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건 그렇게 안 생겼는데 하는 양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해.”
“.....”
대꾸는 않고 입가로 쓴 웃음만 삐죽히 보여 주더니 그 쓴 소주를 차를 마시듯이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이 여자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마음 졸이는 쪽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나 말이야. 사실은...”
“...왜? 말하려다 말어?”
“아니야. 나중에...나중에 얘기 할 때가 있겠지.”
그녀는 지금 울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앞에 두고 그리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그녀 앞에 있는 나라는 존재가 낯설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의 마음을 보기에는 아직은 이른 느낌이다.
아직 달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고 안아 줄 정도는 되어야지. 아직은 그녀의 사생활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날 밤, 혼자서 소주 한 병을 오랜 시간에 거쳐서 다 마시고는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어딘가를 나갔다 오는 소리가 들렸다.
밤공기를 옷에 잔뜩 묻혀서 들어온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그 차림새 그대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리 밤공기라지만 한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그녀는 온몸을 바르르르 떨기 시작 했다.
대체 어디를 얼마나 쏘다니다 들어 왔는지 나는 부시시 화가 나기 시작 했고 그래서 내 속살에 거의 닿을 듯한 자리에 누워서 떨고 있는 그녀를 본 척 만 척 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살풋 잠이 다시 들려는데 그녀가 누운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 한쪽이 덜컹 내려 앉는 것만 같았다.
이 무슨 악몽인가.
더 이상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 앉아서 그녀를 꺼집어 당겼다.
불빛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서 차마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파머머리지만 머리칼이 너무 약해서 긴 머리카락들이 무슨 강아지털처럼 엉켜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서 그것들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물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우는 여자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내 손에 작은 경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던 여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내 속에서 또 다른 동정심이 일고 있었다.
대체 이 여자를 울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다시 불을 끄고 그녀를 진정 시키기 위해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잠을 재우려고 애를 쓰는 엄마처럼...
하지만 내 심장 소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난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때,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내 등을 쓰다듬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온몸에 감전이라도 온 것 같은 찌릿함을 느꼈다.
내 가슴이 왜 이리도 요동을 쳐 대는지...
그러는 사이에 오히려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대고 있었다.
아직도 술이 덜 깬건가.
그녀의 따스한 입김이 내 귀를 간지럽인다.
“나 미워하지 마! 나 그만 좀 미워하란 말이야. 난 니가 좋은데... 니가 좋은데...”
그녀의 눈에서 맑은 액체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철부지 아이만 같다.
‘너를 도대체 어떡하면 좋으니?’
다음날, 아침 나는 그녀 때문에 해장국이란 걸 처음 끓여 봤다.
냄비를 달구고 참기름을 넣고 콩나물국이란 걸 끓였다.
“고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 갔나?”
나는 괜히 멋쩍어서 아침상 머리에서 한마디를 했다.
둘 다 아침을 지어 먹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부운 얼굴을 하고 앉아서 내가 차려 준 해장국이라는 걸 조금씩 떠 넣으면서 몇 번이나 맛있다는 말만 했다.
북어는 고사하고 계란 하나 안 들어간 멀건 콩나물국이 무슨 맛이 있었겠는가.
그래도 그녀에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라는 걸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콩나물 사다가 이나마 아침상을 차린 것이 다 그녀 한 사람을 위해서였으니까.
“속은 괜찮니?”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녀는 내 얼굴을 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나 역시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한차례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너 다시 한번만 어젯밤처럼 그러면 나 보따리 살 거다.”
어쩌다 보니 단호한 어조로 툭 튀어 나온 말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굳이 생각을 해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녀도 나도 이 말 한마디 때문에 하루 왠 종일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는 고향 같이 완전히 떠나기 어려운 그러한 마음이었다.
이제 직장업무도 조금씩 파악이 되어가고 있었던터라 누군가를 만나는 일 또한 당연히 잦아지게 되었다.
직장 내에서도 자판기 커피 한잔이면 어디서든 누구든 대화가 가능해져 갔고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내게 오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객지에서 이런 재미도 없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