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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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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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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byelover 2001-11-02

제4화
"남편의 여자"

텅비어 식어버린 종이컵을 얼마나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는지
목언저리가 저려온다.
영은은 터미널안의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진이가 오기로 한 시간이 한 삼사십분은 지난것 같다.
영은은 그녀에게 괜한 전화를 한것 같아 조금 후회가 된다.
어제 저녁 카페를 나와 바로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탔다.
휴게소에 들렀을때 영은은 몇번을 망설이다 시간도 보지않고
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수화기를 든건 그녀의 남편이었는데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지
영은의 목소리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듯 해 보였다.
"저...성우씨!저 영은이에요.주무셨나봐요.저...진이는..."
영은이 미안한 마음에 말을 채 끝맺지 못하자 그제서야
낯익은 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영은씨!아 제가 잠깐 졸았어요.아직 초저녁인데요.
뭘요...하하..괜찮습니다.근데 지금 어디,서울이에요?"
기다리던 전화라도 받은듯 성우는 반가워하며 이것저것 물어온다.
아마 진이에게 그녀의 근황을 대충 들어 아는 눈치다.
기집애.얘기하지말아달라고 그렇게 다짐을 받아뒀건만...
영은은 괜히 성우에게 부끄러워져 진이를 원망해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진이 얘기를 꺼내자
그제서야 생각난듯 그는 진이를 바꿔주었다.
그녀는 성우가 하도 오래 얘기를 나누는지라
그의 전화인줄 알았다며 영은의 목소리를 듣자
성우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전화저편으로 두사람의 모습이 보이는듯해 웃음이 나왔다.
"야!너 지금 어디야?그렇게 전화를 끊는법이 어딨니?
나쁜 기집애.너 그사람..아니다.그래.어쨌든 우리 만나서 얘기해.
내일?그래.너 또 없어지면 그땐 진짜 가만 안둬.알았지?"
진이는 민재얘길 꺼내려다 남편을 의식한듯 말꼬리를 돌린다.
버스 출발시간이 생각나서 급히 전화를 끊고 차로 돌아와
운전석 머리맡에 붙은 시계를 보니 12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통화중에도 몇번씩 보채는 아이들의 소리에 짜증을 내던 진이의
심정을 알것도 같다.
진이의 아이들이 몇살쯤되었더라...?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영은이 고개를 돌리자
진이가 작은 아이를 안고 서 있다.
영은이 미안한 웃음을 웃자 진이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끈다.

