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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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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안개 2001-11-05

삼촌의 밤 버릇은 그 후로 계속 되었다.
내 옆에 와서는 이불 밑으로 아직 자라지도 않은 내 젖가슴을 만지거나 내 다리를 아래 위로 쓸어 내리기를 반복할 때, 그때마다 나는 이불을 꼭 깨물며 엄마를 생각했다. 조금만 참으면 데리러 오겠지...
그러나 삼촌은 너무 욕심을 냈던 것이다. 그런 두려움은 나 하나로 족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홉 살이 됐어도 학교에 못들어간 수영이 한테 조차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건 참을수가 없었다.
난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삼촌이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깨서 이가 얼얼하도록 이불깃을 물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삼촌의 손길에 잠이 들면 다시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러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나왔다. 옆에 있는 수영이를 안고 울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면 할머니가 깨워서야 일어나야 했다.
어느날 삼촌은 내 옆으로 오지 않고 수영이 옆으로 가서 앉았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있는 수영이를 흔들었다. 수영이는 잠에 빠져 끔쩍도 하지 않았다. 수영이를 쓰다듬는 삼촌의 손과 내 손이 이불속에서 마주치자 삼촌은 황급히 손을 빼내어갔고 나는 수영이의 배를 힘껏 꼬집었다. 수영이가 내지르는 울음소리에 삼촌은 문을 열고 후다닥 방을 나갔다. 수영이의 배를 쓰다듬어 주며 이젠 삼촌이 우리들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왜 미처 그 방법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달그락 달그락.
숟가락을 걸어 논 문고리가 삼촌이 잡아당길 때마다 소리가 나자 그 소리에 잠이 깬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봄이 되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가끔씩 부쳐 오던 편지도 끊어진지 오래였다. 나중에야, 엄마가 벚꽃이 많이 피는 어딘가로 재가를 했다는 걸 알았다. 에미도 팽개친 지집년을 중학교나 보내준걸 어디라고..하며 고등학교 입학을 설득하던 담임선생에게 할머니가 하던 말을 듣고서였다.
그날 저녁 내가 작별인사를 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라도 반가워서 짖는 얼룩이만 조심하면 되었다.
저녁을 먹을 때 난 할머니 모르게 내 밥의 절만도 넘게 수영이에게 주었고 무국에다가 간장도 한숟가락 섞어 주었다. 양껏 먹어본적이 없는 수영이에게 짜고 배부른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미리 싸 놓아야 할 짐도 많지 않았다. 엄마하고 왔을 때 내가 들고 온 짐에서 는 것도 줄어든것도 없었으니까...
짐은 미리 헛간에다 숨겨 두었다. 다행히 내 계획대로 수영인 과하게 먹인 저녁때문인지 연신 밖으로 들락거려야 했다. 밤중에 볼일을 볼 땐 무서워서 서로가 지켜 주곤 했기 때문에 할머닌 별 생각없이 주무셨다.
수영이를 밖에다 세워 두고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장롱문을 열었다. 제대로 기름칠을 하지 않은 문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삼촌 약값에 쓸려고 며칠전에 송아지 판돈을 장롱깊숙이 숨겨 둔걸 알고 있었다. 집안 큰일 때만 입는 할머니 한복을 들추자 보자기에 꼭꼭 싸서 말아 넣어 둔 뭉치가 잡혔다. 단단하고 매끄러웠다. 장롱안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덥석 잡아 버릴 것만 같아 손끝이 벌벌 떨렸다. 돈 뭉치를 꺼내어 미리 허리춤에 감아 놓은 기저귀감 안으로 찔러 넣었다. 그 기저귀감은 내가 이불빨래를 하던 그 다음날로 옆집에 가서 그 집 아기가 쓰던 누렇고 낡아진 기저귀를 얻어다 차고 있으라며 할머니가 던져 주었던 것이다.물론 난 그 다음에 그걸 쓸일이 없었다. 피는 그날로 멎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장롱문을 다시 닫아 놓으려다 그만 두기로 했다. 삐그덕 소리에 할머니가 깨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날이 밝아 할머니가 돈이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우린 이미 할머니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있을 것이다.
방문을 열기 전에 할머니 얼굴을 한번 보았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도 불쌍하신 분이다. 아들 하나는 먼저 보내고 몸이 약해 결혼도 못한 둘째 아들 생각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물론 미안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촌은 약을 안 먹어도 죽지 않지만 수영이와 난 이 돈을 가지고 이 집을 떠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초여름 새벽 바람이 콧등에 쏴아 하게 다가왔다.
문고리가 덜그덕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할머니가 잠에서 깨었다.
"아직도 설사가 안멎은 거여? 저녁을 허겁지겁 먹더니 꼴 좋다. 빨리 문닫어, 바람들어 와."
삼촌은 가는 코를 골며 새벽잠에 빠져 있었고 얼룩이도 우리가 밖으로 몇 번 왔다갔다하니까 아는 척하기가 귀찮았는지 제 밥그릇 위에 엎어졌다.
밖으로 나오자 수영이는 문밖에서 보따리를 안고 쭈그리고 앉아 잠이 들어 있었다.
수영이를 깨워 우리가 빨래하던 냇가를 지날 때 혹시라도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얼굴을 씻겼다. 성황당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가 단 위에 돌을 하나씩 얹어 놓았다. 어른들이 하듯이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수영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따라 했다. 빨리 걸으면 서울가는 새벽 기차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다. 큰길가로 나오자 산너머로 해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길 가장자리로 걸었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에 내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