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밖은 새 연탄을 가득 쌓아 놓은 것처럼 깜깜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일곱시가 채 안되었다. 잔업이 없다면 엄마는 일곱시에 퇴근을 할 것이었다. 느거 엄마, 오늘 우산 안 가 갔제, 미희야, 니가 좀 내리 가 봐라. 아버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예, 하고 나는 내 우산을 하나 받쳐 들고 커다란 박쥐우산 하나를 한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창건이가 나도 같이 갈게, 하면서 따라 나섰다. 선희와 진희도 따라 나서고 싶어 하는 것을 너희들은 우산도 없고 비도 많이 와서 안 된다고 하고 창건이와 나는 대문을 빠져 나왔다. 대문을 나서 왼쪽으로 뻗은 넓은 길을 두고 우리는 굳이 더 좁은 대문 맞은 편 골목길을 들어섰다. 성당까지 곧장 통하는 골목을 단숨에 빠져나와 우리는 시장통을 따라 내려갔다. 오후부터 갑자기 거세진 비 때문에 가게들은 밖에 쌓아 둔 물건들을 안으로 들이고 어떤 집은 일찍 문을 닫고 정리를 하는 분위기였다. 내리막인 시장통을 다 빠져 나오자 학교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는 학교, 왼쪽으로는 사상역이었다. 이 길을 지나 좀 더 나오면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었다. 버스길을 건너면 엄마가 다니는 국제상사가 있었다. 국제상사의 규모는 전국에서 가장 컸고 내가 살았던 동네의 사람들은 직간접으로 모두 그 회사와 연관이 있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국제상사를 다녔거나 그 회사의 하청회사에 다녔다. 창건이와 내가 건널목을 건너려고 서 있는데 건너편에서 누가 소리를 지른다. 미희야, 엄마였다. 엄마가 건널목에 서 있었다.
가족은 참 이상하다. 집 안에 모여 있을 때는 그다지 애정을 느낄 수가 없다. 덤덤하다 못 해 때로는 지겹기 까지 하다. 그런데 집 밖에서 만나면 말 할 수 없이 반갑다. 그리고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집 에서는 보이지 않던 가족의 짐과 우울이 밖에서는 유난히 잘 보인다. 길에서 만나는 엄마는 유난히 더 늙어 보인다. 어디서 만나도 단박에 알아 볼 수 있게 키가 작고 둥글게 생긴 엄마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들어 댄다. 공장에서 비닐을 구해 성구네에 있는 숙희 언니랑 같이 쓰고 나온 엄마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마구 이 쪽으로 뛰어왔다.
“와, 다행이다. 미희야, 고맙다.”
창건이가 들고 있는 우산을 받아 쓴 숙희 언니가 더 좋아한다. 시골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도시에 가면 돈도 벌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고 해서 고향 언니를 따라 부산에 온 숙희 언니는 고향에서 맏딸에게 거는 너무 많은 기대 때문에 결국 공부를 포기했다. 많지 않은 월급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공부하는 오빠의 학비로 보내고 하숙비를 내고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지만 그 돈을 아껴서 가끔 시골에 있는 동생들의 용돈까지 보내주는 숙희 언니였다. 주위에서 너,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고 너 위해서 저축 좀 하라고 해도 언니는 그냥 사람좋게 웃기만 했다. 보얀 숙희 언니의 피부를 샘한 윤경이 언니가 공장 그만두고 나랑 같이 일하자고 해도 숙희 언니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우산을 하나, 숙희 언니가 우산을 하나, 창건이와 엄마가 하나를 쓰고 집으로 향했다.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쉬운 법이고 기분도 흡족하여 우리는 곧 집에 닿았다. 아버지가 된장찌개를 데워서 상을 차리고 있었다. 오나, 찌게 냄비를 든 아버지가 우리를 향해서 말 했다. 밖에서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우리는 뜨거운 찌게를 앞에 놓고 머리를 맞대고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