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주변들이 조금씩 내게 새로움에 대한 걱정스러움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다가와 주었다.
그리고 그녀, 미스 리도 예전처럼 그렇게 까지 미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 엄청난 거리감은 어느 정도 우리들 사이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워지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지금까지 살아 온 얘기였다.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얘기를 풀어 놓는데에도 남 얘기 하듯이 토막토막 나누어서 아껴가며 말해 주었다.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녀는 당시 자취를 하고 있었고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나이 든 주인집 아들이랑 깊은 연애를 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방에서 거의 매일 같이 뒹굴었고 그녀가 간호사 국가고시를 앞두고 독서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그 남자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느끼는 듯 했다.
그건 불과 반년전의 얘기였다.
튀겨놓은 치킨만 봐도 그 남자 생각을 했고 잘 생긴 남자가 옆을 지나쳐도 그 남자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키도 크고 미남형인데다가 유모 감각도 있는 재미난 사람이었으며 옷 입는 센스도 있어서 분위기도 제법 낼 줄도 알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니 배울 것도 많았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성(性)적으로도 그녀를 완전히 사로잡았던... 거의 완벽한 사람처럼 내게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어느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력을 그녀가 내게 제공해 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얘기를 할 때 마다 그녀에게서 나는 묘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묘호한 표정이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는 성적 충동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알 게 된 것은 그녀의 심적 상처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찾아 왔다.
왜 그와 헤어졌는지 그녀는 내 물음에 곧 바로 답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 남자한테서 도망치 듯 이 먼곳까지 오게 된 것 처럼 말해 줄 뿐이었다.
그리곤 가슴에 그를 묻어 둘 생각이라고,
다시는 사랑 같은 걸로 상처 받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기 얘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내내 내 눈치를 살폈다.
막 여름이 시작 되고 있었다.
아직 선풍기를 틀 정도는 아니었지만 잠자리가 그리 상쾌 하지만은 않았다.
불을 끄고도 우리는 쉽게 잠들지를 못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들어 늘 우리는 잠깐씩이라도 눈은 어둠 속에 공허한 채 내 버려두고 제각각 지나간 것들에 대해 그 기억을 얻어 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그리움이든 상처이든 제다 꺼집어 내어 그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상상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나 한테도 첫사랑이란 게 있었다고,
그리고 그 남학생이 다른 여자 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후에 내가 얼마나 그를 증오했는지를,
그가 결국 다시 나를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독을 품었던 거며 결국 그 남학생이 내게 왔을 때 나는 잔인하게 그 남자아이를 차 버린 얘기까지...
그렇게 말해 놓고 보니까
나는 참으로 못된 아이였구나.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건만...
하지만 그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우리가 포옹이라는 걸 한 적이 있었다.
처음 맡은 그 남자아이의 체취가 나를 끝없는 나락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건만 우리는 그것으로 끝이 났었다.
아니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한데 남자아이의 채취를 아직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그리움으로 마음 한 켠에 늘 그렇게 곱게 접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포옹 한번으로 끝난 사이였건만...
내가 이런 말을 그녀에게 들려주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쑥스러운 말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사실 겨우 포옹 한번 해 놓고 키스도 못해 봤겠냐고 큰 소리를 쳐댄 일이 생각이 나서이기도 했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넌 나보고 약하다고 말하지만 너도 몸에 살집이라곤 없어.”
그러면서 내 허리 부근에서 살짝히 꼬집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한번은 허벅지에 키스자국이 나 있었던 것도 모르고 목욕탕에 갔다가 혼이 난적이 있었어.”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말했지만 난 사실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무 말도 못했었는데 오히려 나의 그런 침묵이 그녀와 나 사이를 완전히 열어 놓은 셈이 된 것이다.
그녀는 더욱 가까이 내 쪽으로 밀착해 들어왔다.
그녀의 살갗이 내 몸에 닿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녀가 조금 전에 한 그 허벅지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어떠한 상태가 되어야만 그러한 일들이 생기는지에 대해 일 순간 온몸으로 느껴져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밀어 내지 못했다.
나 역시도 그것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이 거침없이 내 옷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곤 천천히 내 작은 젖가슴 쪽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녀는 내 유두위에서 가볍게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이미 그녀에게 내 몸을 내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이야.
그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내 젖가슴 위에서 장난하듯 그것을 조물거리다가 제 손을 거두어 갔다.
그녀의 손이 빠져 나가고 나는 무슨 의무감이 생겼는지 그녀의 젖가슴을 내가 다시 만져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손을 뻗어서 그녀의 속살 속으로 손을 집어 넣는다는게 내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정확히 말해서 그녀는 몸을 움추려 뜨려 완전히 방어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럴 때를 두고 뒷통수 맞는 기분이라고 하나,
그녀에게 한순간에 참패를 당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