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 일도 안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있다 퇴근을 하는가 싶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타자 연습이라도 해 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통계자료들만 잔뜩 안고 앉아 있는 안경 낀 남자 직원은
내게 무뚝뚝했고 일일이 주판 하나로 통계를 뽑고 있는
그 남자 직원의 표정부터 더 없이 답답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이젠 내가 배워서 해야 한다고 했다.
미스 리는 함께 장보기에 나서면서 슈퍼에 들러서
카레가루부터 샀다.
나는 커피부터 챙겼다.
그리고 커피포트를 사고 라면을 종류별로 사고
전열기구로 뚝배기도 하나 샀다.
대강 챙긴 살림살이를 숙소로 가지고 들어와
처음 그녀와 저녁이란 걸 해 먹었다.
밥도 아닌 라면을 끓여서 집에서 가지고 온 김치를
밥상도 없는 방바닥에다 늘어놓고 그 서글픈 끼니를 때웠다.
하루해가 진다는 것이 어찌 그리 쓸쓸한지
어둑해지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가족들 생각이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하게 났다.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워 ”
그녀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더 무료하고 따분해져서
그녀를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에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봤니?”
“그래...하지만 괜찮아, ”
“너도 한개 피워 볼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가늘고 하얀 담배 한 개피가 끼워지고 있었다.
한 개를 더 뽑아내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한참을 그 하얀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학교 다닐 때 일이다.
담배 피우는 여자아이들의 그 당당한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던 적이 있었다.
남자 아이들 속에서 그들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았고
감히 어느 누구도 그런 그녀들의 행동에 말하지를 못했다.
여전사들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 줄...
그 때 보았던 여자 아이들의 당당함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그녀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별로다. 분위기상, 한대 정도는 피워 줄 수는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야.”
왠지 이 여자 앞에서는 내 실제의 모습보다도 더 단단한 무장을 하게 된다.
“너 맏이라고 하더니 맏이 값을 좀 한다.”
그녀의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다른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어색해 질지도 모르는 일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몇 모금 좀 빤다 싶더니
이내 긴 장초를 비벼서 꺼 버리고는
아까 시장에서 사 들고 들어온 귤이 담긴
시커먼 봉지를 끌어다 놓는다.
그리곤 허겁지겁 그것을 먹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노란 귤껍질이 그녀 앞에 수북이 쌓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쩜 저 조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그 많던 귤이 다 어디로 갔나
싶게 먹어치웠던 것이다.
그녀의 긴 손톱에 이미 귤즙이 베여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네게 누우런 색의 부침개를 디밀었다.
카레향이 코끝에서 와 닿았다.
나는 빵은 좋아 하는 편이지만 치즈가 들어갔거나
케첩이 뿌려졌거나 하는 강한 맛은 아주 싫어했다.
물론 계피 맛도 싫어했고
카레맛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밋밋하지만 삼킬 때에 느껴지는 구수함이 좋을 뿐이지...
한데 그녀는 순수한 카레 가루만으로 부침개를 구운 것이다.
부침개인지 빵인지 모를 그 음식을 맛있다며 먹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도무지 마음이 가지가 않았다.
나의 그러한 속내를 알기 한 것처럼
그녀도 좀처럼 자신을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시간들이 거의 보름을 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