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벌써 3막 1장을 시작하려 한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야기가 절로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요즘이 새해(임오년)을 시작하는 한주라 그런지 일출을 보기위해 서울을 떠나 멀리 동해나 지리산등을 다녀왔다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 본다
때는 1994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대학 2학년때이니까 그정도 쯤으로 생각되어 진다.
창모가(자칭 타칭 킹카) 하루는 큰지막한 지도를 하나 가지고 오더니 대뜸 어디로 갈지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넘 뜬끔없이 그때 우리의 경찰가족인 탁이가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천왕봉 일출이 끝내 준다는 말을 하였다. 우리는 그때 서로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우리가 오를수 있을까? 그것도 한겨울에 ? 한번도 가본적이 없네?
그렇다고 등산을 자주 한것도 아니고?)
잠시후에 모여있는 친구들과 가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역시나 친구들은 모두 찬성이었다. 힘들겠다는 생각보다는 대학생활에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했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지금와서
이렇게 웃으면서 자판을 두드리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죽을뻔 했다. 종종 그당시에 지리산에 실종된 사람의 뉴스를 우리는 자주 접할수 있었다.하하하
나, 락, 창모, 탁, 정희 이렇게 다섯이 지리산 산행 그것도 새해 첫 일출을 보기위한 지리산 등반에 오르게 되었다. 사전에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겨울산 특히 눈덮인 산을 그것도 야밤에 올라야만 한다는 것을 미쳐 알지 못했던것 같다.
소설 태백산맥(조정래씨 지음)이 우리의 유일한 자료였으니 정말 우리는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은 생각이 지금도 든다.
지리산 등정일정은 1박 2일로 잡았다. 원래 여러분도 다녀오셨다 시피 지리산을 산세가 험하고 높아서(남한에서 두번째로 높은) 족히 5박 6일 코스가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 일반적 코스는 구례에서 출발하여 노고단을 거치고 산등성이를 따라 행군하듯이 하는 평펌한 코스와 우리가 선택한 1박 2일의 죽음의 코스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았고. 또한 5박6일을 버틸 경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안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죽음의 코스는 경남진주에서 출발하여 산 중턱의 산장에서 하루밤을 묵은후에 새벽에 길을 나서 지리산 새해 일출을 보는 것이 우리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우리 다섯명은 진주시에서 약간의 여장을 준비한후에 배낭을 각자 짊어진후에 지리산으로 향하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뭔가 기억에 남을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발걸음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지리산 초입에 다다랐을 무렵에 우리는 한가지 난제에 맞딱뜨리게 되었다. 지리산앞에서 입산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야기인 즉은 등산화및 아이젠(발에 다는 쇠: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없으면 안된다는것이었다. 우리중에 등산화가 준비된 사람은 탁이와 정희 밖에 없었다. 더 웃긴 것은 나의 신발은 모 상표의 구두(랜드로바- 그 당시에 가장 잘나갔던 상표이다)였다. 그 꼴을 본 관리사무소 직원이 혀를 내두를 정도 였다. 여기까지 와서 산에 발도 못 딛어 보고 이대로 주저앉아야 만 하는 절제절명의 위기순간이었다. 이때 탁이가 발 부착용
아이젠 몇개를 꺼내 가까스로 입산할수 있었다. 차라리 이때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더 철저히 우리를 막아주셨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이 그 이후에도 계속나게 된다.
우리는 정말 막막했다. 오후 한 4시경부터 산에(지리산에)오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우리 다섯 모두는 그 때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뉴스에 나오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안하게도 점점 깊어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랴 길이 아닌것 싶어도 오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해는 산이라 빨리 저물고 주위에는 적막과 우리의 가쁜 숨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정말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이때나온것 아닌가 싶다.
이때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다가왔다. 그럼 그렇지 우리에겐 아직 행운의 여신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잠시 산행을 멈추고 있던 사이이에 한 등반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후레쉬불빛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던것은 내생에 처음이었던것 같다.
정말 우리는 눈물이 날정도로 기뻤다. 등반대 우리도 등반대지만 우왕좌왕 등반대인데 반하여 그 사람들은 전문적인 지리산을 여러번 종단했던 배테랑의 등반대였다.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분들이고 대학 산악 동아리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정말 우리는 죽다 살아난것이다. 그것도 랜드로바를 신고 이산에서 죽을뻔했다. 이제 우리는 맘을 놓았다.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음놓은것도 잠시 지리산은 우리에게 쉽게 그 모습을 내어주지 않았다. 점점 힘들어져 조여오는 배낭과 가파른 경사(약 45정도의 경사로 기억한다) 주위에 잡고 오를 나무는 있었지만 그렇게 약 6시간을 산을 타야 한다니 우리는 난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산에 매달리다시피 산을 올라야만 했다. 그때 일이 결국 생기고 말았다. 울 친구중에 유난히 체력이 약한 놈이 딱한 놈 있었는데 여러분도 기억하시죠
여성스러운 바로 그 정희 였다. 정희가 올라가는 우리에게 더이상은 못가겠다고 우리만 가라는 것이었다, 이 밤에. 이 험준한 산에서 자기는 못가겠다고 퍼진것이었다. 허허
그도 그럴것이 정희는 나중에 군대갈때도 공군에 지원했지만 체력테스트에서 불합격하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할 정도로 체력이 약해다. 우리도 점차 지쳐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어?F게 친구를 놔두고 갈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정희를 설득했다. 그리고 정희의 배낭은 우리에게 넘겨졌다. 특히 경상도 출신의 체력짱 락이가 앞뒤로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생각해도 락이는 사람이 아니었던것 갔다 아마 설인이었을 거다. 하하하
한 중간쯤 올랐을까 잠깐 쉴 시간이 주어졌다. 새벽 1시정도로 기억되어진다. 우리 다섯은 모두 눈이 돌아가고 머리가 핑도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때 느낀것이지만 이래서 사람이 죽을수도 있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하하하하 그래도 생각하면 그 때 기억이 가장많이 난다. 아차 별이야기를 좀 하자면 지리산의 별들은 정말 많다. 매연에 찌든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바로 그 별인듯 싶었다. 하늘 가득히 촘촘히 박혀 있는 금방이라도 우리 머리위로 쏟아질 듯이 선명한 그 많은 별들에
우리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내생에 그렇게 많은 별을 본것은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평상시에 먹지도 않던 오이가 왜이다지도 맛이 있고 달던지 나와 우리 친구들은 그 때 그 오이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그리고 절대 춥다는 생각을 가져본적이 없다. 비오듯 땀이 등과여러군데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것이다. 잠시 배낭을 벗어놓고 시원이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등줄기를 통과할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형용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통쾌함이랄까....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그때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땀벅벅으로 얼룩진 얼굴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산장에서의 3막 2장은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