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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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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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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안개 2001-10-26

엄마가 나와 수영이를 데리고 할머니네 집으로 들어간 건 열두 살 겨울이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몇푼 안되는 보상금으로 알음알음 빼먹다, 옆집에 가서 빗자루 하나 빌릴 줄 모르는 엄마가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죽기 전엔 들어가기 싫었다던 할머니네였다.그때까진 할머니가 살아계신 것도 몰랐다. 조실부모하고 친척집에서 얹혀 살던 엄마를 할머니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삿짐이라야 엄마가 큰 함지 안에 넣은 냄비 몇 개와 이불 한 채, 그리고 옆집에서 얻어 입던 다 낡아빠진 옷 몇 벌이 고작이었다.
"숭한년, 잘 산다고 큰소리 치더니 꼴 좋다. 서방 잡아먹은 년..."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한 첫 말이었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우리를 양팔로 안더니 "애들을 봐서라도 얼마간만 돌봐주세요. 추운 냉골에서 지낼수가 없어서..."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우리를 힐끗 보더니 얼굴 꼴 하군 상 거지꼴 이구먼...누가 지 에미 안 닮았댈까 봐...하시며 밖으로 휙 나가셨다.
건넌방에서 얼굴이 백납 같은 남자가 엄말 보고 인사를 했다.
몸은 어떠세요,삼촌. 삼촌한테 인사드려라.
엄마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영이와 내가 인사를 하자 삼촌은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기침을 하며 방문을 닫아 버렸다.
엄마는 그제서야 한숨을 쉬며 짐을 마루위에 내려 놓았다. 엄마는 수영이와 나를 꼭 껴안고 오백원짜리 지폐 두 개를 내 손에 쥐어 주며 중학교 가서 학용품 사라고 했다.
할머니 말씀 잘 들으면 곧 데리러 오겠다며 엄마가 울며 떠나자 낯선 집에서 수영이와 난 할머니의 눈치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삼촌은 하루 종일 가야 말 한마디 없었다. 그저 가끔 우리를 지나칠 때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등을 쓸어내리는 것이 우리에게 하는 알은 체였다.
삼촌은 엄마 대신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할머니를 설득해 나를 중학교에 보내주었다. 동네 언니한테 빌려 입은 교복도, 가방대신 보자기를 매는것도 매일 갈 데가 있다는 기쁨에 비하면 부끄럽지 않았다.
다만 내가 없을 때 수영이 혼자 놀아야 한다는 것이 걸렸을 뿐이다.
내 키는 점점 커졌고 밋밋하던 가슴도 봉긋해져 갔다. 나를 볼때마다 삼촌은 얼굴이 붉어져서 내 어깨를 잡은 손을 떨곤 했다.
처음에 난 꿈인가 했다.
무거운 것이 내 몸을 내리 눌러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고 내 팔은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어 옆에 있는 동생을 깨울 수도 없었다.
내가 내는 신음 소리에 할머니는 자다가 끙..하며 돌아누웠다. 몸 위에서 잠시 멈칫했다.
누군가 내 몸에 큰 못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입을 막고 있는 커다란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문소리를 듣고서야 잠이 든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다 큰 년이 깨워야 일어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난 간절히 꿈이길 바랬지만 일어나려고 했을 땐 누군가 내 다리를 벌려 놓은 것 같았다.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난 나한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내가 깔았던 요엔 붉은 자국이 이리저리 묻어 있었다.
난 후들거리는 손으로 요를 뜯었다. 너무 오래되어 낡아진 솜은 속에까지 핏자국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핏자국이 안보이도록 둘둘 말아 농 위에 얹어 놓았다.
빨리 이불호청을 빨아서 꿰매 놓으면 감쪽같겠지 생각했다.
걸을 때마다 가랑이가 끈적끈적 했다.
이불 호청을 들고 마루로 나오자 할머니은 수영이가 오줌이라도 싼 줄 알았는지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와선 적당한 맷거리라도 잡은 듯이 내 품에서 빨래감을 빼앗았다.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할머니가 빼앗아 펼쳐 보인 붉은 색을 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뭐 좋은 거라고 이래 빨리 시작하노, 이쁜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어,
울긴 남사스럽게 지집년이 아침부터..뚝 못 그치나?"
도로 나에게 빨래감을 휙 집어 던졌다.
건넌 방에서 삼촌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