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의 위생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81

[제23회]


BY 마음 2002-02-21

도대체 준우어머닌 왜 이렇게까지 날 밀어낼려고 하는건가.
단지 엄마와 나눈 비밀스런 과거 이야기들에 대해 개운치 못한 기분 탓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도 그것들을 앞에다 내세워 나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 벨소리가 한참이나 울린 뒤에서야 주머니에 들어 있는 내 핸드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준우 어머니와의 통화 뒤끝이라서 내 목소리 또한 가늘게 떨려서 나온다.
“너 어디니?” 준우가 다짜고짜로 따지듯이 묻는다.
“시내.....”
“여기서 얼마 안 걸려. 그러니까 그 자리 그대로 있어. 내가 금방 갈께.”
“됐어.... 오늘은 그냥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어... 너무 힘들어서 서 있기조차 힘들어....”
사실이었다. 술기운도 있는데다가 먹은 것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긴 시간을 밖에서만 맴돌았다.
“오늘 아니면 안돼, 거기가 한일극장 부근이라면 극장 바로 옆에 지하 커피?痔?하나 있어. 추우니까 들어가 있어. 십분안으로 갈께.”
그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의 말대로 거의 십분 뒤에 약간의 초췌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았다.
꼭 헛깨비를 보는 것 마냥 그의 존재가 의심스럽다.
그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험 잘 보았느냐고 말하면서 내가 앉은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가 지금 날 원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행동 하나에 전부 다 베여져 있는 걸 느꼈다.
그는 분명 내 목덜미를 만지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조심 조심 내 머리칼에 약간의 입맞춤을 할 것이다.
하지만 평소하고 다르게 내 어깨에다 그의 팔을 감아 안았다.
금방이라도 그의 입술이 내 얼굴에 닿을 것만 같다.
그의 숨소리가 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무슨 일 있구나....”그의 팔을 떼어 내며 말했다.
“....................”
그가 입을 열지 못하고 한참을 커피만 마시고 있다. 불길했던 느낌들이 그의 입으로 통해서 사실적으로 드러날 것들에 대해 내 어깨쭉지는 더욱 움추려 들었다.
“안 좋은 일이야?”
“............”
고개만 끄덕인다.
“사실은 오늘 엄마한테 우리 문제 가지고 내가 심하게 좀 했었어. ”
“그래서....?”
“지난번 너희 엄마 우리집에 일하려 오시게 한 것들이 엄마의 생각이었다면..... 사실은 믿기지가 않았었어. 그래서 확인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런데 얘기 도중에 엄마가 갑자기 혼절을 하시는 바람에..... 우리가 지금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그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나오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준우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엄마, 지금 병원에 계시니?”
“그래..... 금방 깨어나실 줄 알았는데.... 할 수 없이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 내일은 퇴원하실거야. 원래 몸이 약하신 편인데다가 예민하시거든.......”
준우의 말소리가 작은 파편으로 내게와 박힌다.
이대로 그를 보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만 같다.
다행히 그의 얼굴이 정면에서 보이지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가슴이 또 답답해져 온다.
이제 그를 만나는 것이 내겐 고통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그에게 연락을 하고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 하고.....
“그런데 핸드폰이 어떻게 엄마한테 가 있지?”
“우리 엄마한테....? 언제?”
“조금전에.....”
“아...! 그때구나! 아주 잠깐이었는데.... 왜 나한테 말씀을 안하셨지.....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그래서 엄마 잠깐 바꿔 드리고 담배 한대 피울려고 나갔다가 왔는데.... 하필이면 그때.... 아버지가 이태리 출장중이시거든....”
힘이 쫙 빠져 나가는 것만 같다.
신조차도 내 편은 아닌가 보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꼈다.
죽음에 대한 동경,
‘이럴때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는구나’
황량한 들판에 나 혼자 서있는 기분, 왈칵 설움이 솟구쳐 오른다.
정말 준우하고와의 교제가 이 정도로 비참해질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순조로울거라고도 기대한 적도 없지만.....
“왜 내게 전화 한통 못해 준거니?”
“오늘은 아무튼 정신 없었어. 너 시험 끝날 때 쯤 부터..... 엄마 쓰러지고 핸드폰도 안 챙겨서 나갔지. 거기다 나중에 또 하니까 전화가 안 터지는 건지 계속 연락이 안된다고만 하지....”
그 시간에 지하 호프집에 있었던 걸 얘기해 주었다.
사무장하고 한잔 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준우가 벌컥 화를 낸다.
“지금까지 그 사람하고 술 마셨어?”
“그래..... 그러면 안 되니? 시험 그렇게 치고 오니까 술 생각 밖에 안 나더라.... 사실이야... 그래서 내가 술 먹으로 가자고 졸랐어.... 그 사람 잘못 아니야....”
“현희야..... 너 왜 이렇게 변해가니? 너처럼 순한 아이가..... 요사인 꼭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애.”
“.......”
“고개 들어 봐!”
기어이 내 턱을 치켜 올린다.
그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까.
그이 어머니 말씀처럼 내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서 더더욱 보호해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눈을 여전히 쳐다보질 못한다.
“난 너 아닌 다른 여자와는 절대 결혼 하지 않을거야. ”
그의 고백은 일종의 청혼이었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고 만다.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가 않는 고백이었다.
준우와의 만남도 이랬다.
마음은 이미 그에게 빠져 있으면서도 잠깐 짬깐씩 꿈을 꾸는 듯 그를 만나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