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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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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마음 2001-12-29

교문 옆에 어김없이 준우의 그 단정한 모습이 보인다.
순간 그를 모른 척 해 버리고 지나쳐 버렸다.
내속에 이런 못된 마음이 있었던가 싶게 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다.
그의 목소리가 뒷전에서 달려왔지만 내 걸음은 멈추어지지가 않았다.
“야! 현희야! 어디가?”
그의 목소리가 숨이 차오른다.
“.........”
“얘가... ....너 왜 그래?”
내 오른쪽 어깨를 잡아 되돌려 보려 했지만 내 고집은 그의 뜻대로 하게 내 버려두질 않았다.
함께 나오던 몇몇 아는 얼굴들이 우리의 행동에 재미있다는 듯이 흘끔거렸다.
이미 그들도 우리가 어떠한 관계인지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해도 짐작 정도라도 충분히 알만 도 했다.
버스 한대에 빼곡히 학생들을 실고 사라지도록 그도 나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 정말 왜 그러는 거야?”
그의 말투가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나왔다.
“나 이제 너 안 보고 싶어. 그러니까 다시는 여기 오지 마...”
“얘가........너 혹시 우리 엄마 만났니?”
“.................”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얼굴이 날 내려다 보고 있다.
달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모를 희뿌연한 빛 하나가 그의 입 언저리에 붙어 있다.
그의 파란 입술이 날 약하게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아 이내 외면해 버리고 지나가는 차 해드라이트 불빛만 ?아가기 시작했다.
“정말이야? 언제 .......?”
갑자기 준우가 어쩔 줄 몰라 한다.
“얘기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그냥 가는게 좋겠어.”
“도대체 우리 엄마가 무슨 말을 한거야?”
“모르겠니? 너의 엄마 나 만난다고 했더니 그래 잘 해 봐라, 그러던?”
그에게 이러면 안 되는데 그걸 알면서도 생각처럼 내속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버스 한대가 다시 왔고 나는 그 버스에 거의 튕기듯이 올라탔다.
그의 엄마를 충분히 이해를 한다고 해 놓고서는 나의 이런 행동은 또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도 느직이 뒤따라 오르긴 한 것 같은데 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버스정류장에 다 달았을 때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리고 말았다.
한데 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매일같이 그와 앞뒤로 걸어가던 그 긴 큰길가를 온통 그의 걱정으로 꽉 차 있어서 달빛이고 불빛이고 쳐다볼 겨를도 없이 집까지 와 버렸다.
그에게 그렇게 까지 했었어야 했나?
옷도 갈아 입지 못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가 또 커피 물을 올렸다가 안절 부절 하고 있었다.
나보다도 더 여릴 것만 같은 준우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니까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막 다시 현관문을 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예상했던 대로 준우다.
“우리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엄마 생각하고는 달라. 그것만 알아둬, 우리는 우리야. 만약 니가 날 싫어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널 버리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꺼야.”
그의 말투가 너무도 강해서 떨림이 그대로 전해오는 기분이었다.
“지금 어디야?”
“너희집 골목...”
“그래, 알았으니까 빨리 집에 가, 엄마 걱정 하실지 몰라... 나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
“아니, 너 얼굴 보기 전에는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거니까 그렇게 알어...”
준우의 고집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다시 현관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저만치 그가 남의 집 담벼락 밑에 서 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울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벌써 울고 있다.
그런데 생각은 다시 되돌아서 집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은 이미 그에게 달려가고 있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준우 걱정에 다른 건 아무 생각도 안 나더니 그 긴장이 풀어져 버렸나 보다.
한꺼번에 몰아친 소용돌이 속으로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현희야, 현희야,...”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내 이름을 누군가 부르고 있었다.
그와 나눈 따뜻한 입맞춤처럼 그 목소리 또한 너무도 포근해서 그 소리를 쫓아서 달려가고 있었다.
온통 노란 개나리 빛을 띤 식탁이었다.
창으로 들어온 한줄기 빛이 한다발의 후레지아 위를 지나 길게 식탁으로 들어와 있다.
준우와 내가 차를 마시고 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둘은 너무도 행복해 보여서 마치 부부처럼 보인다.
그의 웃는 얼굴이 너무도 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