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09

[제2회]


BY 마음 2001-12-03

어어어야 너를 두고 가는 이몸
어어어야. 절통하고 분하고나
어어어야, 나는 기왕 가는지라
어어어야. 가정수습 잘하여라.

상여꾼들의 만가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드는데 그네의 몸은 소리꾼들의 노래 만큼이나 휘어청 거리고 있다.
막걸리 한사발을 숨도 쉬지 않고 들이키고는 산을 내려오는데 떼놓는 곳마다 스펀지 위를 걷는 모양 푸석푸석하기만 했다.
'뒤돌아 보지 않을끼다. 보마 뭐하노 안돌아 볼끼다. 내사 고마' 하지만 그네의 눈엔 온통 남편의 벌건 무덤만이 왔다갔다 했다.

선산이라고 따로 있지도 않은터라 남편의 병세가 점점 더 악화 되어 가던 지난 여름에 시동생하고 상의해서 원래 있던 산밑 밭대기에다 위로 기수네 밭 몇 평을 더 보태어 미리 등기까지 마친 상태다.
바로 밑 동서네에서 거의 다 떠맡아서 그 돈을 치루던 날 벌써 반백의 시동생인 정임이 아베가 찾아와서 형수요. 고마, 이 밭은 우리 명의로 좀 해 줄소. 정임이 엄마 보기도 그렇고...했다.
어차피 가져갈거 미리 좀 준다고 달라질건 또 뭔가,
그래도 그네에게 살갑게 정이라도 내는 것은 나이 많은 시동생이지만 그이 하나 밖에 또 어디에 있는가.

고생이라면 그네가 더 많이 했지.
나야 뭐 고생이라 말하면 다들 흉이나 보지, 암, 그렇고 말고...
남들 다 하는 고생이라 내놓고 나 힘들었소 할 것도 없고 남들 다 쑥쑥 잘도 낳아 잘도 기르더구만 집안에 대까지 끊어 놓은 이년이 무슨 입이 있어 내 욕심을 챙기겠나.
"그리 하이소. 동서한테 뭐 하나 따로 챙겨 준 것도 아니고 나는 고마 아무말도 할 말이없심더."
그리 생각하고 보니 그네의 마음밭은 이미 허허벌판에 바람막이 하나 없이 맨몸뚱이로 서있는 것만 같다.

다쓰러져 가는 집이지만 내집이라고 찾아오니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무이? 맞아! 어무이 어디 가셨능교?”
그네는 허둥댔다.
바로 앞이 한길가라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아이고...언니! 정신 나갔나. 아까부터 왜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해대는지... 엄마 저 앞에 오빠네 집에 안가 있나.”
막내 시누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랬지. 동서네 가 계시지? 내 정신 좀 봐라. 아가씨. 어무이 좀 모시고 온나. 아니 내가 갔다 오지 뭐.”

그네가 꼬챙이 같은 몸을 해 가지고 골목을 들어서는데 그 모상이 꼭 헛깨비만 같다.
한때는 동네 조무래기들이 구슬치기며 딱지치기며 한데 엉켜 붙어서 싸움판도 곧장 나더니만 이젠 군데 군데 잡초들이 비집고 올라와 추운 겨울 바람보다 더 설렁하게 그네에게 와 안겼다.
우째 이리 설렁하노, 갈 사람은 다 갔는가벼. 그네가 골목을 빠져 나와 시장통을 들어설 때까지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뉘집이나 다들 헛깨비들만 사는 모양이구먼, 우리네처럼...

가게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네는 시어머니를 찾았다.
이미 버릇처럼 그리 살아 온 것이 몇해인가.
“아이구 형님! 무신 기력으로 이까정 왔십니꺼? 어무이 잘 계시더구만...”
동서가 그네의 팔을 잡아 방으로 이끈다.
아직도 새댁 같은 동서의 얼굴 한켠에 반가움이 잠깐 비쳤다.
“아니여, 내가 뫼시고 가야재, 어무이 내가 갔다버린 줄 알겠구먼.”
시어머니는 그네를 보자마자 노여움에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나를 여기다 내 뻐리고 너거들 끼리 어디 갔다 오는기고?”
“어무이요, 집으로 가입시더”
그네의 마음에 큰 바윗돌 하나가 얹혀져 있는것만 같다.
“형님예, 삼오나 지내걸랑 모시고 가이소.”
동서는 엉거주춤 서 있는 시어머니를 등뒤를 받치고 서 서는 그네를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다.
“아이고 어무이요. 애비가 죽었는지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이레 살아서 우짜겠십니꺼?”
그네는 그만 속 깊이 감추어 둔 울음보를 터트리고 만다.
어무이요. 어무이요. 우리 이제 어떻허고 삽니꺼?
“야가 와이카노,고마 시끄럽데이! 우리집에나 빨리 가자고마!”
“어무이, 여기도 아들네 집인기라예. 뭐 그렇게 자꾸 갈라고만 하십니꺼?”
정임이네는 아무리 정신없는 시어머니 말이라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가 없다.
“여가 우리 아들네 집이라고예? ”
시어머니는 새삼스럽게 동서인 정임이네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예이, 여가 우째 우리 아들 집이교. 우리 아들은 내가 키우지예, 왜 아지메한테키우라 카겠심니꺼?”
시어머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임니더. 어무이, 여기가 경수대련님 집인기라예. 여기 이사람이 어무이 둘째며느리아입니꺼?”
“경수가 장가를 장가를 갔다고? 언제 갔노? 그 어린기 무슨 장가를 간다고?”
시어머니는 고집스럽게 딱 잘라 말한다.
그리고는 정임이네를 한번 힐끗 보고는 빨리 집으로나 가자고 졸라댔다.
동서네를 나오면서 시어머니는 동서한테 깍듯하게 폐많이 끼쳤다며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