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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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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nali 2002-01-19

미니 소설>

너의 변신은 유죄.

사건은 겨울이 끝날 무렵 의 어느 일요일 낮, 아파트 놀이터에 깔린 봄 햇살 자락에 동네 꼬맹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일어났다, 아이들 뒤를 따라 나온 여자들은 등받이가 없는 긴 나무 의자에 쪼르르 전기 줄의 참새 마냥 앉아서 자잘한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 같은 말투로 한 여자에게 이야기 초점을 맞추었다.
"현주 엄마, 순이 엄마 얼굴 봤어?"
"은수 엄마도 봤어요? 나도 어저께 봤어요."
"아유, 며칠 전에 나도 봤어, 그 나이에 왼 주책이래."
세 여자의 말투엔 순이 엄마 흉을 좀 볼까 하는 생각들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두 주 후에 있을 시동생 결혼 문제로 시댁에 오간다고 한동안 마실 나오는걸 안한 나는 넘치는 호기심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순이 엄마가 뭐? 엉?"
그러나 세 여자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소문을 낸 입으로 찍혀 순이 엄마에게 봉변을 당할걸 우려하는 눈치였다.
나는 모래장난에 푹 빠진 아이를 들쳐업고 동네 슈퍼로 갔다.
열 가지 소문 중 아홉 가지의 진원지인 슈퍼 주인아줌마도 순이 엄마를 일주일째 못 봤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 그래도 순이 엄마가 요새 안 보여서 이상하다 여기는 중이야. 뭔 일이 있는가?"
나보다 더 궁금한걸 못 참는 아줌마는 '잠깐 가게 좀 봐 주, 하더니 외상 장부를 들고나섰다,
"외상값 받는 척 하면서 보고 오께."
그리고 10분이나 되었을까. 저만치에서부터 의기양양 희죽 희죽, 빨리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달려온 아줌마가 말하는 것이었다.
"순이 엄마 코 수술했어. 아이고 의성 마늘쪽처럼 톡, 세웠더만. 그런데 엄청 이쁘졌더라. 몰라보겠어, 영 딴사람이 되었다니깐? 자기도 얼른 가서 봐. 궁금하지?"
아닌게 아니라 양 볼과 높이가 똑 같은 순이 엄마의 콧등이 마늘쪽처럼 오똑 솟아올랐다니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몰라보게 이뻐졌다는 수퍼 아줌마의 말에 대번에 뽀족이 고개를 내민 내 질투심이 발걸음을 집으로 밀었다.
나는 가끔 순이 엄마의 커다란 눈과 반듯한 이마 그리고 조각한 듯한 입술 가운데 푹 꺼져있는 납작코를 보면서 저 납작코도 이쁘게 바짝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 생각 뒤엔 혹여 그녀가 큰마음 먹고 코를 수술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하루아침에 비너스로 변하여 그저 그렇고 그런 우리 동네 여자들 중에 군계 일학으로 자리매김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숨어있었는데 그 염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집에 오자 마자 전화번호부를 꺼내놓고 집집마다 전화를 돌렸다. 10분만에 온 동네 여자들이 우리 집으로 몰렸다. 놀이터에서 만난 세 여자들 외엔 아무도 순이 엄마의 변모된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순이 엄마는 부끄러워서 수술한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지 않는 모양이었다, 놀이터에서 제일 먼저 말을 꺼냈던 은수 엄마가 이제 다 아는 사실이니깐 말해도 뒤탈이 없을 거라 여겼는지 순이 엄마를 성토하고 나섰다.
"일주일 전에 밤에 애가 아파서 약국에 갔더니 순이 엄마가 막 약국에서 나오더라고,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자기도 놀라서 얼른 피하는거 있지. 그런데 난 이쁘다기 보단 인조인간을 보는 거 같아서 끔찍했어. 전혀 다른 얼굴이니깐."
눈이 뱁새눈 만 하다 하여 별명이 뱁새인 지수네는 두툼한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세상에 마흔 넘은 나이에 왠 수술이야? 아이고 넘사 시러워 그리고 전세 사는 주제에 뭔 돈으로 성형수술을 했대, 나 같음 내 집 마련이 우선이지 그딴 짓 안 한다,"
열 명도 더 되는 성형수술 반대론 자들의 악의 섞인 말을 들으며 내 질투심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름다워진 순이 엄마를 보러가고 싶지 않았고 다른 여자들도 그런 것 같았다.
동네 여자들은 내가 끼이든 안 끼이든 끊임없이 인조미인 성토 모임을 만들었다.
마른 나뭇가지와 모래더미, 보도 블록사이에 까지 미친 듯이 돋아나 동네를 푸르게 물들이는 푸른 새 순들을 따라 인조미인에 대한 험담도 동네 구석구석을 물들이고 있었다. 순이 엄마는 문밖출입을 극도로 자제하는 눈치였다. 밤에만 살짝 나와서 뭘 사간다는 소문이 슈퍼아줌마 입을 통해 돌았다,
이 주일이 성큼 지난 어느 날 시동생 결혼식을 끝내고 돌아와 허리끈을 풀고 있는데 지수 엄마가 전화를 했다.
"순이네 이사가, 얼른 나와봐. 지금 이삿짐 들어내고 있어."
갑작스런 소식에 냉큼 나가보니 온 동네 여자들이 다 나와있었다,
그네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무더기로 모여 수군거리며 순이 엄마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가만 가만 이삿짐을 나르는 순이 엄마는 죄인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여왕의 얼굴처럼 아름답고 빛났다. 인조인간의 태는 조금도 안 난다고 누군가 속삭였다,
나는 여자들 틈에 끼여 쳐다보는 걸로,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했던 이웃사촌 이 년을 마감했다. 순이 엄마는 한 마디 인사말 도 못 남기고 떠났고 떠나가는 이삿짐 차를 보고 돌아서는 나는 부끄러웠다. 다른 여자들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사라짐으로 해서 학 앞에 닭 꼴은 면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모두의 눈에서 빛나고 있었다.
뱁새는 요즘 선그라스를 하고 다닌다. 작은 눈을 쫙 찢어 올린 것이다. 아무도 뱁새를 미워하지 않는다, 고쳐봐야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니깐.
은수네는 순이 엄마가 수술한 병원이 어딘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조만간 납작코 하나가 또 하나 사라질 전망이다,
그 외 몇 명의 여자들이 더 심사 숙고 중이라는 소문이 슈퍼 아줌마를 통해 돌고 있다,
?겨난 순이 엄마는 ?겨 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당분간, 아니 영원히 순이 엄마를 우리 가슴에서 밀어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