"그랬구나.난 너한테 전화 건 기억밖에 안나서..."
진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영은을 쳐다보며 보채는 아이를
얼른다.영은은 이리저리 휘젓는 아이의 몸놀림이 불안해보여
진이의 술잔을 이만큼 끌어다놓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호프안 손님이라곤 아이까지 합쳐 덩그라니
셋뿐이다.진이는 부산스런 아이는 아랑곳하지않고 술잔을 들고
주인을 부른다.그녀의 목소리에 역정이 느껴졌다.
"진이야!미안해."
"미안하긴...넌 내 생활의 이벤트야."
빈정거림속에 담긴 그녀의 걱정을 영은은 안다.
영은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해주는 단 하나의 친구.
늘 우유부단하고 마음 약한 진이를
모질고 독한 소리로 이끌던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나약하고 비겁해져있다.
영은은 자신이 정말 싫어진다.
이렇게 못난 자신이 걱정스러워 이른 아침부터 큰 아이를 얼러서
한시간거리나 되는 친정에 맡기고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품에 안고 먼거리를 달려와준 진이.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며
힘들게 오는 동안 진이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영은을 원망했을까.
영은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이제 어떡할거니?계속 숨어 살거야?
니네 엄마랑 지원씨.
나 감당 못해.너 알지.내성질 더러운거.."
그녀가 사라지고 가장 힘들었을 진이.
영은은 문득 미안함과 고마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화로는 애가 타 수십번도 넘게 진이를 찾았을 지원.
얼마전까지도 그녀의 남자였던,
번번히 민재를 찾아 떠난 자신을 말없이 기다려 준
그는 영은의 남편이었다.
"너 듣기 싫겠지만...사실 지원씨만한 사람 없어.그 사람
성우씨 붙잡고 우는데...나 못보겠더라.웬만하면 니가 한번만..
그래.딱 한번만 덮어줘라.안되겠니?응?날 봐서라도...응?"
영은은 늘 민재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원의 얼굴을 한번도 자세히
본적이 없었다.그 얼굴을,
자신이 미처 느끼지도 못한 사이 다가온
그에 대한 사랑으로 진정 두손으로 느끼고 싶었을때
지원에게 느낀 여자의 내음.
영은은 지원을 탓할수 없었다.차가운 자신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여자의 품을 꿈꾸었을 그를 원망하기에
지원은 너무 젊은 남자였으니까...
영은은 진심으로 남편을 용서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를 마주 대하기엔
이미 그녀의 사랑이 또 너무 커져 있었다.
그를 안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나던 여자의 내음이 기억나
영은은 질투심으로 밤새 잠긴 문을 열지 않았다.
이십년이 넘게 시장에서 천 도매상을 하시던 어머니가
거래처 총각이었던 그를 영은의 짝으로 오년 가까이 지켜보며
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영은은 민재를 잊기 위한 도피처가 필요했고
지원은 기꺼이 그 역할을 해주마 약속했다.
대부분의 젊은 남녀의 시작이 그러하듯 두사람은 서로에게
그저 마음 편한 친구가 되길 원했다.
지원을 처음 만났던 날이 문득 떠오른다. 영은은 가슴이 찡했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리던 어느날 밤
영은은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하셨을 엄마가 걱정스러워 가게를
찾았지만 평소 잔정이 없던 그녀의 행동에
어머니는 내심 감격하면서도 쑥스러운지 괜한 짜증을 냈다.
치마는 왜그리 짧냐,머리색깔은 또 그게 뭐냐는둥 어제보고도
몇년만에 집나갔다 돌아온 철없는 딸자식취급한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영은은 좋으면 좋다,고마우면 고맙다는 말대신 오히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서 늘 사람들과 어긋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런 성격때문에 자신의 사랑까지 잃고도 여전히 변할줄을 모르는
그녀의 고집은 지금의 영은과 꼭 닮아 있다.
"그만 좀 하시구려.마귀할멈같애.그렇게 날 잡아 먹고 싶어?
나없음 잔소리 할 데가 없어서 이 아줌니 어찌 살꼬"
영은이 막 돌아서는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누군가의 가슴이 순간
그녀의 얼굴을 사정없이 박았다.
"영은아!지원씨 만나볼거지?"
진이는 아마 한참 영은의 대답을 기다린 모양이다.
"...진이야.난..."
"그래.지금 당장 만나보라는게 아냐.하지만 자꾸 너 이렇게 시간
끌면 안될것 같다.지원씨도 너무 기다리게 하지마라.그사람도
지쳐보이더라.내가 니네 두사람 모름 이런 소리 안해.
남자새끼들 바람피는거 나두 눈뜨고 못봐."
"진이야.그만해.나..."
"그래.너 듣기 싫다는거 알아.하지만 그렇다고 너 언제까지
이럴건데...?지원씨입장도 들어줘야 할거 아니니?너 사실
지원씨한테 못할짓 많이 했잖아."
진이는 영은의 아픈곳을 마구 헤집는다.
그래.진이야.나도 알아.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지.하지만
나 그사람에게 돌아갈 수 없을것 같아.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어쩌면 나인지도 몰라.
아직도 옛사랑을 잊지 못해.이런 가슴으로 그에게 돌아간다면
또다시 그 사람 상처받게 될거야.
진이야.나 어떡하니?내 마음을 어쩔수가 없어.
진이는 민재의 얘길 끝까지 묻지 않는다.
큰아이를 데리러 가야한다며 진이는 호프 세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영은은 핸드폰은 꼭 켜놓겠다 약속하고 진이를 보낸다.
진이는 아이의 앙증맞은 손을 흔들어보이며 택시를 태워보내려는
영은을 기어이 돌려보내고 지하철역 계단을 바쁘게 뛰어내려갔다.
진이야.네게 하지 못한 말이 있어.
내가 떠나기로 한 이유를...
어떤 여자가 나를 찾아 왔었지.나보다 다섯살은 많아보이는...
어디서 본것 같은 ...
그녀는 나에게 말했지.그를 놓아주라고...
그의 아일 가졌다고...그래.그건 거짓말일거야.
하지만 난 떠나기로 했지.망설이는 나에게 남편의 여자는 그저
핑계일 뿐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무도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날 화나게하고
날 주눅들게했지.그녀는 나보다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어.
그런데도 참을 수 없었어.질투가 나서 견딜수 없었지.
하지만 지금 난 날 떠나게 해 준 그녀에게 오히려 감사해.
나 참 이상하고 바보같지?
영은은 다시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