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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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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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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byelover 2001-10-29

제3화
"축제"

여기 어디쯤이었지...?
버스를 타고 가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해서
무작정 내린 곳.게다가 돌아오는 길은 기억에도 없으니...
벌써 날은 어둑해져가고 있었다.
영은은 간판도 제대로 보지 않고 들어가
방금 실연당한 여자의 얼굴로 거의 반나절이상
자신을 던져놓았던 그 카페의 간판을 이제서야
천천히 올려다본다.
칙칙한 나무결과 어울리는 어두운 붉은색의 글씨다.
"축제"
우습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처럼 초라한 자신의 심정과 정반대되는 단어같아서...
문앞에 서서 영은은 한참을 망설인다.
두려웠다.어제 그녀는 대체 누굴 만난걸까...?
찾게 될 것은 지갑이 아니라 어제의 기억이 될것이다.
영은이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밀고 나온다.
젊은 남자였다.
의외로 가슴을 졸이던 조금전까지와는 달리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마음이 밝아졌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두사람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셨네요. 어서 들어가세요.많이 쌀쌀해졌어요."
젊은 남자는 어제처럼 여전히 친절했다.
남자는 누굴 마중나온듯 했다.그러나 영은의 지갑을 챙겨주려는지
서둘러 그녀를 따라 들어온다.
카운트쪽으로 걸어가면서 남자는 영은에게 앉기를 권한다.
잠시 주춤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바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카페안은 이제 막 문을 열어 정리를 한듯 조용하고 사람의 온기가
없어 조금 싸늘하기까지했다.
남자가 영은에게 다가오는듯한 인기척이 느껴져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왜요?그냥 앉아 계시죠.이거 맞죠?"
영은이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남자의 왼쪽 볼에 보조개가 패였다.
유난히 저사람. 미소가 따스해보이는 건 아마 저 보조개때문일걸.
그녀는 오전내내 불안해했던 자신을 잊어가고 있다.
남자가 바안으로,그녀의 앞으로 다가오자
갑자기 영은은 다시 두려워지려했다.
"어제 좀 취하셨죠?"
남자는 어제의 기억을 그녀에게 돌려주려하나보다.
영은은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노래 잘 하시던데요.어제 여기서 스타되셨잖아요."
노래를...?여기서...?내가...?!
남자는 영은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눈길을 피하는 그녀를 툭하고 쳤다.
"에이!장난이에요.정말 취하셨던 모양이네요.저랑 얘기 많이했는데
다 잊어버리셨어요?저랑 친구하기로하시군..."
남자는 토라진 시늉까지 해보인다.거짓말같진 않지만 믿기지도 않아
그녀는 결심한듯 남자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에요?사실은...나 어제 좀 취했나봐요.기억이 좀..
잘 안나요.우습죠?"
영은은 이다지 자신을 편하게 대해주는 그에게
'실은 어제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라고 사실대로 털어놓을 순 없었다.
나이로봐도 한참은 아래일것 같은 남자와 친구하자고...?
영은은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올것 같아 정작 자신이 그토록
걱정했던 일을 물어볼 생각조차 잊어버렸다.
그때 갑자기 삐이익하고 큰소리로 문이 열렸다.
둘은 동시에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쁜 여자였다.
여자는 자신을 보고 있는 두사람을 향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마주보며 걸어왔다.
영은은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시선을 피해본다.
낯선 여자의 등장에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긴장한듯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대신
"무슨일...이시죠?"라고 묻는다.
영은은 여자의 젊음에,
남자는 여자의 도도함에 잠시 말을 잊는다.
여자에게서 찬 바람이 느껴졌다.
여자는 영은을 흘낏 쳐다보고는 이내 남자를 바라본다.
"오빠!아까 이 번호로 전화주셨죠?"
남자는 여자가 내민 쪽지를 보고는 아..하는 얼굴을 해 보인다.
여자는 이내 남자의 손에서 뺏기라도 하듯 쪽지를 채갔다.
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영은을 쳐다본다.
그리고 영은에게 무슨말인가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너무나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당황해하는듯 보였다.
"그여자 지갑 찾아갔어요?"
순간 영은은 깜짝 놀라 여자를 쳐다보고
남자는 머뭇거린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남자는 영은을 바라보며 얼른 대답했다.
"아...그거요?벌써 찾아갔죠.근데 왜 그러시는데요?"
여자는 훅하고 한숨을 쉬며 남자를 쏘아본다.
"그럼 그 여자 전화번호 좀 알려줄래요?"
영은은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상황을 파악하느라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이 여자아인 누구지...?왜 나를 찾는걸까...?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남자는 왜 나를 숨기는걸까...?
남자는 이런저런 말로 그녀를 돌려보내려한다.
영은은 두사람의 대화가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현듯 민재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진이에게 전화를 거는
자신의 모습이 퍼뜩 생각났다.그리고는...
영은은 자리를 털고 일어설 기력조차 없다.
이 여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어제 민재를 만난것일까...?
그가 나를 만나러 이곳에 와준걸까...?
영은은 천천히 일어나 여자옆을 스쳐 카페 안을 빠져나왔다.
남자는 영은을 부르지 않았지만 젊은 여자는 영은의 뒷모습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본다.
문앞에 선 영은은 지금 울고 싶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잠시후 축제의 간판에 주황초록빛 네온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