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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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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BY 마음 2002-01-07

가슴을 보듬어 쓸어 내려본다.
큰댁의 신부측 하객만해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이지만 신랑쪽 하객은 그보다도 더 우세했다.
수적으로도 그렇지만 하객들의 차림새만 봐도 어느 정도는 집안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큰댁은 인근 면단위에서 올라온 주민들이 대부분이고 개중에는 큰아버지의 덕망에 어울리게 잘빼 입은 신사분들도 몇몇 보였지만 나머진 그렇고 그런 부인네들이 많이 와 있을 뿐이었다.
원래 없는 사람들과 있는 사람들의 차이를 겨울에 제일 많이 비교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엄마를 따라 앞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준우엄마의 시선이 내 뒤통수에 꽂혀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뒤를 돌아다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큰댁에 들렸다가 올 엄마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 준우엄마하고 나눈 얘기가 궁금해서이다.
저녁 늦게서야 들어온 엄마는 술에 약간 취해 있었는데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
“왜 덕산 가서 무슨 좋은 일 있었어?”
“그래, 좋은 일 있었다. ”
“무슨일?‘
“아니, 넌 몰라도 되는 일이야. 아무튼 나 오늘 기분 정말 좋다. 우리 딸래미들 때문에 정말 기분 좋아.”
상기되어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을 날아 다니며 온기를 더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근데 현화는 또 어딜 나갔나봐..?”
“친구하고 약속이 있데나 어쩐데나...”
“나 참, 낮에 준우 엄마 봤는데 너도 봤니?”
“누구?”
“준우엄마 말이야.”
“아니..... ”
“준우엄마 너 얼마나 이뻐 했었는데 그거 기억 하니?”
“아니...... 몰라! ”
“하긴 그때가 언제적 얘긴야. 준우가 글쎄 대학교수 생각을 하나 보더라... K대 대학원 다닌다고 하던데 너도 몰랐지?”
“응.....”
“어릴때 벌써 다른 아이들 하고 다르다 싶더니......근데 참 웃긴다. 준우엄마 말이야. 어떻게 큰댁 잔치에 다 올 생각을 했지?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하긴, 친정이 이웃 동네이긴 하지만...”
버선발에 하얀 속치마만 걸친 엄마의 등 부분에 언뜻 보아도 푸르스름한 그림인지 글자인지 모를 흉터가 남아 있었다.
내가 준우엄마를 오늘 만난건 결코 우연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준우의 엄마의 깊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준우와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는 아니, 결혼까지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확실한 이유임에 틀림이 없다.
엄마한테서 내가 가졌던 풀어낼 수 없는 비밀들을 분명 준우 엄마 자신은 알고 있는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내가 유심히 그것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서 그런지 재빨리 쉐타를 끌어다가 걸쳤다.
“준우엄마, 다른 얘기는 안하고...?”
“무슨 얘기? 우리도 만나지 너무 오래간만이라 오히려 할 얘기가 없더라 니 학교 들어간 얘기며, 현화 얘기도 하고 준우네는 여전히 잘 사나 보더라. 회사도 옛날처럼 그렇지도 않고 제법 커졌다는구나. 나야 들어도 모르겠더구만 여기 섬유공장이 어디 한두 군데니? 준우엄마, 니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니만 오늘 그냥 봉투만 내밀고 갔는지 그 뒤로 영 못 봤다.”
“엄마하고는 어떤 사이야?”“어떤 사이라니?”
“아니 좀, 남다른 것 같애서.....”
“우리 덕산에 살 때 잠깐 친하게 지낸 적이 있긴 했지.”
“얼마나 친했는데.....?”“그런데 너 왜 그러니? 뭘 그렇게 궁금해 해?”
“아니......궁금한 것 보다 조금 아이러니칼 해서.....”
“왜? 내가 그런 사람들 하고 친했다는게 이상하다 이 말이니?”
“꼭 그런건 아니고.....”
“하긴, 내가 생각해도 준우엄마가 왜 날 좋아했는지 모르겠어. 내가 두 살인가 더 많았지. 언니 언니 하면서 많이 챙겨 주더라. 준우엄마가 보기에도 내가 안 되어 보였나 봐. 애 둘 데리고 혼자 사는 거 보니까 그럴만도 했다 싶구나. 거기다가 나이도 비슷했고.....요사인 교회 안 나가지만 준우 엄마는 아직도 교회 열심이 다닐 걸, 준우 엄마가 날 교회까지 데리고 나갈 만큼 신경 많이 썼었어. 그때 처음으로 교회를 다녔지. 너도 그때 유년부 다녔잖아. 준우도 같이....”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서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엄마도 그걸 원하는 눈치였고......
“몰라, 기억이 안 나! 나 커피 마실 건데 엄마도 주까?”
“너 커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니? 나는 됐어, 잠 안 와! 물이나 한잔 갔다 주던지.....”
엄마의 방을 나오는데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물 한잔을 들고 다시 엄마의 방문을 여는데 엄마는 아까 갈아 입다가 만 속치마를 벗고 블랴자를 다시 찾아 입고 있었는데 등에 있는 그 퍼런 흉이 자꾸만 눈에 거슬리게 들어온다. 처음 본 것은 분명 아닌데 내 머릿속은 지금까지 그저 덮어만 두었던 엄마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꼬리를 물고 일어서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