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대로 우리도 여느 집들처럼 밤이면 불이 켜지고 현관문 밖으로까지 김치찌개 냄새를 풍겨대는 그런 집으로 변해 있었다.
더군다나 현화와 내가 방학이어서 우리 가족은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난 것이다.
현화말로는 엄마는 10시쯤 나가서 오후 5시면 집에 오신다고 했다.
그렇게 모두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데 준우와의 일만큼은 도무지 앞 뒤 없이 꽁꽁 묶여 있는 기분이다.
그를 만나는 것도, 안 만나는 것도 나 혼자서만 이리 저리 결정을 내린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그저 전화 오면 예전처럼 만나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를 대해야 하는데 그렇게 그를 만나는 일이 내겐 일종의 고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사람 엄마에 대한 감정이 처음 그분을 만났을 때에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아니 내 엄마가 왜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엄마하고 그렇게 친하게 지냈다면서....... 그리고 교회를 다녔다고 했고 우리 엄마를 구원시키려 했던 그 분이 이제와서 그것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 것인지 생각은 늘 이렇게 나를 독한 아이라고 말하던 할머니 앞에서 처럼 분노 같은 것이 끓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준우한테는 문득 문득 어떤 그리움같은 것이 일어서 그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 자신을 볼 때가 있다.
그 그리움이 어디서 오는 건지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고 싶은데 사실은 자신이 없다. 그를 순수한 내 애인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껏 내가 받아 보지 못했던 사랑에 목말라 있어서 그를 만나면 그로 통해 그것들을 받아 마시려 하는지 그에 대해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사년 가까이 지내오면서 그에게서 받아온 아주 작은 배려 하나도 아니 굳이 배려가 아니더라도 그의 숨소리, 그의 입김, 그만의 냄새, 그가 좋아하는 음악, 그가 자주 쓰는 말, 이미 너무도 많이 내 안에 들어 와 버린 그를 완전히 내게서 떼어내 버린다는 것은 내 생살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일 건 뻔한 일인데....... 그저 생각하면 모든 일들이 날 자꾸만 캄캄한 골방 같은 곳에다 가두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날들이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목요일 오후였다.
사무장이 막 자리를 비운 뒤인데다가 의뢰인이 담당변호사님과 면담 중이어서 도무지 전화 받는 일 조차 조심스러운데 준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잠깐 보자고 했다.
그가 무턱대고 이렇게 근무 시간에 찾아오는 일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내가 그에게 간 것은 한 시간이나 훨씬 지난 뒤였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걸 참을 수 없어 찾아온 그에게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우연이겠지만 그가 앉아 있던 곳은 그의 엄마가 처음 날 만나려 왔던 꼭 그 장소 그 자리였다.
우선 숨을 크게 들이키고 다시 천천히 내 쉰다.
그가 날 보자마자 다짜고짜로 하는 말이 우리엄마한테 다른 얘기 들은거 없냐고 묻는다.
대답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이지만 내 머리 속에 분명 엄마한테 생겨난 요사이의 변화가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어떻게 네 엄마가 우리집에서 파출부 일을 하실 수가 있니?”
“다시, 다시 말 해봐? 뭐, 뭐라고 했어?”
“몰랐니?”
“.................”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너무 놀래서...... 우리 엄마 한테는 제대로 물어 보지도 못하고 나왔는데.... ”
“우리 엄마가 니네 집에서 파출부 일을 하신다고.......”
내 입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간다.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준우를 쳐다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지난번 이 자리에서 준우엄마를 뵐 때 보았던 그 고상한 미소가 자꾸만 준우의 얼굴 위에 겹쳐져서 내 속에 말을 해버리고 나올 뻔 했다.
‘정말 고상하시군요. 정말 잔인하시군요. 그것이 천국가는 방법이랩디까?’
그를 남겨두고 엘리베이트 앞에 왔을 땐 이미 준우 그도 함께 달려 온 뒤였다.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
“그럼? 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우리 엄마 잘 봐 달라고 니한테 부탁이라도 해야 하니?”
“현희야? 너 지금 제 정신이 아니구나!”
“그래, 나 지금 맨 정신 아니야. 그러니까 가, 가버려... 니네 집으로.....”
눈을 크게 부랴려 떴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니가 왜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돼. 내가 너 엄마한테 우리집에서 일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햇단....... 말....이니? 그럼......설마.......우리 엄마가 일부러.......?”
준우의 말은 심하게 더듬거렸지만 자신이 지금 하던 말 중에 깨달은 또 한가지 사실을 내게 다시 물을 것도 없이 확신을 하는 눈치였다.
그를 남겨두고 엘리베이트 문을 닫아 버린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준우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려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아이의 집에서 파출부 일을 하고 있을 엄마 생각을 하며 이를 악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