리 집 가족 앨범을 뒤적이다 보면 아마도 그 무렵 철수가 찍은 것으로 짐작되는 사진들이 여러장 들어있다. 수돗물을 받기 위하여 동이를 대 놓고 담벼락에 나란히 선 우리 형제들을 찍은 사진, 대문 앞에 동그마니 앉은 진희의 모습, 해바라기 아래서 나와 엄마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결코 철수를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철수가 찍은 사진이 뽑혀서 신문에 난 적도 있었다. 동상이었지만 고등학생이었다는 신분을 생각해보면 심사위원들로서도 놀랄 일이었다. 철수는 그 신문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은 사진작가가 될 거라고 했다. 하모니카를 잘 불었던 철수는 우리 앞에서 하모니카도 자주 불었다. 할머니는 하모니카 소리를 싫어하셨는데 그래도 철수는 우리 앞에서 자주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그 낡은 하모니카는 철수가 처음 할머니와 살게 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곳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얻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누구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냥 아는 형이라고만 했다. 철수가 할머니와 살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사람들의 의견들이 조금씩 달랐다. 철수의 친엄마와 같이 살았다는 얘기도 있었고 어디 고아원에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철수의 친엄마에 대하여도 의견이 달라서 어디 가난한 집의 착한 아가씨였다는 얘기도 있었고 흔히 거리의 여자라고 부르는 그런 여인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것은 모두의 말 뿐이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철수뿐인데 철수는 엄마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혼이 많이 나면서도 철수는 할머니의 사랑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건강이 좋았을 때는 매일 철수의 교복을 깨끗이 빨아서 다림질해서 준비해 주고 멀리까지 학교를 다니는 철수를 위하여 새벽마다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다. 할머니가 계란 도매상을 하신 관계로 철수의 도시락에는 계란이 빠지지 않았다. 생선을 좋아하는 철수를 위하여 매일 저녁 생선 반찬을 상에 올렸다. 할머니는 자상하거나 잘 웃는 분은 아니었지만 인정은 많은 분이었다. 엄마하고의 인연 때문에 당장 목돈이 없는 우리에게 일단 방을 먼저 내 준 것도 그렇고 낳지 않은 아들임에도 철수에게 성의를 기울인 것을 보면 많이 베풀 줄 아는 분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말썽꾸러기였던 철수는 그런 할머니와 살면서 차츰 마음을 잡았고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이름 없는 실업고등학교를 겨우 들어갔지만 학교에 들어 간 뒤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철수의 배다른 형제들은 철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 놓고 미워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철수는 나이차가 많은 형제들을 어려워했다. 특히, 큰 형 앞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 할 만큼 주눅이 들어 꼼짝을 못 했다. 철수는 졸업 후에 직장을 잠깐 다녔지만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자 그만 두고 할머니 곁에만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에도 철수를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내가 더 오래 곁에서 저 녀석을 지켜야 할 텐데, 이렇게 빨리 가게 되어 큰일이라고, 너희들이 철수를 좀 돌봐 주라고...

할머니가 떠나신 후, 철수는 한 동안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이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오갔다. 아마도 할머니의 다른 다섯 자녀들이 집을 내 놓을 생각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계란 도매상은 할머니의 큰 아들이 맡아서 운영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없는 마당에 이 낡은 집을 두어서 무엇 하겠냐고 해서 집을 팔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철수는 어디로 가야 할 까. 엄마와 아버지의 얘기가 사실인지 큰 아들은 부지런히 드나들었고 큰 딸도 이틀이 멀다하고 다녀갔다. 대문 안 사람들은 아마도 집을 팔기 위하여 저렇게 자주 찾아 오나보다고 했다. 다만 미현이 할머니만은 다르게 말을 했다. 막내가 혼자 저렇게 방에 처백히갖고 안나오고 있응끼네 보러 오는 거 아이가. 저기 인자 곧 병대도 가야 되는 데, 저래가 어짜겠노... 나는 미현이 할머니 말이 맞았다고 생각이 든다. 겨울 방학이 시작 된 얼마 후, 철수가 마루 끝에 나와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숙제를 하다가 미현이네 가서 놀기로 하고 신발을 끌며 부엌 문을 열고나서는 데 철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철수는 여전히 체육복 차림으로 마루 끝에 앉아 우리 집이 있는 별채와 본채 사이의 좁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본래도 좀 마른 편인 철수는 정말 빼빼 말라서 뼈만 앙상했다. 전 같으면 아이들이 눈에 띄면 엉덩이로 이름쓰기 같은 걸 시키거나 팔뚝으로 방귀끼기 같은 것을 해서 아이들을 웃겼을 철수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철수는 겨울 방학 동안 아주 가끔 우리 눈에 띄었고 그럴 때 마다 그렇게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