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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사육허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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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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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BY 마음 2002-02-05

현화니? 하면서 문을 열어주던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고 우선 내방으로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했다.
막상 엄마의 얼굴을 대하고 보니까 더더욱 막막해져 왔다.
엄마의 얼굴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 방으로 따라 들어올 줄 알았던 엄마는 당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티브이 소리를 평소답지 않게 크게 틀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엄마의 얼굴도 심상찮았던 것 같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멍하니 침대 위에 걸치고 앉아서 옷 갈아 입는 것조차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핸드폰 소리가 요란하게 날 깨운다.
“여보세요.”
“나야........어디니?” 준우일거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낯설다.
“우리집.........”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
“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니?”
“우리 엄마가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
“현희야! 이럴때는, 너라도 날 믿어줘야 하는 거 아니니?”
“.................”
“왜 아무 말도 없어? ”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어른들 얘기라서...... 도무지 나도 뭐가 뭐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긴 있구나?”
“그럴거야....”
“그럴거라구? 무슨 얘기야? ”
“미안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애.... 그리고 내일부터는 우리 엄마 너네 집에 안 나가실꺼야.... 미안해..... 전화 끊는다....”바쁜 듯이 전화플랩을 닫아버렸다.
낮에 본 준우의 그 일그러진 얼굴이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가 않는다.
엄마한테서는 아직도 기척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실대로 말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바보같은 짓을 해 버릴수는 없었다.
“엄마, 나야”
엄마의 방을 밀어 본다. 티브이를 보고 계실거라 생각했던 엄마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다.
“엄마! 어디 아퍼?”
이불을 꺼집어 내리려 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엄마는 완강하게 그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가느라한 음성 하나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왔다.
“엄마 괜찮으니까 나가봐, 오늘 도서관 가는 줄 알았는데 왜 벌써 들어 왔어?”
“나도 몸이 좀 안 좋아서....... ”
엄마의 손 하나가 이불 밖으로 툭하고 내 던져져 있는 것처럼 하고 있다.
아직도 반지 하나 없는 엄마의 왼손이었다.
메니큐어는 고사하고 이미 퉁퉁 불어터진 듯한 터?E터덜한 엄마의 손을 나도 모르게 잡아 버렸다.
손바닥이 딱딱하니 보드라운 느낌 하나 없는 나무토막만 같다.
속에서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은 곧 울음이 되어 터져 나왔다.
엄마가 그런 엄마가 불쌍해서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이불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엄마의 손이 풀어지더니 엄마의 얼굴이 형광 불빛 밑에서 드러났다.
입술에 바른 루즈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세수도 안한 얼굴이다.
그렇게 병적으로 샤워를 해대던 엄마가 요사이 그러한 것들을 왜 갑자기 그만 두셨는지....
이젠 엄마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얘가.... 왜 어린 애 같이 그래..... 엄마 괜찮다는데.....”
“아니야...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래.....”
“뭐가? 무슨 일 있었니?”
“아니라니까..... ”
“사춘기가 다시 오는건가.... 현화는 멀쩡한데..... ”
“엄마,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지난번 엄마 일했던 식당 한번 찾아갔었어. 식당이 없어진지 좀 된 모양이던데......”
엄마는 내말이 거의 끝나는 것과 동시에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얘가....... 점점...... 거긴 니가 뭐하려 찾아가? ..... 너 안 그랬잖아...... 요사이 정말 왜 그래? 너 분명히 무슨 일 있는 거야. 그지?” 엄마의 말에 힘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우리를 먹여 살리는지.... 알면 안 되는 거야? 나도 이제 엄마 말처럼 시집을 가도 될만큼 나이를 먹었어. 그런데 지금까지도 내 엄마가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우리 외가는 왜 없는지..... 우리 아버지가 진짜 우리 아버지인지...... 도무지 우리가 아는 게 뭐야? 언제까지 엄마는 우리를 엄마 밖에다 내어 놓을거냐구.....” 이미 준비해 둔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튀어 나올 줄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아버지가, 니 아버지가 어쨌다고.....? ”
엄마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엄마! 진정해 내가 잘못했어...”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를 보니까 걱정스러웠다.
“너부터 얘기해. 니한테 분명 일이 생긴거야.....”
“아무일도 없다고 했잖아....”
“왜 누가 너더러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싫다고 하디?”
“그만해.... 그게 아니라..... 나도 이젠 다 이해 할 수 있단 말이야. 엄마에 대해서 알고 싶어....”
“난 할 말 없다....”
“다른 집 엄마들은 딸한테 친구처럼 속의 이야기도 많이 한다더구만....”
“아직은 아니야.... 니가 시집을 가서 애기나 하나 낳으면 몰라도 아직은 내 마음 몰라...."
“그러면 내 부탁 하나 들어줘.... 아무말 하지말고 준우네 집에 일하려 가는 거 그만둬!”
“니가 어떻게 아니?”
“사실은 오늘 준우 한테서 들었어....”
“준우? 그럼 너 준우와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면서 지냈니?”
“아니..... 그건 아니고 우연하게 여기와서 다시 만났어....”
“언제? 우리집 근처라서 그럴수도 있겠다만.....”
“그래.....우리 동네에서 우연하게 만났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서로 연락들을 하고 지낸 모양이구나.... 그런데 왜 지난번 현주 결혼식 때 준우 얘기하니까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니?”
“뭐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 해서....”
“준우가 놀랬겠구나.... 오늘 사실은 준우를 그애 집에서 봤었어. 나도 내내 마음이 안 좋았었다. 그 아이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해서 아무리 어린애들 때 봤다고 해도 지도 마음이 이상한가 보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미쳤어.... 잠깐 제 정신이 아니었어.....
현주 결혼식 때 날 보더니 얼마나 반갑게 그러던지..... 이웃에 사는데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언니 동생 하면서 그렇게 지내자고..... 일이야 크게 어려운 일도 없고 해서 청소하고 시장 봐다가 저녁상까지만 봐 놓으면 되는 일이라서..... 하지만 오늘 준우 보면서 사실은 나도 안 되겠다 생각은 했었어....”
엄마는 나쁜 짓 하다가 들킨 사람 마냥 허둥대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 엄마가 너무도 안 되어 보여서 등 뒤로 가서 엄마를 부둥켜 안았다. 엄마의 머리에서 복잡한 냄새가 난다.
엉켜있는 파마머리 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나 있었다.
“미안해 엄마! 이러 얘기는 안하려고 했었는데...”
“아니다...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러면서 내 손을 다시 끌어다가 앞에 앉힌다.
“너 혹시 준우하고 사귀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내 말이 너무 단호했다. 어차피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엄마한테 말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다시 스스로를 다짐시킨다.
그를 떠나 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