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하고도 세살이나 더 먹은 그녀의 얼굴이 어쩜 그리도 말갛게 생겼는지... 몸무게 사십킬로를 넘기지 못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또 한번 놀랬다. 자그마한 키에 가녀린 몸매라지만 아직도 덜 자란 여자아이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했다. 밥 많이 먹고 좀 더 자라야 할 것 같은... 이부자리를 깔고 불을 껐지만 옆에 누운 그녀가 너무 낯설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었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어디 짐작이나 했으랴.
어둠 속에서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켜 앉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여서 나는 인기척을 차마 내지를 못하고 그저 그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창문으로 흘려 들어오는 바깥 불빛이 그녀를 환하게 밝히듯 비춰 주고 있었는데 그 가늘고 긴 손가락 사이로 담배 한 개피가 끼워져 있는 게 아닌가. 창문을 조금 여는가 싶더니 그녀는 긴 한숨과 함께 허연 담배 연기를 길게도 내어 뿜고 있다. 어디 담배 피우는 여자를 한 두 번 보아 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그녀가 섬뜩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연신 마른 침을 삼켜 대며숨을 죽였다.
6월의 아침은 무척이나 빨리 시작되었다. 숙소 바로 앞이 수돗가였다. 큰우물에 비상용으로 둔 펌프까지 해서 마당 한가운데를 제법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창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아직은 앳띤 얼굴을 한 총각 하나가 큰 양은 주전자에 물을 받고 있었고 수건을 맨 젊은이 하나도 함께 서서 두런두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어제 숙직을 한 남자 직원들인가...머리맡에 둔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일곱시 십분전이었다. 아직 잠들어 있는 미스리의 얼굴을 훔쳐보다가 어젯밤 그녀의 모습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대체 어떤 여자일까. 아직은 내게 보여주지 못하는 자신의 얘기를 나는 언제나 들을 수 있을까. 호기심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아직 밥을 지어 먹을만한 살림살이를 갖추지를 못했던 터라 간단하게 차려 입고 정문앞에 있는 가게로 가서 우유와 팥이 들어가 있는 빵을 각각 두개를 사들고 되돌아 왔다. 미스리는 아직도 잠에 빠져 있었다. 내가 먼저 잠이 든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는 새벽이나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 모양이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전열기구 몇 개를 필히 사야 할 것 같다. 커피가 무진장 마시고 싶은데도 차가운 우유 하나 데울만한 그릇 하나도 없었다.
“어젯밤에 춥지는 않았어요?”
말씨가 어쩌면 그리도 싱그러운지, 여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괜찮았다고 대답해 주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김양이라고 불렸다.
예쁜 얼굴이다. 연자주색 립크로스를 발랐는데 말할 때 마다 보이는 하얀 치아가 그녀의 이미지를 더욱 깨끗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표정이 그 큰 사무실을 화사하게 바꾸어 놓는 건 아닌지... 아무나 만들어 내는 표정이 아니었다.
“미스 박이라고 부를까요. 박 양이라고 부를까요.”
누군가 고개를 빼내어 내게 던진 말이다.
“그게 그거네 뭐! 허허”
어제 인사는 다 했던 터라 그 사이에 벌써 동료들은 어색함을 그렇게 풀어나가려 하고 있었다.
미스 박은 뭐고 박 양은 또 뭐야!
하지만 입 밖으로 내 놓지를 못했다.
나 외에 여직원만 셋, 한명은 결혼한 애기 엄마였고 사람들은 그녀를 부를 때 성 뒤에다가 여사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은 당연히 양이 되든지 미스가 되든지...그랬다.
어이! 박 양! 어이! 미스 박! 그렇게 불리어지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 다른 여직원들의 성 뒤에다 미스니 양이니 하며 그들 속으로 차츰 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