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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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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서


BY 푸른배경 2002-03-25

"승원씨. 누구 전화이길래 얼굴이 그렇게 싱글생글과 멍한 표정이 교차하는 거야."
"학교 친구라는 데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선배님."
"여자구나! 그러니깐 얼굴표정이 그렇지."
"제 얼굴이 어때서요. 사실 걸려온 전화가 여자인 것은 맞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제가 설레일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야. 얼굴에 써 있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이."
"뭐 굳이 그렇게 믿고 싶다면 변명은 안하죠. 믿고픈 사람 마음이니깐."
숨기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차이가 무얼까? 솔직히 승원의 마음은 현재 궁금함과 외면이라는 두 단어가 싸우듯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다만 선배의 말에 승원은 '내가 진짜 신희인이라는 얼굴도 모르는 실체'에 얼마나 많은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 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 눈에 반한다는 말은 있지만, 한 말에 반한다는 말도 성립되는 걸까?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가뜩이나 몇마디 나누지 못한 사람과 인연이다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7시 45분. 정확하게 시계바늘은 7과 9라는 두 가지 숫자를 가르키고 있다.
"자 이제 그만 퇴근합시다. 승원씨도 오늘은 집에가서 잠을 자고, 김 과장은 나랑 소주나 한 잔하지."
"네. 그러죠. 참 부장님이 오늘 쏘실 안주는 뭐죠?"
"뭐 그런 것을 따지나. 돼지 껍질에 한 잔 먹는 거지."
"부장님. 저도 같이 가면 안되나요? 아님 저를 왕따하기로 마음을 먹으셨나요?"
"그럴리가 있나! 피곤할까봐 그런거지. 그럼 같이 가고. 비싼 거 먹으러 가는 거 아니니깐 기대하지 말고."
"옛썰. 어느 분의 명이라고 의심을 하겠습니까. 진군하시지요. 뒤를 따르겠습니다."
여름의 해가 오늘 더 머물겠다고 버티는 모습이지만 서산으로 기운 만큼 달은 어둠을 몰고 도시 위를 덮고 있다.
"부장님은 어떻게 결혼 하셨어요?"
"하하하. 그런 질문 오랜만에 받아보는 군. 맞아. 생각해보니 우리 부서에 이승원씨만 솔로구만. 김 과장은 지금까지 뭐 한거야? 승원씨 장가도 안보네고!"
술잔이 이미 서너번 돌아갔고, 잠을 못자서 그런지 승원에게는 피곤함이 태풍으로 몰려드는 파도처럼 파고들었다.
"부장님 그런 말 마세요. 글쎄 아무나 잡아서 그짓하라니깐 절대로 안된다고 화를 내더라구요. 지가 무슨 춘향이라도 되는 마냥."
"어.승원씨에게 그런 순수함이 있단말야."
"부장님 그런게 아니라. 저는 그냥 결혼에 대한 아니 사랑에 대한 꿈이 있거든요."
"결혼해봐. 아무리 이쁜 여자라도 한 삼년 지나면 이 얼굴이 이쁜건지 아닌지 모르겠거든. 안그런가. 김 과장."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늦게 장가들어 이제 2년하고 반이 지나가는 데,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첫 날밤 와이프 얼굴이 천사같더니 지금은 바가지 긁는 악마. 뭐 그러니깐 전형적인 아줌마로 바뀌더라구요."
"그래도 부장님과 과장님도 저와 같은 마음을 먹었을 때가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부장님도 나도. 경험담이 괜히 나오는 것인 줄 아나? 다 지난 시간이 바탕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참 승원씨 총각딱지 아직도 가지고 있지? 그렇지?"
"그게 뭐 중요합니까!"
"아. 그럼 승원씨도 순수한 척하는 이승원도 결국 진짜 남자로 태어났다는 거네. 그게 언제야? 어디서 해봤는 데? 미아리? 그럼 청량리?"
"아아 한잔 마시죠. 제사 지내는 것도 아닌데, 자 부장님도 드시고, 과장님도 드시고."
"허허 쑥스러운가 보니. 김 과장 그런 질문은 친구끼리나 하는 거지! 그렇지만 승원씨 상대는 이뻤어?"
"어라. 부장님마저 그냥 한 잔 드세요. 자자 제 사랑에 대한 관심은 이제 끄시고."
"그래도. 궁금한 걸 어떡해."
이미 경험했다는 것은 확신이 곁들여있다는 것이듯 박부장과 김과장의 놀리는 듯한 말투는 술잔과 함께 끝없이 이승원의 앞으로 왔다. 놀림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각 딱지를 떼었다는 투로 얼버무렸지만 정확한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투로 술자리는 계속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